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동네의사는 불안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것은 괴리에서 기인했다. 2020년, 방역의 최전선은 분주했다. 의료인력이 부족하고 병상이 부족해서 난리라는 소식만 들려왔다. 그런데, 나는 동네의원 진료실에서 머물러야 했고, 갈 수 없었다. 그 때의 기분을 떠올리면, 나는 의료인이라기보다는 보편의 동네 자영업자 느낌이었다. 정말로 그런 기분이었다. 코로나 의심환자가 다녀가면 의원 전체는 걱정에 휩싸였다. 만일 의심환자가 확진자가 된다면, 그래서 원내에서 밀접 접촉사실이 있었다면, 의원은 꼼짝없이 2주 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 감기증상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나도 불안했다. 혹시 그 환자가 코로나 확진이 된다면 나 역시 상황에 따라 2주간 집에 격리되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누구에게나 맞닥뜨린 불안 앞에서 의사라고 의원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의사이지만 코로나 방역에 일조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고, 그렇게 불안에만 휘둘려야 했다.
글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의원 입장에서는 선별진료소를 꾸려야 할까 하는 논의도 나왔었다. 그러자니, 공간과 인력이 필요했고 온갖 필요물자 전부를 의원에서 준비해야 했다. 방역을 주도하는 국가에서 주는 것이라곤, 보건소를 통한 방역지침 뿐이었다. 의사 세 명이 운영하는 의원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결국 자체 선별진료소 설치는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방역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 보건소에 문의했다. 보건소는 도청에 물어보라 했다. 도청에서는 아직 방역인력으로 의사들을 모집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지역 의사회에서는 공항 검역관리소에서 시간제로 일할 수 있는 의사를 모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거다 싶어 알아보니, 내가 근무하는 시간과 겹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가고 싶다고 방역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그렇게 병원을 비우면, 그 빈자리는 다른 의사들이 채워야 했다. 그것을 배려해 줄 리 없을 정도로 역할과 시간배분이 치밀한 공간이 의원이었다. 설령 나 혼자 운영하는 의원이라도 그러했다. 내가 방역사업에 참여하느라 병원 문을 닫으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온전히 발이 묶인 상황, 이러니 동네의사는 온전한 자영업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력이 부족한 방역전선과 발이 묶인 동네의사, 의사 간호사는 많은데 방역은 인력난에 시달렸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에 격리병상을 준비했지만 태부족이었다. 특히 초기 급격한 확산을 보인 대구지역의 상황은 처참할 정도였다. 병원은 많지만 코로나19 확진환자를 수용할 공간은 부족했다. 상황은 괴리로 가득했다. 많지만 부족한 괴리..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한국의 의료는 covd19 판데믹 상황에서 치명적 오류를 드러냈다.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했고, 병의원의 진료를 수가라는 수단으로 심평원이 통제하고 있지만, 한국의 의료는 많은 부분을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의료는 30여년 전 30% 수준에서 이제는 10%를 넘지 않는다. 병의원은 의사 스스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 진료와 동시에 자영업자가 된다. 의사가 양성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지원해주는 비용은 한 푼도 없으며, 관여하는 유일한 순간은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의사가 되는 순간 쥐어주는 면허증 발급이다. 그렇게 양성된 의사가 의료인이자 ‘동네점빵 자영업자’가 되면, 국가기관인 건강보험과 심평원의 수가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뜩치 않아한다는 사실은 일단 제쳐두자. 문제는 그렇게 의료가 자본주의의 원리에 충실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수가통제를 하지만 의료는 언제나 비급여 항목을 발굴해내고 논리적으로 이를 진료에 활용한다. 그렇게, 자영업자 원장은 병의원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노력하고, 도입한 비싼 의료장비와 자격증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의료인력들의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한국사회 보편에 존재하는 의사들의 수익수준 이상의 벌이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쯤되면, 한국의 의사들은 사업을 위해 뛰는 존재들이지, 국가기반으로서 그리고 공공의료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사실이 그렇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리를 잡아가는 존재가 인간이고, 의사들은 그렇게 현재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자리가, 한국의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의료 영역이고, 10%도 안되는 공공의료가 현재의 covid19 판데믹 상황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의사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돕고 있기는 하다.
