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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26. 2023

정체성; 20230226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0년 영화 ‘그을린 사랑’은, 관습과 전쟁의 비극 속에서 철저하게 짓밟힌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쌍둥이 남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옥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감옥에서 태어난 존재는 타인이 아니고 바로 자신들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의 혼란과, 1+1은 1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의 어떤 자괴감..  쌍둥이 남매의 정체성은 바꿀 방법 없이 도저한 암울함에서 고정되고 만다. 


  그래픽 노블 ‘피부색깔 꿀색’ 역시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5살에 고아로 발견되어 벨기에로 입양간 한인 융은, 같은 처지의 입양인 친구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반항하여 ‘썩은 사과’가 되어버리거나, 결국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에도,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고민을, 항상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는 엄마의 모습과, 사무라이 복장을 한 무사의 모습으로 표현하곤 한다.  찾을래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은 끝없는 혼란과 자기파괴로 이어짐을, 이 그래픽 노블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30년만에 연락이 닿은 어머니는, 2월의 어느날 출근하는 나에게 전화하셔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날은 내 생일 다음날이었다.  ‘제 생일 어제였쟎아요.’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아니라고, ‘네 생일이 오늘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알 수 없는 혼란이 회오리처럼 몰려왔고, 눈 앞이 어지러웠다.  호적과 등본에도 분명하게 찍혀있는 숫자로 당연히 알아왔던 내 생일이, 나를 낳은 어머니의 한 마디에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이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엔 걸어서 출퇴근 했었다.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호흡과 시선을 가다듬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마 운전 중이었다면 나는 큰 사고를 냈을 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생일 날짜가 단지 하루 바뀌는 일에 내 정체성이 한 순간에 뒤흔들렸다.  그 작은 차이로,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이 하루 종일 나를 감싸안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르겠고, 왜 이런 오차가 발생한 것인지도 궁금했다.  인상조차 제대로 펴지지 않아서 표정관리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녁즈음에 어머니가 다시 전화하셨다.  


  ‘생각해보니 네 생일 어제가 맞다.  내가 착각했어.’


  다시,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나를 감싸고 있던 의문과 혼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거짓말처럼 평온을 되찾았고,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표정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 하루는 지금도 선연히 기억되는, 신비하고 강렬한 경험이었다.  정체성은 그런 것이었다. 


  생일이 그리 즐거운 시간은 아니다.  생일 주변의 시기엔 내 생일에 관련한 어떤 일과나 행사가 있어도 뭔가 좀 어색한 기분에서 나오질 못한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은 내 생일이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같이 파티를 즐긴다.  나 역시 파티의 주인공으로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마음 속 무게중심 같은 부분에서 좀 더 묵직하게 나를 끌어내리는 감각은 떨쳐지지 않는다.  묵직한 감각을 구성하는 것들은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어릴적 우울, 불안, 흉터, 생일임을 축하받고자 하다가 가족에게 받았던 상처, 그런 가족에게서 떨어져나와 세상에 혼자인듯 살았던 시절의 어떤 누추함 등등..  그것들은 결국 나의 정체성이 되었고, 생일즈음이면 묵직한 추가 달리는 감정의 실선이다.   쉽게 사라지지도, 사라질 수도 없는 평생의 추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생일이 포함된 지난 한 주를 보냈다.  직원들의 축하도 받고, 지인들과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선물도 받았지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묵직함을 내내 마음 안에서 느껴야 했던 주간이었다. 


  정체성의 문제는 늘 나를 괴롭힌다.  굳이 존재에 대한 정체성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렇다.  개원하여 병원을 운영하지만, 진료에 있어 나의 정체성을 조금 뭉개고 눙쳐야 하는 현실들이 수없이 이어져 마음이 무겁다.  살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 날마다 이어지고, 그래서 나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종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나중에 좀 더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써 보고 싶은 주제다.  종교의 본질과, 종교의 방식과, 현실 안에서 종교의 역할이라는 문제들이 내 정체성의 혼란과 고민을 가중시킨다.  정체성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안정을 위협한다.  혼란과 위협이 많아지니, 마흔 중반을 넘어선 신체에도 변화가 느껴져서, 잇몸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자잘하게 통증이 생기고 리비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내 정체성은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나를 흔들어댈 것이다.  몸도 그 만큼 나빠질 것이다.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버티려 내치는 발버둥도 더 격렬해질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사실 그런 과정의 연속과 반복이지 않은가.  위안이라면 그 사실, 단 하나의 사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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