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들불축제에 가야했던 남자

by 전영웅

일요일 아침의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가 보였다. 침대 위에서, 숨쉬기가 힘들어 눕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주름진 얼굴에 검고 커다란 두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피곤하고 기력이 없는 모습,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시선엔 저 사람이 나를 보아줄 사람인가 하는 기대와 조급함이 어려 있었다.


한 눈에 아, 저 남자가 아침에 보고받은 환자구나 알 수 있었다. 인턴선생님은 전화보고에서 기흉이라 이야기했다. 보기에도 깡마른 몸과 버거운 호흡으로 앉아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기흉환자의 모습이었다. 잠시 마주친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스테이션에서 인턴선생님과 대면 후 전자차트와 방사선 사진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뒤로 했던 시선을 재차 마주하고 자세히 바라본 그의 시선은 버거움, 불안함, 피곤함이 뒤섞여 긍정적인 무언가를 밀어넣어 볼 틈새도 없이 가득찼다. 50대 초반의 깡마른 남자, 과거 결핵을 진단받고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현재 그의 우측 가슴 안에는 폐가 짜부러져 아무 의미없는 공기로 그득했다. 지금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우측 기흉이었다. 피곤하고 버거운 호흡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흉강 내에 손가락 두께의 굵은 호스를 집어넣어 짜부러진 우측 폐를 펴주어야 했다. 호스를 집어넣고 우측 폐가 펴졌음을 확인 한 뒤에, 기흉을 유발할 만한 다른 원인이 있는지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나는 그런 일련의 치료과정을 조금은 담담하고 무뚝뚝하게 설명했다. 환자입장에의 공감과 치료자로서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하는 내 오랜 습관이었다.


나의 설명을 들은 환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앞으로의 치료과정이 자신에게 줄 고통때문에 불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보호자도 없이 혼자 일요일 아침의 응급실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이게 잠깐의 처치로 끝날 일이 아님을 알고 시작되는 치료비 걱정 때문이었을까? 그의 불안함과 나의 의아함이 잠시의 뜸을 들이며 교차할 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전 얼마나 오래 입원해있어야 하는 겁니까?”


“보통은 일주일 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는 더 불안해 했다. 시선은 더욱 흔들리며 바깥을 바라보는데 뭔가 관심이 병원과 응급실 공간 안에 있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이유로 불안해하시는 거죠?”


“들불축제 때 팔 물건을 백 만원 어치나 떼어놨는데 그렇게 오래 입원해 있으면 저는 어떻해야 하나요. 저 그거 못 팔면 안돼요.”


새별오름에서 매 해 열리는 들불축제는 이제 일 주일 정도 남은 때였고, 그는 축제때 좌판을 열어 장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장사준비로 한창 바쁠 때인데, 하필 이 때 그의 우측 폐가 풍선 바람빠지듯 짜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짜부러진 그의 폐가, 그를 응급실에서 당장 뛰쳐나가지 못할만큼 아프게 했고, 아픈 몸에 매인 그의 마음과 삶은 그대로 제자리에서 멈추어버렸다. 멈추어버린 삶은 그리 넉넉해보이지 않는 그의 현실 위로 무거움을 얹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멈추어버린 삶과 현실을 외면해야 했다. 그래야 그의 몸이 나을 수 있었고, 나은 몸으로 멈추었던 삶을 다시 움직여 무거움을 걷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장 그의 걱정과 불안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대로 그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설득으로 그를 병원에 눕게 해야만 했고, 그의 우측 흉강내로 굵직한 호스를 박아넣어야만 했다. 그렇게 그를 붙들어놓아야만, 의사라는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행동과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일방적인 과정이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환자에게 제공되는 모습은 때로는 강압일 수 있다. 특히,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환자는 합리적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환자의 통증과 불안은 자신할 수 없는 스스로의 판단을 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그의 우측 옆구리를 내어주었고, 나는 술기의 원칙에 따라 그의 우측 흉강 내에 손가락 굵기의 호스를 박아넣었다.


호스가 들어간 우측 옆구리의 상처는 그에게 새로운 통증을 선사했지만, 숨쉬기는 편해졌다. 당장의 처치에 그와 나는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기본 혈액검사에서 그의 간수치가 정상의 5배 이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원인은 대부분 술이다. 거칠고 피곤해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술이 원인일 것이라는 의사의 직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피검사를 보니 간수치가 너무 높아요. 혹시 술 많이 하셨어요?”


“아니 뭐, 옆에 있는 사람들 마시는 만큼 마셨죠..”


옆구리는 좀 아파도 숨이 편해지니 한결 살 것 같다는 표정인데, 그 표정이 너무 순박해보였다. 그 순박함이, 술을 조금 마셨다는 대답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얼마나 마셨는데요?”


