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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an 30. 2023

프랑크푸르트 키친과 나의 병원

  개원할 공간을 맨 처음 둘러보았을 때, 나는 가장 먼저 바다가 보이는지, 어느 위치에서 보이는 지를 체크했다.  식당과 연회장을 겸했던 넓은 공간은 반쯤 폐허가 된 상태였다.  중산간에 가까운 봉개 지역에서 바다는 저 멀리 겨우 보였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서서, 계약한 층의 도면을 받아든 나는 개략적인 공간 배치를 구상했다.  


  우선 바다가 잘 보이는, 지금 내가 선 위치는 무조건 진료실이 되어야 했다.  비록 멀리 겨우 보일지라도, 이 자리 외에는 진료실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진료실과 대각선으로 위치한 반대측 공간은 주방으로 쓰이던 공간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긴 창으로 멀리 한라산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 자리는 내시경실을 배치하기로 구상했다.  한라산을 한 번 보고나서 내시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나름의 머리를 쥐어짜서 각각 배치해 나갔다.  물리치료실, 방사선실, 처치실, 수액실, 주사실, 그리고 탕비실..  넓은 공간은 물리치료와 국가검진, 그리고 전공인 외과관련 시술을 바탕으로 구상하는데 넉넉했다.  


  공간을 배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동선이었다.  진료를 위해 내가 다녀야 할 동선이, 너무 길거나 복잡해서 스스로 힘들지 않아야 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선이 너무 복잡해지면 일도 쉬이 지친다.  설계를 의뢰한 인테리어 업자도 동선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고집한 공간배치는 쉬이 바뀌었다.  동선을 강조하자면, 내가 생각한 바다가 보이는 진료실과 한라산이 보이는 내시경실은 서로 가장 먼 위치에 있어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두 공간의 배치를 끝까지 고집했고, 그렇게 현재의 병원 공간이 만들어졌다.  병원에 들어오며 정면으로 보이는 접수데스크와, 그 뒤로 진료실과 처치실과 물리치료실이 대기실을 중심으로 모여있어 직원들의 배치를 적절하게 집중시켰다.  집중은 굳이 통신기기 등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서로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주사실과 탕비실 방사선실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복도의 끝은 내시경실이, 90도로 꺾어 들어가면 탈의실과 수액실이 배치되었다.  내시경실과 수액실이 멀리 배치되어 동선효율은 떨어지지만, 한라산이 보이는 내시경실의 이점은 적어도 나에겐 만족스러웠고, 수액실은 여러 사람이 오가는 주요 동선에서 벗어나 있어 오히려 조용하게 수액을 맞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가끔 수액실의 환자를 살피러 가거나, 내시경을 해야 할 때엔 많이 걷거나 뛰어야 한다.  그렇지만, 넓은 공간이라도 운동장만큼은 아닌지라 지금의 체력으로 움직이는 데엔 무리가 없다.  


