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장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웅 Jan 22. 2023

2023년 구정 연휴의 단상

  명절 연휴 어디도 가지 않기로 결정하니, 3일이 그대로 할 일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주말이면 하는 일상을 연휴에도 하려니 살짝 지루함이 묻어나서, 무얼 할까 하다가 하루는 배낚시를 하기로 하고 매번 승선하는 배에 승선예약을 했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아무 계획없는 날로 남겨두었다.  날이 추워진다고 하니 더욱 할 일 없는 날들이 되어간다. 


  새벽부터 대정으로 넘어가 승선한 배는 하루 종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주의보 뒤끝이라 파도가 아직 남아 있어 배는 계속 롤링을 했고, 마라도 부근까지 나가서는 롤링이 더 심하고 물살이 세서 낚시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 년에 한 번 숙제같이 하는 배낚시라 감각도 기법도 승선 때마다 백지상태다.  종일 입질도 못 받고 옆에서 사이즈 좋은 참돔들 낚아 올리는 모습만 구경하다가, 마지막 즈음에 묵직하게 힘을 쓰는 녀석을 걸었다.  20여 분을 밀고 당기다 건진 녀석은 덩치가 좋은 78센치 참돔으로, 그 날의 최대어가 되었다.    

  참돔 배낚시는 매년 숙제같이 치르는 일이다.  경험이 자산이라는 생각을 변함없이 유지 중이다.  개원을 하고 사업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돈도 체력과 상황을 보아가며 쓸 때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생각이 나거나 필요하면 사먹는 것이 훨씬 효율적임을 알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몸도 조금씩 아프고 약해짐을 느끼고 있어, 몸을 움직이는 일도 점점 버거워진다.  그럼에도 경험이 자산이라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몸이 점점 힘이 드니까 숙제를 정해두고 반드시 한다는 생각으로 그 고집을 부리고 있다.


  경험을 중요시 하는 일이라 사실 먹는다는 행위와 감각에 그다지 방점을 두지 않는다.  낚시의 감각, 채비의 운용, 그리고 잡았을 때의 쾌감, 직접 손질을 하는 수고와 누군가의 탁자 위에 손질된 회나 먹거리를 올릴 때의 뿌듯과 만족감이 낚시로 내가 원하는 경험의 거의 전부다.  거기에 가끔씩의 반복을 통한 좀 더 나아짐까지..  내가 숙제처럼 하는 경험들은 대부분 몸에 새기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면, 내 주변의 어떤 대상들을 바라보는 일에 있어 이해가 생긴다.  이해가 생기면 함부로 다가가거나 말을 내뱉지 않는다.  서로가 기분상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적당한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는 많은 경우에서 유용하다.  진료실에서도 바깥에서도 내가 무례해지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이다.  함부로 아는 척 하지 않고, 생각없이 가볍게 행동하지 않게 한다.  물론, 거리라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주어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점점 편하고 가벼운 것이 좋아지는 세상에서 마찬가지로 쉽게 범하는 무례나 실수에 조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고집스럽게 편리함에 대해 경계하는 편이다.  옆에서 보면 답답하다는 소리도 좀 듣지만, 그 방법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니 별 수 없다. 


  남은 이틀의 첫 날, 그러니까 구정 명절 아침에 이런 자신에 취한 글이나 쓰고 있다.  오늘은 밖에 나가도 문 연 식당이나 까페가 적을 듯 하니, 라이 산책을 간단히 시키고 들어올까 싶다.  저녁에는 잡은 참돔을 눈치챈 술꾼 친구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어 모이기로 했다.  내일은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요리를 하거나 할 것이다.  추워지고 눈이 많이 온다는데, 날씨를 보며 결정할 일이다.  여유로우니 가벼운데, 성정이 가만있지를 못해서 조금 답답하다.  


  요즘은 날마다 민음사 일력의 구절을 필사하고, 전성원의 하루교양공부를 일별로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필사는 악필교정에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고, 하루교양공부는 이제껏 읽은 책들을 통해 알아간 파편처럼 흩어진 지식들이 조금 정돈되어 머리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 계속 읽게 된다.  그리고, 쓰고 읽으면서 글거리도 만들곤 한다.  시간도 많이 들지 않아 이래저래 좋은 기회다 싶어 올해는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한다.  역시 경험은 이해뿐 아니라 기회도 만들어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1987년에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