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교양공부; 1.14
그러니까, 그 해 국민학교 6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미로같은 골목을 달려 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로 나가면, 우측으로 슈퍼가 하나 있었고 그 옆으로 잡지가 그득 쌓인 집하소가 있었다. 서울에서 달마다 보내진 잡지를 받아 시내 서점에 배분하는 곳이었는데, 문 입구에는 잡지 포스터가 몇 개씩 달에 맞춰 붙어 있었다. 심부름을 가는 도중이었을 것이다. 급하게 뛰어가며 문득 그 집 문을 흘깃 보았는데, 큰 글자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고 인쇄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신동아였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그 문구를 보고 ‘사람이 저렇게도 죽을 수 있나?’라고 잠시 생각하고는 무심히 가던 길을 서둘러 달렸다. 그것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우리 집은 시내에서 멀지 않았다. 꾀죄죄하고 깡마른 꼬마들이 달리다 걷다 하며 골목을 벗어나 시내 중심가까지 가는데는 10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그 당시엔 대학생들의 시위가 빈번했다. 차들이 다니던 도로를 갑자기 뛰어들어 스크럼을 짠 대학생들이 도로를 점거했고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며 걸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전경들이 모여 대열을 만들었고,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최루탄은 대학생들만 괴롭히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시내 주변으로 퍼지는 최루가스는 시내와 가까운 우리집 마당까지 퍼졌다. 따듯한 오후햇살을 즐기려 마당에 모여 앉았던 동네 할머니들은 막 날아든 최루가스에 재채기를 한두번 하고 ‘또 시작이네’ 라면서 각자의 집이나 방으로 들어갔다. 최루가스는 해지는 늦은 오후까지 동네 사람들을 괴롭혔다.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던 독재타도라는 구호는 어렴풋한 비명과 고함으로 변했다가 사라졌지만, 동네에 스며든 최루가스는 그보다 오래 사람들을 괴롭혔다.
역사는 나와 가까운 곳에서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흐름과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모른채 성장했다. 내 성장기는 우울과 종교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학교공부로 채워졌다. 시내 대로변에서 시위를 하다가 백골단에 머리채를 잡혀 아스팔트 위로 질질 끌려가던 대학생의 모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몰랐다. 시내 골목골목을 이잡듯 뒤지는 백골단과 몸이 부딪혔을 때는 아프고 무섭기만 했다. 시위가 벌어지는 시내를 관통하여 우체국에 근무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가져다 드려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째서 항상 매달 나를 보냈는지를 어린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근현대사에 대한 이러저러한 책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그제서야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의 배경을 알 수 있었고, 최루탄에 눈물이 나고 코가 매워도 싸우고 고함쳤던 대학생 형누나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87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사실 나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사실을 영화로 각색했을 때의 영화적 표현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같이 근무하는 병원 사람들이 보러가자고 해서 나름의 단체관람을 하게 되었다. 영화는 사실을 지루하지 않게 잘 설명하고 있었고, 영화적 각색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했던만큼 감동은 일지 않았다. 뭐랄까, 그 시대에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나 웅장함 같은 것이 현재로 이어보니 서늘하게 식어 담담해진달까.. 그래서, 과거의 나처럼 세상일에 관심없던 김태리가 마지막에 버스 위로 올라 온 힘을 다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영화적 묘사같기도 했고, 이제 막 무언가를 알아버린 사람의 순진하고 치기어린 감정의 폭발같아 보였다.
역사는 생물과도 같아서,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꺾이거나 뒤집힌다.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은 전두환의 부하 노태우였고, 박종철이 숨겨주었던 선배 박종운은 나중에 박종철을 죽인 군부세력을 뿌리로 둔 극우집단의 정치꾼이 되어 세상앞에 나섰다. IMF이후 본격적이었던 신자유주의는 87년의 민주화 세력을 자본세력으로 성장시켰고, 세상은 점점 자신을 몰아붙여 경쟁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골목을 뛰어놀다가 우연히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포스터를 보는 세상을 살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승합차로 학원을 오가다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게임을 보는 세상을 산다. 세상은 변했다는데, 어째 사람들 사는 모습은 다를 것 없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던 때가 2002년 월드컵이 막 지난 참여정부 때였다. 그 때의 의문을 현재로 끌어봐도, 나는 세상이 그다지 변하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1987이라는 영화를 봐도 덤덤하고 서늘한 기분만 남는 이유일 것이다. 오래지 않았는데도, 마치 오랜 조각작품을 꺼내들어 다시 감동받고 뜨거워지기를 강요받는 기분인 것이다.
지난 겨울, 어릴 적 내가 뛰어놀던 동네와 골목을 찾아가 하루 종일 서성였다. 동네는 신작로가 생기며 두동강이 났고, 골목 역시 파편만 남아 나뭇가지가 한 번 쓸고 지나간 거미줄 같았다. 지붕 낮은 집들엔 물론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폐허만 남은 골목의 입구 슈퍼는 사라졌고, 잡지 집하소는 옆의 큰 건물에 포함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동네는 폐허가 되었는데, 갯바위 거북손같이 다닥하게 붙어 살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폐허와 알 수 없는 시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당연한 변화라면, 그것은 그저 우울이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떠올린 87년의 기억, 그리고 이후의 세상의 흐름을 가만히 생각해보자면, 내 살던 동네의 폐허에서 느끼는 우울, 그런 감정의 몇가닥이 섞여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