  최적의 공간을 구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생계와 사회적 역할을 위해 하루 가장 긴 시간을, 그리고 되도록 오랫동안 정해진 공간 안에서 머무르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은 각각의 작은 공간을 배치하기엔 넉넉하지만, 활용이나 동선의 효율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타협이 필요한데, 타협의 한 방법은 적응이다.  환자들은 북적거림이 덜한 넓은 공간의 병원이 생겼음을 좋아한다.  일하는 우리 역시 물품의 배치나 저장에 있어 걸리적거리거나 복잡함이 덜해 한결 편하다.  그러나, 일하다보면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 청소나 물품배치에 따른 관리가 조금 힘들다는 문제 등등이 발생한다.  이제 개원 일 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보면, 원장인 나와 오픈멤버나 다름없는 지금의 직원들 모두 공간에 적응해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나름 적응한 것이다.  그래서 최적의 공간은, 공간배치와 동선 그리고 적응으로 이루어진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는 1927년 국제무역박람회에 새로운 개념의 부엌구조를 선보인다.  현대 시스템 키친의 원조격인 프랑크푸르트 키친(Frankfurt kitchen)이 그것인데, 주방에서 일하는 여성의 동선을 최대한 단축시키고, 주방공간 활용의 최대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참고로 당시의 주방은 주부가 하루동안 움직이는 동선이 거의 90m였는데, 프랑크푸르트 키친에서는 8m로 크게 단축되었다.  새로운 주방은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었다.  재료를 보관하는 무광택 알루미늄 서랍이 18개나 되었지만, 밀가루를 담는 서랍은 참나무의 탄닌산을 싫어하는 밀가루벌레의 특성을 활용하여 참나무로 따로 제작했다.  그리고 주방 전체의 색상은 코발트블루로 도색하였는데, 이는 파리가 싫어하는 색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리시 발생하는 연기와 냄새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후드를 화덕 위에 설치했고, 바닥과 붙박이장을 붙여서 가구 밑을 청소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프랑크푸르트 키친은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려는 테일러리즘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가정부를 둘 수 없는 중산층 가정을 위한 설계였다.  그러나, 효율을 중시한 나머지 주방공간이 너무 협소해진다는 단점이 있었고, 혁신적인 주방구조는 고급화와 맞물려 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효율은 목적했던 사람들을 비껴갔다.  그리고 효율은,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현재의 상황에 이어보면 인간을 더욱 노동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시대에 상상하고 목적했던 것들이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은 셈이다.  효율적이고 고급화된 시스템 키친 안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들이고,  그들은 회복과 재생산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보수를 지불받지 못한다. 

  벽체와 바닥 색상의 기본 톤을 밝은 베이지로 설정했고, 조명도 비슷한 톤으로 설치하니 병원은 넓으면서도 따뜻하고 안정된 느낌을 선사했다.  이는 병원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감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병원이 제공하는 진료내역과 서비스 내역을 홍보해야 하니 안내데스크 아래에는 여러 안내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개인 의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디자인적 아쉬움을 감수하고 다양한 안내지를 게시한다.  그런데, 나는 병원 공간을 그런 안내나 홍보만으로 채우기가 싫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대기실의 뒷면 넓은 벽에는 홍보물을 배제하고 문신기 작가의 일러스트를 넓게 걸어 배치했다.  그리고 창가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대기하면서 읽을만한 교양잡지들과 책들을 배치한 책꽂이를 설치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내시경실로 이어지는 복도로는 이현정 작가의 세밀화 작품을 배치해서 시선의 집중도를 높였다.  그러니까, 병원이 너무 병원같이만 보이지 않게 공간을 달리 활용해 보았고, 내 나름으로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장삿속을 좀 줄여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 의료체계와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개인의원은 자본의 성향을, 원장은 자본가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덕지덕지 붙은 안내와 홍보물들이 그런 현실을 증명한다.  나는 되도록 자본의 냄새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병원 안에 녹일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그 고민을 작품들과 책을 배치함으로, 현실적인 분위기와의 차별을 시도했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개인의원의 처지때문에, 엇나갈 수 밖에 없는 방향성이나 본질을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면서도, 동네 개인의원이 가질 수 있는 친근함이나 따스함 같은 요소를 공존하게 하는, 일종의 타협을 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키친은 협소해서 효율적이었고, 중산층의 편리를 도모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고급스러운 시스템 키친의 원조가 되었다.  나의 병원은 넓어서 효율이 떨어지지만 적응으로 극복했고, 동네의원이 추구할 수 있는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타협을 벌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역사는 100여년이 되었고, 나의 병원은 이제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시작이나 다름없다.  내가 타협하며 지키려는 의도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현실이라는 무게감은 벌써부터 무겁게 나를 누르는데, 나는 얼마나 언제까지 내 생각들을 지키며 버틸 수 있을까 두렵다.  나는 지금의 병원 구조와 공간이 만족스럽고, 이 공간 안에 나의 생각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문제는 나의 생각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변한다면 변화의 마지노선은 어느 지점에서 만들 것인지이다.  현실의 중압감은 정말 버거운데, 그 무게를 지금도 절절하게 느끼는데, 나는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만 하고 있다.  100년 전의 마가레테도 나와 비슷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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