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들의 짜증

by 전영웅

퇴근시간 30분을 남긴 토요일 정오 언저리는 내 기분을 약간 들뜨게 만들었다. 그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로비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보았던 토요일 작은 콘서트 안내 벽보의 그 날이었다. 바비킴의 노래인 ‘고래의 꿈’으로 콘서트는 시작되고 있었다. 내 기분과 잘 어울리는 노래여서 같이 흥얼거리는데, 노랫소리 안에 갑작스레 날카로운 목소리가 섞여 내 귀로 들어왔다.


“아파 죽겠어서 병원 왔더니 시끄럽잖아! 짜증 나게!”


누군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로 나가보니 의자에 앉은 작은 체구의 부부 중 아내가 거의 울상이 되어버린 표정으로 계속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부부는 방금 내 진료실에 들렀던 환자였다. 작은 키에 등이 굽고, 말이 어눌했던 여자.. 표정은 무너진 듯 피곤과 버거움이 얼굴 주름 하나하나에 스며있었고, 고르지 못한 치열로 열심히 남편을 설명했었다. 환자로 같이 왔던 50대 초반의 남편 역시 다리가 불편해 보였고 귀가 좋지 않아서,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고 소리에 반응도 잘 하지 못했다. 한쪽 눈은 백내장으로 하얗게 변한 그는 3일 전 집에서 넘어져 왼쪽 옆구리를 부딪쳤는데 계속 아프다고 해서 아내가 팔을 꼭 붙잡고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진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토요일 정오 즈음에 불편한 몸을 서로 부축하고 힘겹게 들어와 설명을 하는 아내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지며 힘겨움과 만사 귀찮음을 숨기지 않았다. 로비 의자에 앉아 엑스레이 검사를 기다리는 도중 울려 퍼진 노랫소리마저도 그들에겐 귀찮음과 짜증일 정도로, 삶은 상당한 각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의 차트는 여지없이 ‘보호 1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불편한 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한 경제활동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지면서, 자의와 상관없이 받게 되는 의료정책상의 분류표.. 의료보호라는 분류는 사회적 안전망의 한 장치이다. 사회는 의료보호를 포함해서 경제적 약자들에게 몇 가지 보호장치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부족하고 약소해서, 삶에는 우울을 비롯하여 불평과 짜증이 배어들고 만다. 60대의 할아버지도 그러했다. 그는 한쪽 팔을 사고로 잃은 채 혼자였다. 그러나 그가 진료실에 들어선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남은 한쪽 팔로 40초반의 남자의 등을 가벼이 밀며 진료실 의자에 앉게 했다. 어릴 적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지적 장애와 행동 장애를 가지게 된 그의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등에 난 상처가 잘 낫지 않아 병원에 왔다고 설명했다. 모자를 쓴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노년의 평온과 위엄을 가지려 애썼지만, 눈과 입가에는 어쩔 수 없는 피곤과 버거움이 자리한 채 이따금씩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드레싱을 마친 아들을 한쪽 팔로 일으켜 세우고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게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두텁고 깊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당연히 해야 할 상태의 설명으로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손 끝에서 가끔씩 보이는 신경질적인 떨림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배인 피곤함과 버거움, 짜증.. 그 모습에 나는 다시금 말없이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그날 오후엔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영어 프로그램 모임에 참석했다. 머리 하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중고등부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이 어떤지 참관하러 들른 것이었는데, 조금은 낯설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속마음들이 어떤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자연스럽고 밝은 표정들이 교회라는 특유의 공간에 잘 어울리며 가득했다. 그런데 밝고 화기애애한 공간 안에서 나는 갑자기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으로의 이질감이 아니었다. 퇴근시간 직전 진료실에서 보았던 부부 환자의 모습이 떠오르며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원치 않는 짜증이 삶에 배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굳이 짜증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밝은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순간 엄청난 부피로 나를 잠식했다. 같은 시간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째서 자의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차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가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라면, 인간을 배려하는 제도가 우선이다. 그중 하나는, 자본주의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은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데 사회적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준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자본의 분배를 통해 이룰 수 있고, 우리는 분배의 일부를 복지 등등으로 부른다. 인간의 삶은 어떤 사회에서나 저마다의 질적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인간이기에 질적 차이를 합리적 수준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복지제도나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실천한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자존감을 잃고 개인의 자존마저도 포기해버린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내가 근무했던 병원들이 지역이나 사회 특성상 저소득계층이나 의료취약 계층이 많이 오는 병원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적지 않은 수로 존재했고, 그들의 짜증과 내면에 뒤섞인 소소한 분노는 적어도 그들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거나, 제공받는 사회안전망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충분했다.


경제력으로는 10위 언저리에 위치한 국가인데, OECD 가입국 중 복지 수준은 뒤에서 두 번째인 나라, 이 나라는 국민의 사회적 자존감을 지켜주지 못한다. 각자도생의 아수라 속에서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결함을 이유로 내쳐지고 방치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도움은 그들을 비굴하게 만든다. 최소한의 도움마저도,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받을 수 있다. 자존심에 상처받고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는 도움을 받으며 그들은 사회적 소외에 괴로워한다. 괴로움이 그들 일상의 분노와 짜증으로 스며들 때, 다른 어떤 이들은 넘치도록 가진 것에 더 많은 것을 쌓으려 욕심을 부린다. 세상은은 점점 그러한 모습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고 처방하는 나의 행위는, 도움을 제공한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만 했던 그들의 부담이었다. 사회의 한 분야에서 작동하는 나의 입장이 그들에게 온전한 도움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나의 의지도 아닌 사회구조와 제도가 나와 그들을 동시에 비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작게나마 느껴야 할 보람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는 모래 한 줌 같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남는 건 처방전 한 장 알량하게 들고 서로를 버겁게 부축하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 뿐이었다.


보호받지 못함으로 자존감이 상처받는 사람들, 상처받은 자존에 분노와 짜증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을 생각한다. 사회의 얼개 속에서 의사라는 나의 역할이 그들에게 좀 더 온전하고 당연한 도움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은 누군가의 선심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구조와 제도에의 고민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 부부 또는 누군가의 봉사와 기부는 감동을 주지만 한시적이고, 복지는 모두의 든든함이다. 자선단체에 약간의 돈을 기부하는 일은 개인의 따뜻함이지만, 그것을 합리적 분배정책으로 전환하여 제도화한다면 사회의 믿음과 당연이 된다. 당연한 일들.. 우리는 어쩌면 당연해야 될 일들을 외면한 채, 서로의 마음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로를 부축하며 병원 밖을 나가던 그 두 사람의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웠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가벼웠어야 함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을 아직 만나고 있지 못하다.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 아직인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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