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과 1학년이었던 1994년, 나는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렸다.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버스가 나란히 서 있는 통로를 걷고 있는데, 옆의 버스에서 내리는 내 또래의 어떤 학생에게 점퍼를 입은 어느 중년 아저씨가 다가가더니 “학생, 가방 좀 봅시다.” 그러는 것이었다. 당시는 문민정부 시대였는데, 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며 ‘아직도 검문검색을 하나?’ 속으로 생각하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내가 맨 가방 안에는 버스 안에서 읽으려고 동아리방에서 가져 온 항일무장투쟁사 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여정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간 뒤, 동아리방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검문을 당했으면 그 책 때문에 아마 경찰서로 끌려갔을거다.”
친구 H는 군대에서 처음 만났다. 2002년 4월, 중위 군의관이 되어 다리로 연결된 남쪽 큰 섬의 작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그는 동원과에서 근무하는 상병이었다. 나이가 내 또래인데다가 항상 긴장한 눈빛으로 간부들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무슨 사연이 있어 뒤늦게 입대한건가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사연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그는 기무사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기무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부대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 때마다 동원장교는 그를 의무대로 보내 수액을 맞고 쉬게 해 주었다. 종종 내가 그에게 수액을 달아주었는데, 나는 사정도 모르고 단지 그의 깡마른 몸매를 보고 그냥 많이 피곤하고 힘든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는 대단한 학생운동가였다. 95년 5.18 학살자 처단 시위를 포함해서 항상 데모대의 맨 앞에 서는 인물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수사기관의 표적이 되었고, 내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군대는 가기 싫어서 버티다가 입대 만료일 3일이 지나 끌려가 강제입대를 했다. 군인신분이 되자 내사는 자연스레 기무사가 넘겨받게 되었고, 그는 군생활 내내 기무사의 감시를 받았다. 기무사의 감시는 매우 노골적이었다. 부대에서도 그랬지만, 휴가를 나가도 그에게는 항상 기무사 사병이 붙어 졸졸 따라다녔다. 한 번은 일부러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니 그를 감시하는 사병도 그 골목으로 들어와 마주하더랬다. 그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 기무사 간부는 대놓고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넌 내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구속시켜버릴거야. 잘 버텨보던지..”
그가 휴가출발하는 어느날, 휴가출발 신고를 받은 동원장교가 그에게 부탁을 했다. 책 하나를 사다 달라는 것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의 자전적 에세이인 역정이었다. 그 책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책은 부대 내에서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고, 특히 본인에게는 심각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책이었다. 동원장교가 지금 자신을 시험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간부인데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휴가를 나온 그는 일부러 가장 큰 서점인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몇 권의 책과 함께 역정을 집어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가방 깊숙이 그 책들을 집어넣고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휴가 마지막날 그 책들과 함께 복귀했다. 그는 불안했다. 만약에 위병소에서 검문을 당한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기무사로 끌려갈 판이었다. 동원장교는 그 염려를 의식한 듯 복귀하는 그에게 미리 전화해서 말했다.
“H야, 복귀 전에 관사로 들러라.”
부대의 구조는 위병소 바로 앞에서 부대 담벼락을 따라 관사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위병소를 거치기 직전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동원장교의 관사로 갔고, 거기서 책을 전해준 뒤에 다시 나와 위병소를 통과해 부대로 복귀한 것이었다. 위병소에서는 다행이도 검문같은 것은 없었고, 문제될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무사히 복귀신고를 마치고 정비한 뒤에 맘편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훗날 그는 나와의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때 동원장교님이 왜 그 책을 나한테 사오라고 부탁했는지 지금도 궁금해.”
나는 군의관으로 있던 그 섬이 너무 좋아서, 해마다 근무지를 바꿔 결국 집 부근이나 대도시 부근으로 가는 다른 군의관들과는 다르게 3년을 그 섬에 있었다. 오래 있다보니 다른 몇몇 장교들과 친하게 지내곤 했는데, 동원장교와도 친하게 지냈었다. 지금도 형님동생사이로 소소한 연결선을 만들어 지내고 있다. 여튼, 당시 나는 세상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알 수 없어 답답해 하고 있었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이 지나고 참여정부가 막 출범한 시기였다. 어느날 동원장교는 마치 내가 그런 고민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나에게 ‘이 책 한 번 읽어볼래?’ 하며 넌지시 책 두 권을 건넸다. 그 책은 장 그르니에의 체 게바라 평전과, 리영희 선생님의 역정이었다. 두 책을 읽은 나는 뚫린 바닥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드는 물처럼 독서의 세계로 급격하게 빨려들었다. 인쇄된 활자의 세계에 머리가 현혹된 나는, 읽은 책과 연관된 저자나 관련된 내용의 책들을 하나하나 뒤져 찾아내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내 다독습관은 동원장교가 건넨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대 내에서도 나는 이적물 여부는 상관하지 않고 읽고 싶은 책들을 읽어나갔다. 그 중 한 권이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항간에서 말하는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의 그 책을, 나는 한겨울 혹한기 훈련장 A형 텐트 안에서 작은 랜턴을 의지해서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초판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안다. 마치 자판 하나하나 눌러 찍은 것 같은, 깨알같은 글자크기의 인쇄체 문장들을.. 그걸 LED도 아닌 일반 랜턴불빛 아래 추운 A형 텐트 안에서 엎드려 읽어나갔다.
제주에 내려와 꽤 오랜 시간을 살고 있었을 때, H는 어느날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잘 지내는지, 동원장교 형님과도 요즘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 육지를 오가야 하긴 하지만 자신도 제주생활을 시작했다며 말이다. 몇십년만에 만나 마주한 술자리에서 그도 나처럼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역정을 구입해서 동원장교에게 건넨 일화를 이야기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동원장교에게서 받은 그 책이 H가 감시와 검문을 피해가며 사왔던 그 책이었다. 인연은 이렇게 재밌고 신기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세상이 변했다면서도 검열과 감시가 여전했던 시대의 끝자락을 함께 살아왔고, 좋은 책은 그 와중에도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추억의 일화지만, 독서의 습관과 사상의 뿌리를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의 고마운 인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