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할머니의 답답함, 나의 난감함

by 전영웅

새하얗고 뽀글한 머리의 할머니가 구부정한 등에 작은 가방하나를 메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차트를 보니 90을 넘긴 연세였다. 연세에 비해 걸음이 빨랐다. 뒤이어 동행한 요양보호사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의자에 서둘러 앉더니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 옆으로 선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약 처방받으러 오셨어요.”


차트를 보니 우리 병원에서 꾸준히 약을 처방받아 온 환자였다. 그리고, 그 약들은 주로 심장에 관련한 약들이었는데, 처음 처방을 받은 곳은 의료원의 심장내과였다. 살펴보니 혈압과 심부전에 관련한 약들이었다. 꾸준히 처방받아 온 약들이라, 기본적인 혈압체크와 상태 문진을 하고 그대로 처방을 내 주면 될 일이었다. 처방을 내려는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요즘 숨이 많이 차요. 숨이 너무 차서, 집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 이거 의료원 가 봐야 할까요?”


많은 환자들이 그랬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의료원은 괜시리 멀어서 귀찮기도 하거니와 주차하기도 힘들어 했다. 그래서, 이 부근에 사는 환자들은 약이 바뀔 일이 없다 판단되면 처방전을 들고 우리 병원으로 와서 그대로 처방해주길 부탁했다. 할머니도 같은 이유였다. 처음에는 특별한 증상도 없이 안정적이었고, 간간히 진행하는 혈액검사나 흉부 방사선 사진에서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기에 같은 처방을 유지했었다. 그래도, 처방한 심장전문의에게 증상체크는 받아야 하기에,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적어도 6개월에 한 번 이상은 의료원에 다녀오도록 권유했었다. 그러나, 할머니도 요양보호사도, 시내 한복판의 복잡한 의료원에 다녀오라는 권유에 난감한 표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하는 증상은 이번에는 뭔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다시 차트를 보니, 이게 나에게만 한 이야기가 아닌듯 했다. 다른 진료실에서 며칠 전 혈액검사와 흉부 방사선 사진촬영을 해 두었다. 결과를 보니, 가슴사진에는 심장의 비대 말고는 특이한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는데, 혈액검사 상에서 심부전을 나타내는 인자가 정상보다 10배 이상 증가되어 있었다.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할머니 의료원에 다녀오셔야겠네요. 증상도 좋지 않아보이고, 혈액검사상에서 심부전도 더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심장내과에서 다시 진료를 보셔요.”


요양보호사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되물으셨다.


“뭐라고요?”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기도 하셔서 본인의 목소리 역시 큼직했다. 나 역시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할머니, 검사 결과가 안좋아요. 의료원 한 번 다녀오셔야겠어요.”


귀에 가까이 대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잘 알아듣지 못하셨는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옆에 둔 가방을 들어 무릎에 놓고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셨다. 작은 책 만한 다이어리를 꺼내시더니, 표지 안 쪽의 포켓에 적당한 크기로 네모지게 잘라서 넣어 둔 하얀 종이들 중 하나를 꺼내어 볼펜과 함께 나에게 건네셨다. 종이는 하얀 달력종이였다.


“내가 귀가 잘 안들려요. 그러니까 여기다가 좀 써 줘요.”


아, 나 만만치 않은 악필인데, 알아 보시려나.. 하는 걱정으로 건네준 종이에 ‘증상이 안좋아요. 의료원 다녀오셔요.’ 라고 써 드렸다. 건넨 메모를 읽은 할머니는 나를 보고 되물었다.


“정말 의료원에 다녀와야 해요?” 나는 대답했다. “네! 꼭 다녀오셔요.”


‘거기 다녀오려면 힘든데..’. 귀가 잘 안들리시는 분의 혼잣말은 모두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할머니의 걸음은, 굳이 부축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할머니가 다녀가시고 열흘 정도 지난 때였다. 할머니는 다시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걸음걸이는 전처럼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였다. 진료실에 들어온 할머니는 의자에 앉자마자 전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가 앉자마자 나는 질문을 드렸다.


“할머니, 의료원에 다녀오셨어요?” “응? 내가 잘 안들리니까 크게 좀 말해줘요.”


나는 더 큰 목소리로, 귀에 가까이 대고 물었다. “의료원 다녀오셨냐구요!”


