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나름 학폭 피해자이다. 폭력의 피해를 당한 기간도 꽤 길다. 국민학교 5-6학년 때부터 고 2즈음 까지였으니 사춘기 학생시절의 대부분을 일말의 불안으로 채우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 나는 웃옷을 벗으면 갈빗대가 그대로 드러나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깡말랐고, 집안분위기도 그리 좋지 않아서 약간의 우울을 얹고 다니는 아이었다.
국민학교때 나를 괴롭혔던 아이는 골격이 다부진 체격이었는데, 쉬는시간이면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수시로 건드려 도발했다. 내가 그 도발에 몸을 움직이면 그 때부터는 몸을 써서 나를 가격하고는 도망치며 놀렸다. 중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힘 좀 쓰거나 ‘가오’를 잡는 아이들이 만만하게 괴롭히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일상이나 학교생활이 힘들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름 공부를 잘 해서였다. 성적은 자체로 순수한 힘이자 일종의 계급인 시절이었다. 깡마르고 우울한 표정의 녀석이지만 공부는 좀 했으니,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은 나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컨닝’을 부탁했다. 알려주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중 3시절을 녀석들의 시험 부정행위에 가담하며 보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통해 이야기가 돌았는지, 고 1때 한 반이 된 친구들 중 한 무리가 나를 찾아왔다. 약간의 협박조가 섞인 부탁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 말은 결국 부정행위를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결국 나는 그 녀석들의 부정행위를 일년 내내 도울 수 밖에 없었고, 그 일은 고 2시절까지 계속되었다. 어떤 녀석은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나를 비하하는 식으로 언어폭력을 가하곤 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런 학창시절을 보냈음을 복잡한 마음과 함께 담담하게 풀어본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와서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나는 담담하다. 그런 녀석들은 하던대로 그저 그런 녀석들로 살아갔고, 고향을 떠나 타지로 대학진학을 한 나는 이후로 녀석들을 만날 일은 커녕 고향에도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고, 우울과 괴로움이 한꺼풀 쌓였던 과거의 기억들은 서서히 잊었다. 세상의 분위기도 그런 일들에 대해 시큰둥에 가깝게 반응하던 때였다. 이지메라는 단어가 돌기 시작하고 그것이 사회문제가 된 시기가 1990년대이다. 나는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 초에 사춘기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내가 겪은 괴로움은 그저 친구들간의 가벼운 갈등이나 아직은 덜자란 수컷들의 알력싸움 같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괴롭힌 녀석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겪었던 우울과 괴로움에 복수나 분노의 감정은 전혀 없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30년 전의 자잘한 일들을 여전히 기억하며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일도 사실 좀 웃기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그 녀석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어떤 녀석들은 아직도 얼굴이 기억난다. 좋은 경험들과 친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하지만, 나의 우울과 괴로움의 원인이었던 녀석들 역시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명백한 트라우마다. 내가 마음에 담지 않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에 담긴 어떤 크기의 응어리이다. 무의식의 응어리.. 그것은 트라우마가 형성되는 매우 명백한 기전이자 핵심이다.
정순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자행한 학폭논란 내용을 접하고서, 나는 문득 내 학창시절의 괴로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학폭에 대응한 조처들과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듣고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것은 담담했던 나의 트라우마에 당겨진 불꽃같은 사건이었다. 분노의 이유는 철저하게 짓밟힌 피해자의 현재와, 그것과는 무관하게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아무렇지 않게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가해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너무도 집요하고 철저하게, 웃는 얼굴로 상대를 폭력으로 짓밟고 일어섰음에도 세상의 법과 규칙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트라우마는 사소한 갈등에서도 남겨지는 법이다. 그런데, 정순신의 아들놈에게 당한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심각할까. 내가 겪은 학폭의 경중을 떠나, 나는 내 나름으로나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내 인생의 길을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또는 관계적 마지노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학업을 이어나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가 무의식 중에 조심하는 경계가 있었다. 그런데, 정순신 아들놈 건은 피해자가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칠 때, 부모까지 나서서 학교를 무력화시키고 피해자의 발버둥을 철저하게 짓밟아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 그럼에도 그것이 합법적 행위였다고 인정되었다. 피해자의 트라우마의 크기는 과연 우리가 가늠할 수 있을지 두렵다. 그리고, 법과 규율이 있다는 세상의 정의는 이미 고사해버렸음을 실감한다.
세상은 좀 더 나아졌다는데, 내막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조국집안의 사태에서 보듯, 상류카르텔 안에서의 문제적 상부상조는 이젠 보편이 되어버린 듯 하다. 한동훈 자녀들의 스펙에서 느끼듯, 상위계급들의 집요한 스펙쌓기는 능력있는 부모들의 필수 육아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정순신과 그 아들놈의 사태에서 보듯, 세상은 계급과 합법이라는 명목으로 가해자의 인생은 보장을 받는데, 피해자는 철저하게 밟혀 존재마저 부정당한다. 나는 궁금하다. 당신들은 한국사회의 상류계급이라는 족속들의 이러한 보편을 알고 있었는지.. 이제까지 드러난 상류계급의 모습들에 납득이 가는지.. 그리고, 당신은 저들같이 맹렬하게 나와 내 가족을 챙겨가며 세상의 기득을 거머쥘 수는 있는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서울대 출신이라는 인간이 기본 상식도 공감능력도 없는 상태로 대통령이 되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를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공부하면 갈 수 있는 대학이 서울대라는 현실, 이런 교육현실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픽션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픽션을 보고들으며 자유로이 웃고울며 분노하고 따뜻해하는 모든 감정은, 현실과의 거리감 또는 경계가 존재해서, 그럴 리 없다는 일종의 안심을 전제로 가능하다. 그런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이렇게 현실과 일치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계가 무너져 현실과 드라마가 일치할 때, 우리는 안심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자’와 ‘당해도 되는 자’가 존재하는 세상,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와 계급이 선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그렇다면 복수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정순신과 그 아들놈에게 당한 피해자의 복수를 우리는 정말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아쉽지만 또는 당연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복수의 대부분의 방식은 현실에서 불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적이고 인위적인 설정이 가득한 드라마 안에서나 가능하다. 분노의 지점이 일치할 뿐, 카타르시스의 지점은 일치할 수 없다는 점은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위안일까, 슬픔일까? 그래서 나는 간절하게 기도한다. 정순신의 가족의 위법여부를 철저하게 가려 처벌받기를.. 그리고, 정순신 아들놈은 더 이상 학업을 할 수 없게 만들고,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이 전 세계 어디를 다니든 꼬리표처럼 붙어 그의 앞길을 훼방하기를.. 그게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사죄하는 최소한의 모습일 것이다. 덧붙인다면,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나의 트라우마를 일깨워버린 가해자 그녀석에게 작은 저주를 건넨다. 세상의 꼬라지와 녀석의 환경과 그 부모를 감안했을 때, 녀석이 잘못을 제대로 깨닫거나 반성할 가능성이 그리 많아보이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