한국의료는 자본주의에 발목을 잡혔다. 물론 이것을 마냥 잘못되었다 말할 수는 없다. 엄청나게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의 의료체계와, 철저하게 국가통제 하에서 관리되어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는 영국의 의료체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남아있던 공공영역마저도 민간에게 넘기고는 판데믹 상황이 되자 심각한 어려움과 문제점을 보이는 국가방역체제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의료체제가 온전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의료는 자본주의 산업의 하나로 존재할 것인가, 또는 국가통제가 필요한 공공영역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또는 그 사이에서 조율을 통한 합리적 지점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의학의 발전은 자본이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인정한다. 복강경 수술기구의 높아지는 가동력과 편리, 그리고 로봇수술기구 등이 그렇다. CT나 MRI 등의 영상장비의 진화도 그렇다. 당장의 동네의원에서는 상처를 감싸는 드레싱 폼의 발전이 보이고, 무릎관절강내에 주사하는 윤활보충제 등의 변화가 그렇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에 힘입은 의료의 발전이 공공성을 고민하고 있는가는 살펴볼 일이다. 근현대를 거쳐 발전한 한국의 의료체제가 좋은 기구나 치료제를 만들어왔음은 사실이지만, covid19 판데믹의 상황에서 깨달은 것은 그렇게 발전해 온 의료시스템의 한계와 어긋난 방향성, 그리고 자연의 저항앞에서 발전했다는 인간의 의학은 심히 미약하다는 사실뿐이다.
그래도 한국의 방역은 나름 잘 해왔다고 평한다. 부족한 격리공간과 의료인력으로 감염자의 폭증을 최대한 막아내며 중환자와 사망자 발생을 최소화시키면서 현재까지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2022년 최근에는 오미크론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이제까지의 흐름이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방역당국은 나름의 논리와 원칙으로 방역정책을 잘 이끌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동네의사인 나는 여전히 방역에 기여한 일이 거의 없다. 나는 covid19 판데믹 기간동안, 근무하던 의원을 그만두고 두 달간의 준비를 거쳐 현재 새로운 곳에 내가 경영하는 작은 의원을 열었다. 병원 준비도 역시 일의 연장이었고, 잠시의 휴식도 필요했기에 나는 두 달의 진료공백에도 방역정책에 기여한 일이 없다. 핑계라 비난해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방역사업을 동네의원에 하달하다시피 한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신청하여 현재 시행 중에 있다. 의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신속항원검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업이다. 물론 지역사회의 요구도 있었고 수가 자체가 나쁘지 않아 의원의 수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진료환경이 어수선해지는 단점이 있다. 나는 신속항원검사를 국가방역정책의 하나로써 받아들이고 이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지만, 수가와 의원의 이미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속물 자영업자가 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의사로서 외롭다. 인권침해의 소지와 통계의 버거움을 안고 이제까지 이어 온 한국의 방역정책과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외로움과 감사의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 역시 여전히 마음에 존재한다. 한가지 첨언하자면, 아슬하게나마 여기까지 나름의 성공으로 이어진 방역정책의 한 부분은 한 줌도 안되는 공공의료의 노력 외에,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스크를 어색해하지 않는 국민들의 인식적 협조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정책이 나름의 성과를 만들어낸 건, 국민들의 그런 인식이 운처럼 작용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미증유의 전염병을 대처하는 방역정책은 공공의료의 영역이 중요하고, 이는 자본주의 의료체제의 일부 포기 또는 의료정책의 상당한 전환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겪었고 현재의 covid19 상황을 겪어나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의료체제의 일부 포기나 의료정책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된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한 동네의원의 원장이자 외로운 자영업자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 말로 ‘장사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의사로서 내 마음 안에 존재하는 외로움이나 괴리를 떨쳐내고 싶다. 불안에 힘들어하며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마모시키는 경험을 겪고 싶지 않다. 모두들 covid19 판데믹의 끝이 보인다고 말할 때, 나는 다시 또 들이닥칠 다른 미증유의 전염병을 걱정한다. 예상하건대 그것은 길지 않은 몇 년이 지난 후에 발생할 것이고, 그 때가 닥치면 또다시 불안과 외로움과 괴리를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