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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19. 2024

양아치와 밥그릇 : 20240219

  1.

  목요일 오후는 고정적으로 휴진한다.  그 시간엔 2주에 한 번 근처 요양원에 촉탁의 방문진료를 하고, 방문간호업체의 요청이 있을 때 방문진료를 다닌다.  국가에서 시행한다는 방문주치의제도 시범사업 내용에 따라 교육을 이수하고 준비를 마쳤다.  목요일 오후엔 이 사업에도 참여하여 왕진을 다닐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보가 안 되는 건지 환자들의 신청이 아예없고, 신청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듯 했다.  나에게 날아온 매뉴얼에는 그저 사업의 목적과 적용기준, 수가 안내와 프로그램 입력방법만이 적혀 있을 뿐이다.  


  방문진료를 다니다보면, 의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와 다녀야 할 이유들이 수없이 보인다.  거동 자체가 안되는 환자 문제도 있지만, 환자가 처한 환경, 케어 상태 등등이 보인다.  그리고, 노령화된 앞으로의 세상이 예측된다.  의사가 진료실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되는 사회가 다가오는 것이다.  의사를 진료실 밖으로 나오게 하던가, 그럴 의사가 부족하다면 의사 수를 적정수준으로 늘려서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현재에도 진료실 밖을 나와 왕진을 다니고 싶은 의사들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처럼, 왕진수가를 대폭 늘려서 의사가 움직이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방문진료는 내 의지에 따른 것이지, 수가를 생각하면 그 시간에 진료실에 앉아 있는 것이 훨씬 낫다. 


 2.

  나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단, 지금의 한국 의료상태에서는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전문의를 포함한 의사 수는 이미 많아서, 사람들은 감기에만 걸려도 아무때나 병원에 가서 몇 번이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국가별 의료이용률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환자가 몰려서 대기해야 하고, 소아과는 오픈런을 해야 하고, 지방에서는 특정 수술을 할 수 없어 서울로 가야하는 상황은 현재 세팅된 의료시스템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설명이 되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것은 환자들의 자유의지에 포함된 욕망의 문제,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포섭된 의료구조, 수도권에 집중되는 사회경제적 경향 같은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하나를 추가하자면 점점 증가하는 법적 분쟁의 결과들이 보여주는 심각한 부담이 있다.  


  이런 구조들을 좀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자면 의사 수는 어느 정도 늘려야 한다.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고, 지역 어디서나 필요한 진료와 수술이 가능하게끔 의사와 의료인력을 배치하고, 진료의 질적 수준의 유지를 위한 의사 역량관리와, 의료 행정 안에서도 다양한 의사들이 활동할 수 있으려면 의사의 수는 일차적으로 고려할 조건인 것이다.  


  3.

  의사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의료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리적인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조차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기에 보여 준 의사들의 모습은, 지금 여론의 근거부족한 비난의 한 원인이다.  공공의료의 확대와 그에 따른 의료인력의 확충, 그리고 의료의 각 직능들이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할의 분담에 대한 건의들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묵살했다.  이는 결국 ‘세상 바라보는 시야도 판단도 좁은 보수집단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이라는 폭탄을 맞았다.  의사 수가 어느 정도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이는 숫자 자체로 ‘깊은 빡침’을 불러오는 규모다.  게다가 이 숫자가 왜 필요한지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  의료체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는 제시나 계획도 없다.  단지, 의사가 부족해서 다가오는 노령화 사회와 지방의료의 유지, 그리고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숫자만 늘리면 된다고만 한다.  정부는 아예 양아치 두목이 되기로 나섰다.  거기에 언론과 정부 각 직능이 행동대장이 되어서 의사들을 두들겨 패기에 바쁘고, 여론은 감정적으로 의사들을 비난하기만 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식한 권력이 싸움을 건 탓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의사들의 자업자득인 면도 인정을 해야 한다. 


  이에 저항하는 의사집단 역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안을 두고 설명과 설득도 없다.  너무 센 펀치를 맞아가며 가드하기에 바쁜 형국이다.  결국 때리는 이와 맞는 이 모두 합리적 설명도 대안도 없다.  총선까지 버티거나 결론을 내야 한다는 기싸움만 존재한다.  정부나 의사들이나 사실, 앞으로의 의료가 어떻게 흘러가야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이 모두에게서 읽히지 않는다.  그저 취약하기만 한 권력이 총선을 앞두고 국면전환용으로 선택한 것이 만만해보이는 의사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4.

  나름의 대안들을 제시해보자.  현재의 10%도 안되는 공공의료 영역을 30% 까지 늘린다.  의료는 공공재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정부의 입장대로라면, 의대 교육비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주거나, 전공의 월급을 상당부분 지원해주거나, 독일처럼 국가가 제시하는 조건에 맞는 지역에 개원하는 의사에게는 개원자금을 일부 지원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자.  현재의 진료수가를 OECD 수준으로 충분히 올려주고, 왕진이나 방문진료도 수가를 충분히 주어 의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게 하자.  대신, 의료의 과용이나 남용을 막기 위해 국민들의 의료이용횟수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하자.  이런 모습이 사실 지금의 의료현실보다 합리적이고,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합리적 대안이지 않을까?  하지만 장담하건대, 정부나 의사들이나 이런 깊은 구조까지 뒤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의료에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의사들은 현재의 처지가 바뀌면서 불리한 구조와 수익의 저하를 감당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5.

  누군가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온 사람의 상식과 사고수준이 저 따위 수준이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국가 최고 통수권자로 뽑았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이 말에 담긴 모든 의미를 염두에 두고 말을 줄이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의 사태에 공감하는 것은 전공의들의 사직서와 의대생들의 휴학에 배어 있는 ‘깊은 빡침’ 정도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논리나 합리없이 벌어지는 이 사태에 내가 굳이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논리나 합리가 없는 싸움의 어느 지점에 내가 서 있다보니, 그냥 입이 근질거린다.  그래서 몇 자 적었다.  이 복잡하고 광활한 분야를 어떻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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