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장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웅 Aug 02. 2022

휴가; 몸을 움직인다는 것, 20220802

  시작 전 몸을 충분히 풀어야 한다.  어떤 운동이건, 반드시 해야 할 준비운동의 목적이며, 그래야 부상을 덜 입는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모든 준비과정들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자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매번 해 오던 시작의 제의를 행한다.  그 순간부터는 약간의 경건을 포함한 정숙함이 공간을 지배한다.  도복을 입고 호구를 착용하며 농담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몸을 풀 때와의 가벼움과는 전혀 다른 국면이다.  


  검도의 경우엔 조금 더 엄격하다.  시합장 경계를 그은 흰 선 안쪽으로 호완을 나란히 놓고 그 위로 호면을 올린다.  면수건은 호면을 완전히 덮도록 단정하게 위치한다.  나의 오른쪽에 호완과 호면을 위치하고, 죽도는 왼쪽으로 둔다.  서 있는 자세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지도사범의 구령에 맞추어 잠시 묵상을 한다.  묵상을 마치면, 관장님 또는 사범님에 대한 예의로 엎드려 절을 한다.  운동 시작 전 제의의 순서다.  무에타이의 경우에는 시작 제의는 따로 없어 보였다.  다만, 지도자에 대한 예의로 태국식으로 두 손을 모으고 ‘싸왓디 캅’ 인사 정도는 나누었다.  그러고 난 뒤, 링 주변을 돌며 몸을 풀었다.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지도사범이 정렬을 시켰고, 사범의 동작을 따라하며 몸을 푸는 것으로 제의를 대신했다. 


  거의 모든 유술은 제의를 중시한다.  특히 동양 유술은 제의로 시작하여 제의로 끝난다.  생각으로는 살생이 쉬운 유술일수록 좀 더 보수적이며 제의가 체계적인 느낌이다.  의미는 대체적으로 이해가 된다.  지도자 또는 권력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조하며 반란 또는 하극상의 가능성을 최대한 억제하는 의미일 것이다.  또는 각자의 실력차이가 계급이나 위계를 흐트리지 않도록 나름의 질서를 강조하는 의례일 것이다.  질서와 위계는 그래서 중요하다.  수련을 포함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력차이가 하극상으로 이어지는 일은 위험하다.  조직이라고 굳이 표현한다면, 그런 일들은 조직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몸은 정직하다.  그리고 개인마다의 차이가 분명하다.  수련을 할 수록 몸에는 실력이 붙는다.  하지만, 개인이 가진 신체역량에 따라 수련의 효율은 천차만별이다.  같이 시작한 운동이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건 당연한 일에 속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에 재능있는 사람은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좀 더 빠르게 이해하고 더 나은 성과를 만든다.  운동과 공부의 차이라면, 세상이 들이대는 기준은 운동을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라는 점이다.  그리고, 운동은 공부에 비해 스스로의 노력이 더 많은 빛을 발한다.  현대사회에서 학습성적은 얼마나 많은 금전과 시스템의 지원이 있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벌어진다.  그러나 운동은 이보다는 덜하다.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는가는 스스로의 요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쓰고나니 현실적으로 얼마나 맞는 이야기인지 약간의 회의가 들긴 하지만, 십 년을 넘게 검도운동을 해 본 결과로는, 운동은 공부보다 좀 더 정직한 방식으로 실력이 향상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첨언하자면, 여기서의 공부는 교과학습과정을 의미한다.  


  수련에 있어 검도는 자세를 강조한다.  몸의 움직임, 죽도를 휘두르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힘을 발산하는 자세를 언제나 배우고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각자의 스타일은 가장 올바른 자세를 끊임없이 수련한 다음에 나온다.  그래서 기본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무에타이도 마찬가지였다.  링 위에 올라 손과 발을 엇갈려 마주쳐 인사를 한 다음, 펀치부터 날린다.  사범은 나에게 소리치듯 강조했다.  “No balance, no power!”. 주먹의 자세, 가드의 방법, 효율적인 킥과 펀치를 위한 손과 발의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통틀어 가장 강조되는 말 ‘no balance, no power’,  자세와 원리는 어느 유술에서나 가장 강조되는 기본이었다.  기본은 수없이 해 봐야 늘고, 몸에 배인다.  수없는 지적을 받으면서, 수없이 죽도를 휘두르고 발을 딛는다.  수없는 지적을 받으면서, 펀치를 날리고 재빨리 가드를 올리고, 몸의 균형을 잡으며 킥을 날리고 니킥을 올린다.  무더운 여름에 몸은 금방 지치고 땀으로 범벅이 된다.  지칠수록 몸은 흐트러진다.  나보다 덜 지친 상대는 점점 더 많이 보이는 내 타점에 죽도를 날려 꽂고는 몸을 부딪혀 뒤로 달린다.  보호패드를 사지와 복부에 장착한 사범은 지친 내가 가드 올리기를 게을리 하기 무섭게 팔의 패드로 내 얼굴을 가격한다.  킥을 날리고 주춤하는 사이 패드는 내 복부를 강타했다.  힘없이 날린 킥이 사범의 팔에 잡혔고, 뒤로 밀쳐 내가 중심을 잃고 링에 매달리자, 그 육중한 몸을 날려 플라잉 니킥으로 나를 위협했다.  내 손에서 힘없이 휘둘리는 죽도에 관장님은 소리쳤다.  “자세 흐트러지지 말고!!”,  웃는 얼굴로 니킥을 날리던 사범은 다시 자세를 잡는 나를 보며 “무에타이! 무에타이! No balance, no power!”를 외쳤다. 