“소주 하루 두 병 정도 마셨어요. 다들 그 정도는 마시길래 저도 마신거예요.”


순박한 표정의 그는, 예의 그 모습으로 남들 마실 때 따라 마셨단다. 강요당하거나 억지로 마시는 젊은 혈기의 때도 아닌 삶의 중후반에, 남들 따라 열심히 입에 털어넣었을 소주잔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했다. 노곤한 삶의 위로라는 흔한 이유였을까? 아니면 모질지 못한 성정으로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 같이 서고자 했던 어떤 의지같은 것이었을까? 높은 간수치에 당장 해 줄 일은 처방한 약에 간보호제를 추가하는 일 정도였다. 그는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나의 화창한 일요일 오전은 이렇게 비어버린 흉강 안으로 호스를 박고 환자를 입원시키는 일로 지나갔다.


그가 들불축제장으로 장사를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치료기간은 축제일을 훌쩍 넘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떼어놓은 물건만큼 고스란히 손해를 보아야 했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나는 그가 되도록 빨리 회복하여 다시 장사를 시작하길 바라고 있었다. 높은 간수치로 시행한 간초음파 상에서 알콜성 간염으로 생각된다는 진단이 나왔으니 어서 회복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하고 새로운 고비를 만나버렸다. 알콜섬망이 나타난 것이었다. 꾸준하게 들어오던 알코올이 중단되면, 금단증상이 시작되며 어느 순간부터 환자는 지남력을 잃고 의식에 혼란이 오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버린다. 타인의 시선에서는 긴장과 흥분과 혼란으로만 보이는 몸부림..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며칠이라는 시간속에서 알콜섬망 환자는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하다 돌아온다. 그 기간은 어쩔 수 없이 독립된 공간에 격리되어 섬망에서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퇴원은 그렇게 알코올의 세례에서 벗어나 적응하려는 몸의 전신반응으로 더욱 늦어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 자기만의 세계에서 여행중이었다. 몸은 침대 위에서 몸통과 팔다리가 묶인 채로 벗어나려 땀흘리며 몸부림쳤지만, 나와 간호사들이 묻는 말에 자신은 이 섬 어딘가를 한참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기다림이었다. 여행하는 그의 의식이 다시 침대 위의 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다림.. 시간은 흐르고 나는 순간순간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움 속에 아침에 시행한 혈액검사와 가슴사진 결과를 확인하고 회진을 갔는데, 촛점을 잃은 눈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옆에 처음 보는 여인이 서 있었다. 그의 곁에 처음으로 선 사람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부터 나와 그 사이에 끼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굴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분명한 건 가족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에게 나직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병문안을 왔는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민망해서였는지 들고 온 음료수를 들고 뚜껑을 열어 그에게 건네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묶인 몸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자기 옆에 선 누군가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말씀하셔도 누가 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하실 겁니다. 음료수를 마시는 것도 위험할 수 있어요. 섬망에서 회복되면 그 때 보셔야 알아보고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을 스테이션에서 바라보다 다가가 그녀에게 건넨 나의 설명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건조했다. 기다림의 답답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설명에 그녀는 알았다며 밝게 웃었다. 아니, 밝게 웃으려 했다. 나는 나직하고 차분하게 병원에 입원한 이유,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설명을 듣는 내내 그녀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밝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설명이 끝나자 그녀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돌아가면서 그녀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배이기 시작했다. 다시 나를 돌아보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고개를 재빨리 환자쪽으로 돌렸다. 순간 손이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훔쳤다. 더 이상의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그를 바라보았다. 중년의 고단함이 밝은 표정과 뒤섞이다가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만나니, 두 사람 사이에 가볍지 않은 시간이 느껴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초점없는 시선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침대위에서 몸부림치는, 뼈와 가죽만 남은 듯한 창백한 남자와, 그 옆에 서서 눈물을 훔치는 여자의 풍경..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 위에 고단함의 막연한 느낌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는 섬망에서 깨어났다. 기흉도 빠르게 회복되어 튜브를 제거하고 약간은 살이 붙은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그가 그녀의 눈물을 뒤늦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가 섬망에서 깨어난 후에 그 때의 그녀나 다른 보호자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어찌됐건, 그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 구멍난 삶을 메꾸고 입원 전 살아오던 모습 그대로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남들이 마신대서 날마다 소주 두 병을 따라마셨다는 그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래도 병실에 찾아와 남모를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는 그는, 삶에 애착이 두터웠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고단함은 여전히 그의 삶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이다. 혹시 그럴 수 있을까? 어느 축제장 한 켠에서 물건이나 먹거리를 부려놓고 앉아있는 그를 만나면, 웃으며 ‘요즘은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순박한 표정으로, 그의 거친 손으로 건네는 무언가를 받아들며 무난하게 이어지는 그의 삶을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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