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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Nov 20. 2022

낚시 : 20221119

  토요일 오전진료를 마치자 마자, 낮농어 낚시를 하러 산남으로 넘어갔다.  농어 시즌이기는 하지만,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대낮부터 농어낚시를 가는 일은 이례적이다.  보통은 바로 귀가해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마당일을 하거나 가족과 단촐한 나들이를 했었다.  그러나, 중3이 된 아들은 주말을 낀 기말고사 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아내는 그런 아들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채, 학원에 오가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날이 추워지면서 마당일도 줄어들었고, 아들에게 온전히 집중된 집 분위기에 동참하기엔 온전히 동의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었다.  마침 산남엔 농어들이 좋아할 만한 너울파도가 일고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차에 낚시장비들을 싣고 출근했다.  주로 밤에 농어낚시를 해 왔는데, 낮에 출조하는 일은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국제학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한국학교로 넘어 온 아들은 학제의 차이로 중3 2학기로 복학했다.  시기상 매우 애매한 때였다.  제주의 고등학교는 중학교 내신으로 진학하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반에서 60퍼센트 안에 들어야 한다고 한다.  아들은 단 한 학기 성적으로 그 내신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국제학교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사실은 한국학제에서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아들은 복학을 결정하자마자 학원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부모의 개입은 최소화하자는 원칙을 두고 국제학교에 보냈었는데, 복학을 하고 나니 그리고 상황의 애매함으로 그런 원칙은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그것도 철저하게..  가장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한 사람은 아내였다.  집주변과 시내의 모든 중등과정 학원을 알아보고는 아들과 상의하여 몇군데 학원에 등록했다.  주중 주말 늦은 밤시간 상관없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학교와 학원 일정을 마치면 주중에는 밤 9시 반이 되어야 아들은 집에 도착했다.  주말에도 두세 시간씩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일정이 너무 과도한 거 아니냐 말했지만, 아들은 그냥 해보겠다고 덤덤히 말했다.  상황도 상황이고, 본인도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다지 원치 않았던 한국 중고등학생의 부모의 삶에 접어들었다.  아이의 삶도 안타깝고, 성적에만 매달려야 하는 그 시간들이 어떤 면에서는 너무 아깝고, 그런 아이에 매달려 하루의 일정이 아이 중심으로 계획되어야 하는 아내의 삶도 싫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개입에 나의 관심까지 더해지면 아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기도 하지만, 내가 하던대로의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나와 가족 모두에게 가장 나은 일이라 생각하고 나대로 움직이는 면도 있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핑계도 더해서 말이다.


  집에는 장인장모님이 얼마전 오셨는데, 두 분 역시 손주의 일상과 일정에 집중하고 계셨다.  어른들이 오셨으니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라도 갈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들이 낮에 학원일정이 있어 집안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발을 묶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나의 결정은 매우 쉽고 단순해졌다.  고민없이, 일어오는 파도를 따라 낚시에 나섰다.  


  산남으로 낮에 단독으로 나서는 농어낚시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포인트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미리 내 낚시선생인 친구에게 포인트 조언을 구했고, 네다섯 곳을 추천받았다.  위미에서 남원을 거쳐 표선 일대를 탐색하는 일정이었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고, 바람 역시 세다고 했지만 그리 세지는 않았다.  다만, 너울파도가 예보에서 확인했던 것 보다는 좀 더 셌다.  루어로 하는 농어낚시 특성상 포인트가 대부분 험하다.  자칫하면 넘어지거나 사고를 당하기 쉬워 준비가 철저해야하고 조심을 요한다.  그럼에도, 포인트에 서면 포인트 파악이 덜 되거나 조과욕심이 생겨 살짝 무리하게 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바로 앞에서 터지는 파도의 포말에 전신 샤워를 하게 된다.  내가 그러했다.  날은 적당히 따듯했고, 뒤집어쓴 바닷물은 더 따뜻했다.  방수바지와 방수점퍼를 입었지만, 방수바지는 어딘가 구멍이 났는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포말은 비처럼 덮쳐서 점퍼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차림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도전한 산남의 낮농어였지만, 덮치는 파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처음 진입해 본 첫 포인트에서는 그렇게 포인트 파악과 몇 번의 캐스팅 후 점점 높아지는 파도에 두려움이 생겨 바로 철수했다.  

