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죽음에의 지분

by 전영웅

그의 배꼽 주변으로 구멍을 만들어 포트를 설치하고 복강경 카메라를 뱃속에 밀어넣었다. 가스를 주입하여 배를 팽창시킨 후 그의 간 주변을 관찰하였다. 간은 이미 표면이 우툴두툴하게 변하며 경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담낭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위로는, 심한 염증으로 장막과 주변 장기들이 간에 단단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배에 두 개의 상처를 더 낸 다음 포트를 설치하고, 기구들을 사용하여 들러붙은 장기들을 조심스레 박리했다. 순간, 고여있던 농양이 흘렀다. 흡입기로 농양을 걷어내자 괴사 되어 터진 담낭 벽이 얇은 종잇장처럼 너덜거렸다. 남은 담낭 조직들을 제거한 후 주변을 정리하고 씻은 다음 수술을 마쳤다. 술만 마셨다는 60대 중반 남자의 뱃속은 그렇게 엉망이 되어 있었다. 보호자는 없었다. 수술을 마친 후 그는 중환자실에 누웠다. 뱃속의 심각한 염증의 원인이 제거되자 그는 서서히 회복하는 듯했으나, 문제는 망가진 간의 기능이었다. 다시 간 기능이 악화되며 그는 간성혼수에 빠졌다. 수술을 받은 지 3주, 그는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사망하기 1시간 전,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아들이 중환자실에 들어왔다. 그간의 경과와 곧 사망하실 것 같다는 나의 설명에 아들의 표정은 말없이 덤덤했다. 환자는 의식도 눈빛도 어느 하나 아들을 향하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곧 숨이 멎을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는 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은 무겁고 건조했다. 그의 임종은, 외로움 같은 감정의 영역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슬퍼함도 없었다. 무덤덤했다. 건조해서, 갈라지다가 투둑하고 끊어져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죽음을 많이 접했다. 자연한 죽음도 접했고, 내가 수술했던 환자의 어쩔 수 없는 죽음도 접해야 했다. 그것은 때론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며, 끊임없이 시간을 되돌려보아야만 하는 묵직한 부담이었다. 모든 죽음의 순간에 나는, 보호자들에게 사망시각을 말해주며 죽음을 결론내리는 사람이었다. 죽음을 많이 접하며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사망한 환자의 자초지종을 알면 알 수록, 환자의 자초지종이 나와 무관하지 않을수록, 나는 그가 숨 쉬었던 시간들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피할 수 없는 우울에 얼마간 시달려야 했다. 타인의 죽음은 내 명줄에 생기는 작은 생채기였다. 그것은 외과의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차라리 비난이나 욕 한 바가지 내 머리에 쏟아져도, 모른척 나와 상관없는 척 무덤덤하고 무심한 이기심이 내 명을 지키는 방법일지 몰랐다.


죽음의 모습은 산 자의 모습들 만큼 다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에 산 사람들의 반응들도 다양했다. 추모, 경건, 슬픔 같은 죽음과 어울리는 단어들은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길을 지나다 붙은 시비에 목숨을 잃은 젊은 청년의 주검 앞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혼절했다. 내과 선생님과 함께 둘이서 임종을 지켜야만 했던 어느 환자의 보호자들은, 뒤늦게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찾아와 혹시나 있었을 의료과실 여부를 추궁하기에만 바빴다. 가난하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어 신세를 한탄하던 50대 대장암 여환은, 수술 전과 후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치료에 따라오지 않다가 결국 패혈증에 빠져, 아무도 없는 외진 병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유방암 수술 후 수많은 항암치료에도 전이 병변이 사라지지 않고 결국 뇌에까지 전이가 되었음을 알게 된 할머니는 나에게 ‘이제 나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많이 먹어도 되죠?’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위암이 폐로 전이되어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던 환자가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들을 불러 ‘그간 감사했습니다’라고 분명하고 짤막하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몇 분 후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는 피곤에만 절어있던 내 가슴속 무언가가 뜨겁고 철렁이며 떨어졌다.


삶의 마지막이 존중받지 못해도, 때로는 갑작스러워도 결국 죽음은 모든 것을 잠식했다.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눈빛도, 또는 이제 다 내려놓을 수 있어 홀가분하다는 듯 나른한 눈빛도, 모두 죽음이라는, 산 자는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죽음으로 접어든 이의 주변에는 누군가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그것으로 죽은 이의 살았던 과거가 짐작되거나 평가되기도 했다.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이의 옆에 선 아직 산 자는, 슬퍼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무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혈연이라는 끈이 있어도, 그의 죽음이 자신에겐 그다지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듯 건조한 표정도 있었다. 삶과 죽음은 이래서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니, 산 자는 절대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다. 그러니 다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삶과, 죽음 옆에 선 산 자의 표정과 반응은 이래서 다양하다고 말이다. 죽음은 절대적이며 유일하다. 따라서 내가 이제껏 이야기한 죽음도 사실은 죽음에 다다른 산 자의 마지막이며, 마지막에 접어든 이의 옆에 선 자의 표정과 반응이었을 뿐이다.


죽음이 유일하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시신으로 응급실로 실려 들어오는 노숙자의 외로운 육신과, 화려한 특급병실의 깨끗한 침대에서 온 가족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부유한 노인의 육신은 다르지 않다. 죽음에 이르는 산 자의 마지막 모습이 제각각이라 해서 저마다의 행과 불행의 딱지를 붙일 수도 없다. 저마다의 삶은 각자의 몫이며, 삶의 과정은 가항력과 불가항력이 뒤섞여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일련의 역학이다. 그렇다면, 삶의 마지막은 말없는 시선으로 배웅해야 하는 페이드아웃이다. 삶의 마지막이 드디어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침묵은 가장장 존중넘치는 예법이다. 나는 임종의 그 순간에 매뉴얼 낭독 같은 무미건조한 상황설명 외에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다만 나의 마음은 뜨겁게 끓는 물처럼, 우울함과 버거움의 기포들이 부글거리며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지금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환자의 몸 어딘가에 나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나는 저 환자의 임박한 죽음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책임져야만 하는가.. 생채기의 통증은 조금 더 예리해진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환자의 몸속에 손길을 남겨야만 하는 외과의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운명은 죽음으로 들어서는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 또는 누군가가 맞이할 죽음의 지분의 일부를 짊어지고 있다. 타인의 죽음에 견고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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