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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un 06. 2022

선거 단상 : 20220606

  오랜만에 만난 조카는 대학 졸업반을 앞두고 잠시 휴학 중이었다.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던 지난 겨울, 동생네와 함께 하는 가벼운 술자리에 조카도 같이 있었다.  대선을 앞둔 그 때, 이야기는 당연히 정치문제로 흘렀고, 우리는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는 금물이라는 조언을 잊은 듯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조카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 시절 이슈가 되었던 어떤 ‘공정’에 대해 상당히 예민해 있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정치적 스탠스는 우측이었다.  우경화라고 표현하기 딱 좋은, 그런 선택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른들 거의 모두가 전라도에서 나고자란 그 자리에서 아들과 아빠는 마찰했다.  나는 둘을 중재하며 목소리를 낮추도록 종용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를 따질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나는 조카의 생각을 존중해 줄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안은 실제이고 실존적인데, 그걸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필요한 건 ‘어째서’였다.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고 그런 선택을 예고하고 있는가.  결국 정치와 사회와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세대간 갈등에는, 우리의 고민과 반성이 존재하지 않는 자기고집이 있었다.  어쨌든 이후로 두 번의 큰 선거가 지나갔고, 우리는 현재의 결과를 안아들었다.  조카의 불안은 단지 그 혼자만의 불안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진 채 선거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거 자체의 들뜬 분위기만 조금 느꼈을 뿐, 무슨 의미도 생각도 솟아나지 않았던 허무한 절차로 지나갔다. 


  조카의 고민 또는 우경화는 지난 정권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어떤 많은 이들은 지난 정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실망이었다.  나 역시 비판적 지지로 시작하여 ‘그러면 그렇지’ 하는 허탈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게 지난 정권의 실정이라고만 하기엔 무리가 있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고, 신자유주의의 심화에 따른 자본의 성정은 더욱 우리를 어딘가로 매몰시키고 있었다.  정치는 그런 자본을 옆에서 어떻게 통제하고 조율하여,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 주는가의 문제이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트럼프로 대변되는, 극우를 넘어 이기적 실리를 표방하는 상인출신의 정치집단이 득세했다.  프랑스 총선은 극우를 막기 위해 우파와 부르주아 좌파가 합세하여 우파인 마크롱을 지지했다.  투표율이 50%대로 떨어져버린 젊은층의 정치무관심에 기성세대가 몸부림친 결과였다.  중국의 정치가 공산주이라기 보다는 자본을 통제하려는 독재권력일 뿐임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결과들은 계급차이를 소득수준을 더욱 벌이고, 소외와 불안을 가중시킨다.  자본의 속성상 노동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소득, 즉 불로소득을 창출하며 이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노동하는 사람들과 노동하지 않고도 수익을 얻는 사람들간의 감정적 실리적 간극..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정치는 이를 잘 조율하고 통제했어야 했다.  지난 정권이 실정이 아닌 정책의 실패를 여러번 보였고, 결국 큰 틀에서 한 것이 별로 없었음을 감안하면, 지난 정권의 정체성은 그런 자본환경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지난 4년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호감가지 않는 인상의 권력계급과 표정과 인상은 좋았던 권력계급 사이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선거였던 셈이다.  


  위기와 불안이 가중될 때, 사람들은 어째서 우경화를 택하는가에 대해서는 판단할 근거가 별로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난도 반박도 불필요한 현상이다.  위기와 불안을 벗어나려는 심리,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쩌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는, 어찌보면 인간의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의 본능처럼,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은 변화하는 정치와 자본의 환경 안에서 점점 커지고 밀도가 높아진다.  지난 10여년의 제주가 그런 현상의 좋은 본보기였다.  물가가 치솟고 사람과 자본이 한정된 공간 안으로 쏟아지면서, 난개발과 갈등이 폭증했던 시간이었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자원 역시 한정되어 있고, 제주의 가치는 아름답고 청정한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섬은 위기와 불안의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제주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진출은 주목을 받았고, 한 때 그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많이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나 역시 지지한다.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제주의 가치는 어느 지역보다도 본질적이다.  수많은 진보적 테제들이 어느 집단이나 개인만의 정치나 전략수단 정도로 이용당하는 이 시대에, 제주의 가치를 전면으로 내세운 정당과 정치집단은 내용면에서 더욱 유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은 있었던가.  그들의 모습은 보편 사람들에 녹아들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모습이었는가.  그러니까, 그들의 주장은 어떤 현실적 전략과 해법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런 고민없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라면, 특정 동호회 수준 안에서나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주장과 의미였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연적 가치는 본질적이고 시대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주장인데, 설령 그것이 현실전략과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의 욕망이 가득한 세상은 사실 난감하다.  정치는 빨강이나 파랑이나 그놈이 그놈일 뿐이고, 누굴 뽑은들 내 삶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불로소득으로 잘 사는 사람들은 여유부리며 잘 사는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늘지도 피로가 줄지도 않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심리적 경제적으로 점점 부담이 되어가며, 아이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교육의 실질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이 섬은 한라산 대신 욕망의 활화산으로 들끓어 올랐다.  저마다 그 욕망의 사다리에 매달려 오르려 하는데, ‘난개발을 막고 자연 그대로의 보존이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무리 건강한 씨앗이라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썩거나 말라죽기 마련이다.  


  선거판에 나선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소리지르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사실 선거판을 뒤덮은 것은 허탈과 실망이었고 기대의 부재였다.  소신있게 투표했지만 별 생각이 없었던 나 역시 그런 것들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이런 선거를 치러야만 했던 우리의 현실, 이제까지 만들고 쌓아왔던 것들의 실질을 뒤돌아보는 일은 괴롭지만 필요했다.  그런데 뒤돌아보고 나니 더욱 허탈해져서, 선거의 흥마저 느낄 기운도 없었다.  세상은 자본의 성정대로 흐를 것이고, 우리가 뽑은 사람들은 그 성정을 제대로 통제하고 조율할 것인가.. 판단하건대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보인다.  국민이 선출하고 도민이 뽑았으니 할 말도 별로 없다.  점점 위기로 채워지는 세상에 위기를 해소할 본질적 가치는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가 역시 고민스럽다.  사람들은 욕망에 떠밀려 다른 곳을 바라 볼 능력을 상실한 느낌이다.  나 역시 조카의 불안을 존중하기만 했지,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쓰고 나니 나는 왜 이렇게 세상에 비관적인가 하는 고민마저 생긴다.  이 비관은 정말 나만 가진 감정일까? 그렇다면 다행일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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