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무너진 신념

by 전영웅

병동일에 분주한 어느 오후였다. 응급실 콜이 와서 하던 병동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급히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 전공의 선생님이 정리한 차트와 검사자료를 함께 살피고, 환자가 누워 있는 병상으로 함께 다가갔다. 병상에는 50대 초반의 여자가 누워 있었다. 의식은 희미했고 호흡은 원활한 산소공급이 어려울 정도로 약해져 있어 응급의학과에서 이미 기도삽관을 해 놓은 상태였다. 온 몸이 부어 그런지 거대해 보이는 몸은 간이 담요에 덮여 있었는데, 가까이 서 있으니 종종 경험한 익숙한 냄새가 약하게 퍼져왔다. 그것은 사람의 살이 썩는 냄새였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 있는 환자에게서 담요를 걷었다. 그리고, 환자복 상의의 단추를 풀어 젖혔다. 퍼석하게 부은 그녀의 상체 오른쪽으로는 surgical pad라고 하는, 두텁고 하얀 거즈가 덮여 있었다. 나는 그것마저 떼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한쪽 가슴이 드러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곳곳에서 피가 배어나오며 검붉은 살덩어리로 변해버린 가슴팍이 드러났다. 한 때 보드랍고 충만했을 젖가슴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검붉고 울퉁불퉁한 살덩어리들이 둥글게 피부와 경계를 이루었다. 용암이 끓어오르다 식어 끓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오른팔을 잡고 옆으로 벌렸다. 오른팔 역시 전체가 퍼석하고 거대하게 부풀어 있었다. 병변의 바깥쪽 오른 겨드랑이 부위는 검게 괴사해버린 피부가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너덜거리고 있었고 구멍들에서는 썩은 살냄새가 나는 검은 체액이 흘렀다. 살이 썩는 냄새는 이 곳에서 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은 유방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암덩어리는 유방조직을 파괴하고 피부를 잠식한다. 그리고, 림프액의 흐름을 따라 겨드랑이로 전이하여 겨드랑이의 임파선에도 암덩어리들을 안착시키고 키운다. 그리고, 몸의 다양한 곳으로 암세포는 퍼지기 시작한다. 겨드랑이 역시 암덩어리가 증식하며 지방조직과 혈관과 신경을 잠식하고, 너무 커져버린 암세포는 혈관공급을 받지 못하는 부위부터 괴사하기 시작한다. 괴사는 암덩어리에 막혀 혈관공급을 받지 못하는 정상조직들에서도 진행된다. 겨드랑이가 썩는 이유이다. 그녀는 유방암을 진단받고 방치했거나, 방치된 상태였다.


나는 곧바로 괴사된 조직을 걷어냈다. 검게 죽어버린 피부조직을 걷어내고 역시 검게 변색된 채로 썩은 냄새를 풍기는 지방과 결합조직들을 최대한 걷어내었다. 검은 올리브처럼 둥글게 덩어리진 임파선들도 딸려나왔고, 검게 죽은 조직 곳곳에서 붉은 피가 스멀거리며 새어나왔다. 환자는 미동도 없었지만, 이따금씩 표정을 찡그렸다. 정상조직이 건드려질 때의 통증을 느끼는 정도의 의식은 있었던 것이다. 가슴팍의 검붉은 암조직 약간을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보내고, 거즈로 비어버린 겨드랑이 공간을 채우고 가슴팍을 덮어 붕대로 상체를 감아 드레싱을 마쳤다. CT 등의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 한 후에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호흡불안정으로 보아 유방암이 폐에 전이되었을 거라 예측했지만 오히려 폐는 깨끗해 보였다. 다만, 간과 뼈로의 다발 전이가 관찰되었다.


