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이라는 늪 : 20221204

by 전영웅

3년만의 검도대회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였고, 도장 내에서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는 친구들이 대거 출전했기에 승부욕은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상당한 배신과 자괴감을 느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꾸준했다고 생각한 노력에 끼얹어지는 배신감,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사각의 시합장에 들어서면 무념과 무아의 상태가 된다. 그것은 긴장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그간의 수련이 실력이 되어 무의식 속에서 발현된다. 어쩌면 수를 가늠하고 상황을 유도하는, 그런 센스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긴장은 머리 속만 비우지 않았다. 몸의 움직임도 비워냈다. 나중에 내 경기를 본 사범은 몸이 엄청나게 굳어있더라 말했다. 긴장 속에서 죽도의 움직임은 뻣뻣했고, 몸의 반응 역시 느렸을 것이다. 모든 움직임이 읽혔던 총 세 번의 졸전.. 도장은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에서 우승을 거두었지만, 나는 그날의 경기 이후 있었던 도장의 뒤풀이 자리에 간신히 앉아 있다 나왔다. 분위기 때문에, 그냥 집으로 오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렀다.


이후로 꽤 오랜 시간 우울에 시달렸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빠졌다. 그것은 단순히 검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십수년을 끄적여왔으면서도 여지껏 제대로 된 결실 하나 없는 글쓰기, 여전히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고민을 남기는 내시경과 초음파,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 속에 빠졌다. 우울에 빠진 나는 외로웠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깊이 박힌 쐐기같은 문제다. 장비 정비를 핑계로 검도를 일주일 쉬고, 나는 집 안에서조차 누구에게도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주변은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진학을 걱정했던 아들녀석은 손쉽게 허들을 넘었고, 병원은 연말을 맞아 바빠지며 잘 안착하고 있었다. ‘누가 이러이러하게 아프다는데..’ 로 시작하는 몇몇 타인의 질문에 했던 고민들을 제외하고는, 나는 겉보기에는 아주 안정적이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는 마음 안으로도 안정이 찾아들고 있다.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의문을 여전히 안고 검도도 다시 이었다. 어떻게든 이어야만 하는 병원일이야 그대로 이어가며 일상이 되었다. 글은 아직 특정 주제나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쓰지 못하며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일상이나 주변을 주제로 가볍게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인간은 원래 별 수 없는 존재라서, 무언가를 꾸역꾸역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일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고, 존재의 무게를 항상 의식하게 하는 긴장이다. 우울은 회복도 극복도 아닌, 농도의 옅어짐이다. 삶은 어느 정도의 우울이 없다면 오만에 빠지기 십상이다.


나의 삶은 우울과 부정성에 빠진 것일까? 글을 써내려가다 보면, 흐름 안에 녹은 어두움을 느낄 때가 많다. 밝고 긍정적인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자기자랑같은 기분이 들어 쉬이 민망해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는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일종의 성향이나 감정의 생채기 정도의 결함이지 않을까 싶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까지 만들어 온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꾸기도 어렵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우울의 긍정을 생각하며 이대로 써내려 갈 것이다. 비록 우울해지더라도 종종 나를 돌아보면서, 뒤를 다져가며, 늦겠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내가 이제까지 해 온 인생의 과정이었다. 우울했지만 이제까지 별 일 없이 살아왔다면, 그것은 잔잔한 긍정이 아닐까.. 스스로의 배신감에 조금은 심각하게 감정의 늪에 빠졌다 가까스로 기어나오는 중이다. 이 역시 잔잔한 긍정의 과정이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앞을 알 수 없고, 그 앞에 내가 바라는 결실이 존재하는지 역시 알지 못한다. 하던대로 발걸음을 천천히, 조금씩 옮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20] 죽음에의 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