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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19. 2022

최근에 본 몇 편의 영화들

## 아노말리사(Anomalisa)


중년의 사랑은 어째서 검열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울컥함이 일었다.  인간의 감정은 자연스럽기에, 상대방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서로가 동의한다면 자연스레 교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생의 어느 지점에서의 감정이란 삶의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며,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검열은 그런 의미이다.  주인공은 그런 검열에 한 번 걸려 넘어진다.  10년 전 무책임하게 떠나 힘들게 만들었던 여자친구를 호텔로 불러 하룻밤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얼굴로 보이고 같은 목소리로 들리는 심각한 권태의 상태에서 저지른 그 실수는 주인공을 어느 한정 내로 단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한정은 중년 남성이라는 일반화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가 리사를 만났을 때의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 마저 비난받아야 할까?  심각한 권태에 빠진 중년 남성의 메마른 감정이 어느덧 볕을 만나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온 몸의 연예세포가 순식간에 피어올라 몸과 마음을 달아오르게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권태에서 구원해 줄 이성을 만난 남자는 자신의 구원을 이 여자에게 내맡긴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낸다.  이것을 자신의 권태를 잠시 해소하기 위한 중년 남성의 수작이라고 보아야 할까?


슬프게도 자신을 구원하리라 믿었던 감정은 빠르게 식는다.  늙어버린 몸의 쇠퇴한 정력처럼, 짧기만 했던 섹스의 시간처럼, 남달랐던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는 서서히 권태의 공간으로 사라지고 만다.  출장의 이유였던 연설은 엉망이 되고, 주인공은 다시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의 권태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출장을 핑계로 그저 하룻밤의 일탈을 저지른 것 뿐일까?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할 필요가 있고, 관계에 있어 차분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잠시 오르다가 이내 꺼져버린 주인공의 감정은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점화되었지만 더 이상 타오르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가스불같은 중년의 몸과 마음이 서글프다.  그의 솔직함을 차분하게 인정해야 한다.  도덕적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 비난하는 일은, 감정마저 지배하고 있는 늙은 중년의 몸뚱아리 그 자체인 당신 스스로를 부정 또는 회피하는 일이다.  중년의 남성은 찌들어버린 자신의 삶에 구원을 바랬을 뿐이다.  수많은 오점을 만들며 자신을 자괴감과 비난 속에 빠뜨리면서도 말이다.  


##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영화 속 미셀 윌리엄스의 미소에 나는 단번에 반해버렸었다.  아내가 보던 영화를 우연히 중간에 같이 보다가 말이다.  이후로 나는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거의 모두 찾아 감상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서 제럴딘은 마고에게 충고라며 이야기한다. ‘인생의 빈 틈새들을 미친놈처럼 일일이 메꿔가며 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러나, 알콜중독으로 아이를 방치한 혐의에 음주운전까지 일삼는 캐릭터가 충고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인생의 모든 틈새를 메꾸며 살 수는 없어도, 자신을 위해 메우고 싶은 틈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지 않을까?

무난한 관계의 남편과 감정이 기울어버린 옆집 남자와의 사이에서, 마고는 갈등한다.  옆집 남자와의 밤 수영장에서 서로가 닿을 듯 유영하다가 남자의 손이 종아리에 닿자 바로 수영장을 나와버리는 씬에서처럼, 마고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처지를 끊임없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사가는 옆집 남자의 모습에 힘들어하고 감정을 남편에게 틀켰을 때, 마고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남편을 떠난다.  30년 후에 만나자던 둘의 약속은 그렇게 며칠만에 이루어지는데, 격렬한 사랑의 감정은 다시 식어버리고 마고는 혼자가 된다.  술취한 제럴딘의 충고를 듣고 난 후 전 남편은 마고에게 말한다.  ‘어떤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떠나버린 감정만큼, 갈라진 부부의 관계는 더 이상 봉합하기 어렵다.  감정의 파도에서 휘말리고 허우적대는 마고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마고의 모습 역시 솔직함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다.  감정은 언제나 솔직하다.  솔직함은 수많은 생각의 가지를 만들어내지만, 답이 없을지언정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며, 이성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은 제도와 상관없이 타오르고 식어버리기를 반복한다.  그 피로와 책임은 오로지 본인의 것이며, 인간은 자신이 감당하는 그 많은 것으로 인해 파멸하거나 성장한다.  놀이기구에 혼자 올라탄 마고의 외로움이 부디 오래지 않기를..  감정의 파도에 휘말리되, 인생의 자잘한 빈틈을 메꾸며 단단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베놈같은 마블영화보다는, 이제껏 출연해 온 수많은 깊이있는 영화들에서 만날 수 있기를..   


##냉정과 열정사이


내가 좀 더 젊은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설레는 마음으로 두 주인공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첫 해외여행지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선택해서 가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의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아쉬움이었다. 