보호자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산 속 기도원에서 탈진이 된 상태로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119에 의해 실려왔다. 짐작이 갔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신앙의 힘으로 낫길 기원하며 깊은 산 속 기도원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신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권유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왔을 때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우연히 발견되어 홀로 왔다는 사실 뿐이었다. 응급실에서 모든 처치와 절차를 거치고 중환자실로 올라간 후, 그녀의 치료 목표는 우선 기력을 회복시켜 기도로 연결된 튜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유방암과 관련한 어떤 치료도 당장은 불가능했다. 수술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항암치료 역시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특정된다 한들 당장의 항암요법은 기력을 더 악화시킬 수 있었다. 당장은 기력을 회복해서 항암치료라도 고려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그 환자의 주치의는 나였다. 나는 매일 중환자실에 들러 그녀의 상체를 둘둘 말고 있는 붕대를 걷어내고 괴사 조직과 암조직을 덮고 있는 거즈를 걷어낸 다음, 남아있는 괴사조직을 때마다 최대한 제거하고 다시 거즈로 덮는 드레싱을 반복했다. 그녀의 반응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처음엔 통증에만 반응하던 얼굴이 상체의 붕대를 제거하기 위해 몸을 들어올리는 자세에도 표정이 일그러지며 아픔을 표현했다. 그러나 튜브는 쉽게 제거할 수 없었다. 튜브 안으로 연결된 캐뉼라의 산소를 조금만 줄여도, 동맥혈 산소포화도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금방 도달할 줄 알았던 치료의 일차목표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수소문했던 보호자들을 중환자실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투철한 신앙심을 대물림 해 온 가문이었다. 그녀 역시 독실한 신앙을 삶의 기둥삼아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신앙에 기대어 치료받고자 산 속 깊은 기도원에 홀로 들어갔는데, 그게 3년 전 일이었다고 했다. 3년간 연락도 끊고 지내다가 다시 만난 것이 지금 병원 안에서라고 했다. 남매지간으로 보이는 보호자들 역시 당황과 침착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복잡한 마음이 되어버린 내가 설명하는 환자의 상태를 듣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보호자들의 표정은 침착에서 좀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환자 면회를 진행했다. 환자는 이제 눈을 또렷이 뜨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여전히 기도삽관 상태여서 말은 할 수 없었지만, 3년만에 남매들을 마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지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병상에 누운 환자와 보호자의 눈빛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은 언제보아도 애틋함이 묻었다. 그 애틋함은 주로 보호자들에게서 묻어나왔다. 그것은 진심이기도 했고, 눈 앞에 보이는 이의 슬픈 상황에 순간적으로 배어나오는 감정적 반응이기도 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이들 사이에 감정의 교차가 일어나기엔, 지치거나 무뎌지기 충분한 기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이라던지 책임이라던지 그런 것을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말을 하지 못한 채 누워서 자신의 남매들을 바라보는 환자의 눈빛은 생각보다 덤덤했고, 환자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말을 건네는 보호자들에게서 묻어나오는 애틋함은 왠지 진심에서 조금 옆으로 비껴선 듯 보였다. 나는 더 이상 그들 사이의 무언가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목표 하나가 생겼다. 어서 저 튜브를 제거해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해 주어야겠다는 목표였다.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이 2주 정도 흘렀다. 그녀도 나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치료의 보람은 미미했고, 목표에의 근접은 더디기만 해서 회의가 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자꾸만 돌아보고 살펴보던 어느날, 그녀는 눈에 띄일 정도로 좋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산소 포화도도 안정적이었고, 산소를 줄여도 포화도는 나빠지지 않았다. 그날따라 그녀의 눈빛도 평소보다 좀 더 명료해 보였다.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스텦 선생님과 의국 전공의들에게 상의해서 나는 그날 바로 그녀의 기도로 연결된 튜브를 제거했다. 너무 오래 삽관되어 있었기도 해서였다. 나는 환자를 침대에 바로 앉히고 등을 두드려주며 기침을 시켰다. 몇 번의 깊은 기침을 하고 숨을 고르는 그녀에게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그녀가 작고 쉰 소리로 대답했다.


“고마워요.”


나는 바로 보호자들에 연락해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면회를 시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하고 쉰 소리였지만, 그녀의 남매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스테이션에 서서 멀리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냥 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뿌듯하고 보람되고 그런 기분이었다. 중환자실이라 오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나가는 보호자들에게 좀 더 회복해서 일반병실에서 만나자 다독였고, 홀로 남은 병상의 환자에게 다가가 조금만 더 회복해서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진행하자 격려했다. 희망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력을 회복하고 모든 것이 안정이 되면, 이미 암세포가 많이 퍼진 상태지만 항암치료라도 시도하여 상태를 호전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늦은 저녁 회진때 까지만 해도 작은 미소를 보이던 환자는 다음날 새벽부터 다시 호흡이 힘들어졌다. 코에 연결된 산소공급관의 산소농도를 올려도 그녀는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이뇨제에 기관지 확장제에 그 외 호흡에 도움이 될 만한 약들을 추가하거나 농도를 올렸다. 그렇지만 그녀의 호흡은 변화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는 계속 그녀의 상태를 주시하며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기대와 바램에 부응하지 못했다. 해가 뜨고 아침햇살이 완연해 질 무렵,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의 기도로 튜브를 집어넣어야 했다. 좌절이 엄습했고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뒤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 말기 유방암 환자의 운명이란 것이 그리 쉽게 바뀔 일은 없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의 시간 동안 나름 편안하게 말은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 치료 목표가,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의 고민과, 주치의로 충분하고 올바른 노력과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인가의 고민이 겹겹이 내 머리와 가슴에 쌓이고 있었다. 고민이 높고 커져 갈 수록, 그녀의 상태도 점점 나빠졌다. 기도삽관만으로 산소포화도가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되어갔다. 명료하던 눈빛 역시 불투명한 의식 안으로 잠식되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인공호흡기까지 연결했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찰해 온 방사선 사진 속의 폐는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결국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3년만에 재회한 남매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지 정확히 일 주일 만이었다.


환자에게 쏟아지던 고민은 이제 내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이유였을까, 내가 놓친 것이 있었던가, 혹시 무얼 잘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그녀에게 세웠던 치료의 일차목표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명확한 이유도 파악하지 못한 채,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자의 상태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스텦 선생님과 함께 환자를 보았던 다른 전공의들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서로 위로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위로를 주고받고 마무리해도 이상할 것 없이 충분히 납득할 케이스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좀 더 긴 시간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넬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져들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보호자들이 나를 찾아와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도 보고 짧지만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었다. 나 역시 감사하다는 대답을 했지만, 자책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화두를 많이 던져주었던 환자였다. 암이라는 두려움을 넘기 위해 선택했던 종교라는 신념은 견고함이 어느정도였을까.. 점점 심해졌을 통증과 깊은 산 속에서 혼자라는 사실에의 고통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가슴 한 쪽이 완벽하게 문드러지고 살이 썩어나가는 고통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쓰러졌다가 의식이 돌아왔을 때 병원에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안도하게 만들었을까 좌절하게 만들었을까.. 나의 치료가 그녀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을까.. 신념이 좌절된 채로 3년만에 남매와 마주한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으며,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신념을 고집하게 만들었을까..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회복을 돕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제대로 도왔을까? 좀 더 제대로 도왔다면 그녀는 더 오랜 시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았던 환자이다. 사실 의사로서 접하는 모든 경우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기도삽관을 한 채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힘든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고민은 깊은 어둠을 헤매었다. 오래 전에 겪었던 수많은 케이스 중의 하나일 뿐이라 말하기엔 기억이 너무 선명하고 아쉬움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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