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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04. 2022

개원 6개월 : 20220904

  개원 6개월을 채웠다.  정신없고 바빴다는 표현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산더미같이 쌓인 일들을 신경증을 약간 더해 하나하나 해결을 해 나가고, 그것들을 지나 익숙해질 무렵에 다가오는 일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온 기분이다.  하루나 주 단위로, 또는 월 단위로 반복해야 할 일들은 이제 습관처럼 익숙해져 간다.  습관처럼 익숙해지니, 매너리즘 또는 지루함의 어떤 느낌이 마음 속에서 스멀거린다.  뭔가를 해야 한다면, 시작은 느리고 행하는 데 짜증을 약간 부리는 스타일이지만, 금방 일상의 과정이나 익숙한 업무로 몸에 배게 만드는 나의 성향때문에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익숙해 진 일이라면 답답한 정부기관 사이트 업무를 짜증없이 그러려니 하며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에 좀 더 민감해지고, 그날 그날의 매출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거의 쓰지도 않던 인터넷 뱅킹을 요즘엔 거의 날마다 들여다보며 입출금을 관리한다.  이것은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다.  금전문제와 이와 관련한 숫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맡기고 용돈으로만 살았었다.  그러니, 경제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이야기하고 따질 때 멍하고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관리하다 보니, 카드비용이 어떻게 들어오고, 입출금이 어떻게 관리되며, 대출과 앞으로의 지출내역에 대한 계산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영수증을 챙기고 약품구입비가 매 달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일이 어렵긴 하다.  전체적인 경제적 틀과 세금문제 등을 세무사에게 맡겨놓으니 문제없이 운영이 가능한 일이다.  


  환자는 꾸준하게 늘고 있다.  매일매일 신환접수가 적지않게 보인다.  물론 이는 코로나라는 판데믹 상황이 많은 역할을 했다.  병원을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지정의원이 되자마자 검사를 위해 몰려드는 환자들로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일반환자들과 물리치료 환자들, 그리고 코로나 검사 환자들이 골고루 찾아온다.  건강검진도 하고 있어, 검진 환자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세상의 불행이 나에게 기회라는 사실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숫자와 필요한 역할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대표적이다.  애덤 스미스가 무뚝뚝하고 잔인한 표정으로 설명한 그 이론에 의하면,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 내 역할을 열심히 할 뿐이다.  내가 사회적 공헌과 역할을 인지하고 그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기심은 사회의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본능이다.  병원을 운영해보니,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내 병원이 정말 필요했음을, 내 이기심을 떠나 느끼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  ‘시내까지 나가려면 너무 멀고 주차도 문제고 해서 힘들었는데, 이렇게 시설을 갖춘 병원을 만들어 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인사를 자주 받았다.  그 순간에는 어떤 다행감이 들었고, 숫자를 잘 모르고 일하던 과거의 내 마음이 불쑥 솟아 마음이 포근해졌다.  내가 개원을 한 데 있어서는 나의 ‘먹고사니즘’을 고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의료의 수준이라는 것도 있음을 병원을 운영하며 깨닫고 있는 중이다.  방사선 검사, 봉합술 처치, 그리고 건강검진 등의 기능을 이 동네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 내가 들어가서 개원한 일은 지역사회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료는 국가나 행정이 어느정도 챙겨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역사회의 필요를, 그것도 의료라는 국가의 필수제도를 의사 개인이 온전히 부담하여 세팅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는 의사의 양성과 수련을 개인이 온전히 부담하고 난 뒤, 의사가 되면 수가와 수익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과 결이 닿아 있다.  국가는 의료에 대해서는 손 안대고 코를 푸는 입장이다.  많은 의사들이 현재의 수가체계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나 역시 같은 입장이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다른 입장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통제를 하고 지역사회의 필요를 책임져야 한다면, 의사의 양성부터 병원의 설립과 관리까지, 국가가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내 입장에서도 그게 편하다.  쉬운 말로 장사에 젬병이고 계산에 약하니, 국가의료정책 안에서 진료하며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것 그대로 문제점이 많겠지만, 현재의 행위에 따른 수가정산, 그로 인한 의료과잉, 물리치료의 남용 등등을 생각해보면 고민해 볼 만한 제도이다.   


  병원이 넓고 깔끔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나 역시 병원 인테리어에 흡족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보이는 벽면마다 점점 홍보물이 덕지덕지 붙여지고 있었다.  환자들의 관심을 살피면 필요한 홍보물들이긴 한데, 병원은 조금 어수선해졌다.  타협점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입구 옆, 스테이션과 마주보이는 벽면을 제외하고는 홍보물이 위치해도 좋다고 나름의 접점을 만들었다.  세이브한 벽면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문신기씨의 일러스트를 원하는 크기로 주문하여 액자로 만들어 걸었다.  창가쪽으로는 책꽂이를 두고 아이들 책과 내가 구독하는 월간지 등등을 비치해 환자들이 보게 했다.  내시경실로 이어지는 복도 벽면도 세이브해 두었는데, 거기엔 걸어 둘 작품을 주문해 두었다.  조명에 따라 배경의 금속성 라인이 빛나는 작품이다.  기대가 크다.  


  6개월간의 운영 결과를 세무사에게 보고받았다.  감은 없지만, 괜찮은 경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6개월을 보내보면, 가장 기초적이고 개략적인 한해살이의 틀이 보일 것이다.  가을은 백신접종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병원은 시기적으로 바빠지는 때이다.  숫자적으로는 어려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운영과 환경은 어떻게 경험해나가고 어떤 문제가 생겨날 지 모를 일이다.  당장은 역대급이라는 태풍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시설과 장비 관리도 정말 큰 숙제 중 하나다.  정신없이 바쁘지는 않지만, 신경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번거롭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번거롭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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