피렌체라는 배경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보이는 동양인의 모습이 조금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두 주인공의 관계는 러닝타임 내내 답답하고 진부해서 몰입이 되지 않는데다, 여주인공을 맡은 캐릭터는 이상하게 감정적으로 몰입이 더욱 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웅장한 배경음악은 화면에 비해 너무 과해서 눈과 귀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 중후반에서의 엔야의 목소리는 밀라노와 피렌체의 배경과 어느정도 어울렸지만, 역시 몰입은 어려웠다.  남은 건 피렌체의 풍경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된 20년 전에 봤다면 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지금의 내가 이 영화에 느끼는 아쉬움과 뒤섞이지 않는 듯한 감정은 중년의 식어버린 감정들을 대변하는 현상인 것일까?  괜시리 궁금하고 슬퍼졌다.  아직 유럽을 한 곳도 밟아보지 못한 나에게 하나의 목적지가 생겼다는 데에 작은 위로를 얹어야 하는 걸까 싶었다. 


##더 랍스터(The Lobster)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이 되어야만 하는 호텔, 커플만이 인정되는 세상.  둘이 아니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디스토피아에서 커플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커플이 되고 싶지만 감정적 허락이 되지 않아 일부러 공통점을 만들어 커플이 되는 사람들의 어긋남, 그리고 혼자 살아가야하는 집단에서 결국 감정의 교류가 생겨 남몰래 커플이 되어야 하는 은밀함.  적당히 부풀린 풍선을 손 안에 온전히 쥐려 하지만 손가락 사이사이로 풍선이 비어져 나오듯이, 통제의 틈새에서는 언제나 통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감정을 통제의 수단으로 만들 때, 사랑은 그 수단으로서 가능할까?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커플이 되기위한 호텔에 들어설 때, 그에게 주어진 45일이라는 시간, 싱글족을 사냥해야 하는 운명, 그리고 커플의 좋은점을 강요하는 교육..  냉혈한인척 위장하고 만난 여성이 개가 되어버린 형을 죽였을 때, 그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발각된다.  생존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어설펐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그는 호텔을 탈출하여 자신이 한 때 사냥감으로 노렸던 싱글족의 집단에 들어간다.  평생 싱글로 살고자 다짐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런 다짐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같은 근시를 가진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틀에 맞지 않아 뛰쳐나온 주인공은 다시 다른 틀에서 어긋나버린다.  

싱글족의 리더는 그런 그 둘의 감정을 눈치채고 여자를 장님으로 만들어버리고 남자를 차지하려 하지만, 주인공은 리더를 그녀의 무덤에 눕힌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와 공통점을 만들고자 그도 스스로 눈을 멀게하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눈먼 여자는 그렇게 그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마치 영원을 약속하는 커플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 맘대로 되는 일은 절대 없으며, 인간은 틀 속에 가둬둘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은 동물이 된다면 랍스터가 될 것이라 말한다.  푸른 피를 가지고 죽지 않는 삶을 사는 랍스터를 갈망한다.  이 역시 왜 하필 랍스터를 선택한 것인지, 감독이 의도한 것은 무엇인지 잘 알수 없다.  


##비거 스플래쉬


‘본즈 앤 올’ 개봉소식 이야기를 듣다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라는 이야기에 찾아서 본 영화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처럼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 안에 녹아든 이야기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팔레르모 섬 풍경 안에서 자유분방하고 고요한 두 사람의 휴식을 깨는, 전 매니저이자 연인관계였던 남자의 등장.  일 년 전 찾아낸 자신의 딸이라며 데려온 젊은 여자.  네 명의 남녀는 한 공간에서 어우려지며 평화는 서서히 시끄러워지고, 갈등은 점점 커진다.  갈등은 뒤섞인 욕망이다.  갑자기 나타난 전 남친은 자신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남친이 데려온 딸이라는 여자는 지금의 남친을 스스럼없이 유혹한다.  욕망과 갈등이 수시로 뒤엉키며 작은 긴장을 유지하는데, 그것을 감싸는 이탈리아의 배경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긴장과 잘 어울린다.  

사실 내용은 별 것 없다.  갈등과 욕망은 결국 폭발하고, 전 애인은 지금의 남친에 의해 수영장에서 죽임을 당한다.  성인이 된 딸이라며 데려온 여자는 아빠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미성년자로 밝혀지는 데다, 영어만 가능한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이탈리어에 능숙했다.  갈등의 한 축이자 의문의 대상인 여자아이를 떠나보내고 두 주인공은 용의자 신분으로 섬에 머물러야 하지만, 수사하는 형사는 과거 락커였던 여주인공에게 팬이었다며 사인을 받고 신나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렇게 갈등은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그런데, 뭔가 결말을 만들 듯한 긴장과 허무함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기제가 이탈리아라는 배경이다.  감독은 항상 그러했다.  모든 진지한 또는 평범하거나 허무한 이야기들을 이탈리아라는 배경 안으로 잘 버무려넣어 돋보이게 했다.  배경은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이다.  서사와 거의 관계가 없음에도, 배경이 없다면 시시하거나 세간에 회자되는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수영장과 물과, 뱀은 일종의 클리쉐임에도, 배경에 녹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난민의 이야기는 자칫 혐오나 비판점이 될 수 있음에도 그저 섬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읽힌다.  그것이 감독의 힘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를 보게 하는 힘.  그래서 ‘본즈 앤 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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