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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05. 2023

존재의 의미 : 20230205

   심포지움이 있어 주말진료를 마치자 마자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갔다.  처가가 인천에 있었고, 장인 장모님은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낸 뒤였다.  때마침 고생하신 두 분도 살필 겸 해서 인천행은 나름의 목적들이 뭉쳐진 여정이었다.  코로나 후유증에 효과가 있다고 최근 연구된 요법도 해 드릴 겸 해서 심포지움 참석 전 처가에 들러 두 분을 뵙고 바로 나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인이 새벽에 호흡이 힘들어 응급실에 가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불안과 긴장에 휩싸였다.  내가 해 드린 요법에 무슨 부작용이 생긴 것일까?  사실 장인은 전신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써드린다고 해 드린 것인데 아닌 밤중에 응급실이라니..  나는 일단 오전 심포지움에 참석해서 강의는 신경쓰지도 못하고 요법의 가능성 있는 부작용에 대해 미친듯 검색을 했다.  결과는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는 것.  그러나, 만의 하나 가능성때문에 나는 여전히 불안에 휩싸였다.  


  일단 장인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이동하며 계속 파악한 경과는 심장의 문제였고, 그 시간 심혈관 시술을 위해 시술실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도착하니 중환자실과 접한 시술실에서 장인은 시술 중이었고, 장모님은 대기실에서 불안과 지친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몇 년 전부터 장인은 심장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시술을 받고 별 문제없이 지내시다가, 최근에 조금만 걸어도 숨차고 몸이 아프다는 증상을 말씀하시곤 했다.  그 문제로 일주일 전 집 근처 병원신세를 지시기도 했는데, 그것이 심장의 문제일 지는 우리도 그 병원도 놓친 것이었다.  일단 나의 불안은 가라앉았다.  요법과는 무관하거나 영향이 있어도 미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요법을 시행한 입장에서, 불안과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 기분은 어쩔 수 없이 다행감으로 이어졌다.  


  의사로서 가족에게 시행한 의학적 처치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의 민망과 죄책감은 오로지 자신만의 괴로움과 고민으로 수렴된다.  가족들은 나의 눈치만을 살필 뿐, 별다른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환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불편과 나의 책임을 말한다.  그런 상황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나 역시 환자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활짝 열어 놓은 상태에서 분석과 고민을 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우선적으로 너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려는 나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괴로움 안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고요 안으로 갇힌 기분이 든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나는 작은 점으로 뭉쳐 바닥으로 떨어지듯 말없이 위축된다.  증상의 원인은 거의 명백에 가깝게 드러났다.  나는 긴 한숨으로 말없이 다행감을 느꼈다.  그러나, 일말의 죄책과 죄송은 남는다.  고생한 두 분을 살피러 사위가 와서 뭔가를 해 주었는데, 다음날 새벽 응급실로 실려간 상황은 가족들과 나에게 쉽게 지울 수 없는 인과관계를 의식하게 한다.


   옆에 앉아 시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장모님의 눈은 지치고 슬프며 공허했다.  장인이 너무 고생한다고 울먹이시는 모습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 눈빛에는 평생을 함께한 이가 옆에서 사라질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불안이 있었다.  존재에의 의미를 생각했다.  존재만으로 나의 삶이 충만해지는 누군가를 곁에 둔다는 것..  그것으로 여태껏 살아왔다고 그 눈빛은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모든 삶은 각자의 것,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독립적인 존재가 서로의 곁에 서서 여전히 각자의 삶에 충실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옆에서 가만히 앉은 장모님의 모습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다양하며 복잡할 수도 있음을 말없이 설명했다.  그것은 나이가 들며 어쩔 수 없는 마음과 감정의 변화일 수 있다.  주변이 점점 사라지고 좁아지며,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남는 노화의 과정은 독립적인 존재들이 서로 녹아 뒤섞이는 일일 수 있다.  각자의 삶과 독립이라는 단호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나도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버텨내야 하는 일인지, 그리고 내 가까운 주변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느낀다.  장모님의 눈빛은, 고집스레 내 생각을 관철하며 살아가는 나의 심리적 버거움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했다.  나도 나이가 들고 있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도 바뀔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타인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각자에게 그렇게 깊고 심오했다.  


  장인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잘 회복하셨다.  지금은 퇴원하여 집에 계신다.  나는 좀 더 마음의 버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아내가 간병차 인천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 아들과 살림과 일을 챙기느라 존재의 부재를 크게 느끼고 있다.  수혈의 문제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지라, 관계의  의미를 더욱 깊이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나 스스로 버티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고, 내 주변의 존재들을 다시 의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정마저도 내 앞에 먼저 살아 온 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점점 나이가 들면서 완고했던 생각들이 달라지고 유연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존재의 의미만큼 나도 나이들고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은 책임의 위중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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