  동남풍의 바람을 타고 너울은 끊임없이 들이쳤다.  만조시간은 오후 6시 반, 만조시간까지는 3시간 반 정도가 남은 상태였고, 너울은 점점 높아지는 기색이었다.  그러니까 중들물의 상황이 이 정도면 포인트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에도, 포인트마다의 특색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나는 포인트 탐사를 이어갔다.  남원의 어느 포인트에서는 첫 포인트와의 마찬가지 상황을 만났고, 몇 번의 캐스팅에 다시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하면서 괜찮아 보이는 다른 포인트에 캐스팅을 하고 릴링을 할 때, 물 속 여 바로 앞에서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어떤 녀석을 보았는데, 녀석은 내 루어를 노리고 올라왔다가 건들기만 하고 바로 사라졌다.  다시 반응해줄까?  서너번을 다시 던졌지만 녀석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넓게 들어온 포인트는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너울이 조금 잦아들고 있었다.  동쪽으로 갈 수록 상황은 안 좋을 것임이 분명한데, 이 포인트는 자체의 특성이 그런 상황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좀 오래 머물러보기로 결정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바람도 덜 탔다.  너울은 계속해서 밀려오는데, 밀물의 영향으로 점점 높아졌다.  조심한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 포말을 몇 번 뒤집어썼다.  방수장화 안으로는 이미 물이 찰박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캐스팅을 이어간다.  기대 반, 그리고 어떤 해방감 반이다.  내가 낚시를 하는 이유는 어떤 해방감 때문이다.  파도치는 밤바다에 혼자 서서 혼자만의 판단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기분..  시달리고 어깨를 부딪혀야 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에 실린 포말을 맞으며 느끼는 자유로움..  밤에는 검기만 한 현무함 갯바위의 아우라가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자유로움과 트이는 숨을 방해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엔 낮시간이니 어둠이 주는 두려움은 전혀 없다.  판단과 착오와 변수와 기대가 뒤섞인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내가 서 있는 공간을 가득 채운다.  조과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잡히면, 그래서 가져가 요리를 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되려 종종 귀찮다.  깔끔하게 빈손으로, 바람과 파도를 맞고 숨이 트였다는 몸의 감각에 상쾌함과 만족감을 담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는 낚시를 오래하면 어깨가 아프다.  어깨에 신호가 쌓여 부담스러워 질 즈음에 짧아진 해가 붉어지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꺼내서 섶섬 옆으로 붉게 지는 해를 찍었다.  만조까지는 한 시간 조금 더 남았다.  동쪽으로 더 이동하는 것은 거세진 너울때문에 위험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찍어둔 포인트 한 곳에서 오늘의 낚시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농어가 물어주면 좋고, 끝까지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해는 온전히 넘어갔고, 여명이 남아 검은 갯바위의 형체를 알아보게 했다.  여명 아래서 포말은 더욱 하얗게 퍼졌고, 투명한 물 속으로 보이던 여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만조의 파도에 터진 포말을 두 번 정도 몸으로 받아낸 다음에서야 나는 낚시를 마무리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낚싯대를 접고 미노우를 케이스 안에 넣었다.  젖은 점퍼와 물이 가득한 방수바지를 벗어 미끼통에 넣었다.  젖은 몸을 수건으로 대충 닦은 뒤에 차를 한 시간 남짓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트렁크의 장비를 모두 꺼낸 다음, 세탁할 것들은 집 안으로 넣고, 나머지는 마당에 건조대를 펴서 널은 다음, 마당 호스를 틀어 민물로 소금기를 씻어냈다.  낚시를 마친 후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학원에 다녀온 아들은 잠시 유튜브를 보며 쉬고 있었고, 아내와 어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북의 어두운 밤 공기는 온화했고 약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약간의 맥주를 겯들인 저녁 식사를 마치니 몸이 노곤했다.  이제는 갯바위를 오가는 농어낚시를 하고 나면 몸이 피로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그만큼 조심을 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토요일 밤의 시간을 그렇게 차분하게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에는 검도대회에 출전을 해야 한다.   


덧 : 글쓰기 앱으로 율리시스를 설치하고나서 연습겸 두서없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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