“아, 다녀왔어요. 갔더니 약을 하나 바꿔주더라고. 그런데, 내가 그 약을 먹고도 아직 숨이 차. 집에서는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그래서, 물어보러 왔어. 내가 그 약을 먹어야 돼요? 말아야 돼요?”


“할머니, 바뀐 약이 뭐예요? 처방전 가져오셨어요? 아니면 약이라도 보여주셔요.”


할머니는 잠시 주저하더니 다시 되물었다.


“아니, 의료원에서 약을 바꿔줬는데, 내가 낫질 않아. 그래서 말인데, 그 약을 먹어야 해요? 말아야 해요?”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물었다.


“할머니! 바뀐 약 좀 보여달라구요!”


다시 주저하던 할머니는 옆에 내려두었던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는 열어서, 다이어리를 꺼내고, 포켓 안쪽 표지에 꽂힌 달력종이를 꺼내 나한테 볼펜과 함께 건넸다.


“내가 잘 안들려요. 여기다 좀 써 줘요.”


순간, 잘못하다가는 난감함의 순환고리에 빠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접수의 간호사에게 물었다.


“할머니 환자분, 보호자 연락처 없나요? 아니면 지난 번 오셨던 요양보호사 분은 오실 수 없나요? 좀 알아봐주고, 전화연락 되면 저 좀 바꿔주세요.”.


되돌아 온 답은 더욱 난감했다. 할머니는 홀로 사시는 분이고, 그래서 자녀나 보호자가 될 만한 다른 가족의 연락처는 없으며, 요양보호사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상황을 타개할 만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건넨 종이에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인 내 악필로 질문을 적어드렸다. ‘의료원에서 약 바꿔줬다구요. 의료원에서 발급한 처방전 좀 보여주셔요. 아니면 바뀐 약이라도 좀 보여주세요.’


내 글씨를 알아보신 건지 아닌지, 건네드린 종이를 본 할머니는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바뀐 약을 먹고도 아직도 숨이 차고 힘들어. 그래서, 그 약을 먹어야 할지 말지 좀 알려줘요.”


이 쯤 되니, 이제는 숨이 차서 움직이지도 못한다는데 약만 바꾸고 보내버린 그 심장내과 전문의마저 원망스러워졌다. 입원시켜 검사 좀 하고 경과 좀 지켜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지금 이런 난감한 상황에 빠져야 할 이유가 대체 뭔지, 원망과 답답함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약을 알아야 한다구요! 약을 알아야 이야기를 해 드리죠!”


다시,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는 다이어리 포켓의 달력종이 하나를 더 꺼내서 내 앞에 놓았다.


“여기 써 줘요. 나 잘 못들어.”


애써 억누르던 답답함이 표정과 작은 행동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기창 안의 환자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작은 동네의원에서 전문분야도 아닌 초고령 노인의 심장문제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생각같아서는 의료원에 입원시켜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으나, 의료원의 심장전문의는 약 하나 바꾸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할머니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할머니는, 홀로 내 진료실에 오셔서, 자신의 증상과 약을 반복적으로 묻기만 하는 중이다.


결국 간호사가 들어와, 할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요양보호사에 다시 연락하거나, 혹시 연락이 가능한 보호자의 연락처가 있을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심장에 대해서는 나보다 좀 더 잘 아실 다른 원장님의 진료를 본 다음 이후의 조치를 결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90이 넘은 할머니가 홀로 병원을 오간다는 점이었다. 귀가 잘 안들리시긴 하지만, 거동이나 기본적인 일상을 수행하는 데엔 별 문제가 없다는 판단으로 주간 일정시간만 돌봄을 해 주는 요양보호사를 배정받으셨을 것이다. 요양보호사 역시 근무시간이 있으니, 초고령 할머니가 홀로 병원에 온 사실을 두고 무책임하다 말 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 역시 자신의 아픈 몸을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셨을 것이다. 나름은 아직 정정하시니 말이다. 심부전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초고령 할머니의 모습에서 위태로움을 느끼는 당사자는 오로지 나와 병원사람들 뿐인가 싶었다. 그것도 홀로 내원하여 말이다. 무책임을 말하기엔 돌봄복지나 간호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나름 독립적이고 정정하다 생각하는 초고령 할머니의 적극성은 의도치않게 주변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째서 초고령의 할머니가 타인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없이 홀로 다녀야 하는가는, 제도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세상은 점점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노령인구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2] 4.3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