  검도수련의 시작과 끝은 연격이다.  시작은 준비격이자 마음자세를 다지는 의미라지만, 수련을 마치는 때의 연격은 발악에 가깝다.  지친 몸으로 큰머리치기와 연타 9회를 각 두 번씩, 그 정해진 수순을 끝까지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으니 그 사이에는 절대로 무너지지 말라는 어떤 경고같은 엄격함이 담겨 있다.  무에타이도 그랬다.  오른 킥 10회, 왼 킥 10회..  그것도 힘이 부족하면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오른 니킥, 왼 니킥 10회씩, 그 다음에는 오른 킥과 왼 킥을 번갈아 스무 번..  어떤 경우엔 마지막 킥에 사범이 다리를 잡아 밀어 넘어뜨렸다.  그것으로 수련의 마무리..  완벽하게 지쳐 쓰러져야 수련은 끝난다는 어떤 사인같았다.  


  수련을 마치면 각자가 시작때 위치한 자리로 이동한다.  그리고 먼저 무릎을 꿇고 앉아 왼쪽에 죽도를 놓고 호완을 벗어 흰 선의 안쪽, 자신의 오른쪽에 가지런히 놓는다.  지도사범이 ‘호면 벗어!’를 외치면 그 때 호면을 벗는다.  머리를 조이며 감싸던 호면이 얼굴에서 멀어질 때 미세하게 빰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면수건을 벗어 호면 위로 단정히 올리고 기다리면, 지도사범은 ‘묵상!’이라고 외치고 우리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는다.  잠시의 정적 속에서 숨을 고른 뒤, 우리는 함께 엎드려 절하며 관장님 또는 사범님 그리고 동료들에게 수고의 예를 표한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보고 경례.  그리고 가운데로 모여 서로에게 허리숙여 인사를 한 뒤,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시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그 뒤로는 다니면서 자신과 칼을 나누었던 이들에게 가벼운 악수를 청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다.  체계적이고 깊은 마무리의 예법.  무에타이도 비슷했다.  모두가 모여서 사범의 지도아래 마무리로 몸을 푼다.  그러고는 다같이 가까이 모여 두 손을 모으고 ‘싸왓디 캅’ 인사를 한다.  그 후 사범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악수를 받은 사람은 손을 잡고 ‘컵쿤 캅!’  인사를 한다.  나는 남자였기에 ‘캅’ 으로 인사한다.  


  휴가를 푸켓의 클럽메드에서 보냈다.  아무 생각도 아무 일정도 정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다가 두리안이나 먹고 오자는 마음으로 간 곳이었다.  그렇게 간 곳에서 무에타이 클래스가 눈에 띄었다.  몸의 움직임에 관심이 좀 있어서 다른 유술은 어떨까 싶어 참석했는데, 완벽하게 빠져들었다고 할까..  지도강사는 현지에서 무에타이 선수로 관록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검도를 한다고 말했더니 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대했다.  자세부터 시작해서 링 위에서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련을 받았다.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3일 동안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강사는 그런 나에게 좀 더 디테일한 자세수련과 기술수련으로 맞아주었다.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내 수련은 좀 더 강하게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이 없다면 나는 좀 더 날 것의 무에타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제주보다 덜 덥다지만 열대의 여름날씨에, 옷이 땀으로 완전하게 젖을 때까지 수련을 하고는 메인 바에 가서 시원한 알코올을 들이키는 날들이었다.  길게 잡아야 6시간의 수련일 뿐이었지만, 나는 몸의 움직임 거리감 균형과 힘 등등의 원리를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거기에 더해서, 강사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에게 관심을 표했다.  마지막 세 번의 수련시간의 말미에는, 나를 바닥에 눕혀놓고 윗몸일으키기를 시키는데, 복근에 힘을 주도록 시키고는 훈련용 패드로 내 복직근을 패대기치듯 때렸다.  그렇게 한 번에 스무번씩, 내 복근은 그렇게 약간 단련되었다.  그리고 서로 페친이 되었다.  쉬러 간 푸켓에서, 나는 전지훈련을 하러 간 셈이 되어버렸다.  


  강사는 자신의 수련관에서 관원들을 트레이닝하는 동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내가 받던 그 수련이었다.  제주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생기고 있지만, 킥복싱과 무에타이를 잘 구분하지 않는 한국환경에서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역시 생기고 있다.  죽도를 드는 검도와 맨 손으로 하는 무에타이의 비교경험은, 운동을 하는 나에게 있어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선사했다.  몸과, 몸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이 생기고 매력이 느껴지고 있다.  휴가는 전지훈련이 되었지만, 나는 꽤 매력있는 재미와 경험을 얻고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거 단상 : 202206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