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행(1) - 이야기의 시작

by 전영웅

너를 기억하는 곳은 기린봉 정상이야. 가을이 무르익어 늦은 오후의 산 정상에는 찬바람이 섞여 있었어. 정상을 뒤덮은 모서리진 바위 틈에 발을 디디고 너는 아래로 너른 시내를 바라보았어. 살짝 붉어진 기울어진 해가 비슷한 색으로 도시를 물들이고 있었고, 낮아진 공기에 도심의 소음이 어렴풋이 배어들고 있었어. 너는 시내를 한참 바라보았지. 네가 가방을 놓고 온 풍남초등학교가 멀리 작은 사각형으로 보였고, 우리집은 어디쯤일까 잘 보이지도 않는 신작로와 전북대병원 모서리를 눈으로 훑어 보았어. 그러다가, 너는 가라앉을 것 같은 깊은 숨을 나직하게 내쉬었어. 벽에 가로막힌 듯한 답답함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잘 모르겠을 불안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거든. 정상까지 올라오느라 거칠게 쉬었던 숨은 이젠 기억조차 나지도 않았어. 바람은 조금 더 서늘해졌고, 전주시내를 물들인 붉은 빛은 더욱 짙어져가던 그 시간..


너는 몸을 뒤로 돌려 시내 반대편을 바라보았어. 그 곳은, 기린봉 산길입구를 지나자마자 시작된 비포장 도로가 길게 나 있었고, 그 끝에 아중저수지가 보였어.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기찻길이 가로로 지나갔고, 그 중간에는 송천역이 작은 오두막처럼 보였어. 그리고, 그 너머는 온통 산과 산들.. 산은, 봉우리와 능선이 적당히 뒤섞이며 완벽에 가까운 초록이었지. 바위 하나, 사람의 흔적 하나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의 초록.. 너는 그 초록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어. 황홀했거든.. 그리고 마음이 푸근해졌거든. 저수지 너머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초록 덤불들을 보는데 어째서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너는 스스로도 신기해 했어. 그러다 문득 너는 이런 생각에 빠져들었지.


‘내가 저 초록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나는 서서히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했던거야. 네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상상. 지금 서 있는 기린봉 정상의 돌부리를 벗어나, 저수지 방향의 능선으로 천천히 걸어가는거야. 편평하던 능선과 산길이 끝나며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너는 소나무와 작은 덤불을 헤치며 바닥의 낙엽들을 밟아가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거야. 길은 없지만,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낙엽을 밟으며 수풀을 헤쳐나가는 일은 어렵지 않아보였거든. 조금은 힘들겠다 싶은 생각도 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방향만 잡고 길 없는 숲을 따라 내려가 한참을 걸으면 아중저수지가 나올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지. 저수지 제방 아래를 따라 걸은 다음 철길이 나오면, 하루에 몇 번 오지도 않는 기차는 무서워할 필요도 없이 가볍게 철길을 건너는 거야. 철길을 건너면 이제는 네가 기린봉 정상에 오를 때마다 가만히 바라보았던 그 초록이 시작되는거지.


시선으로만 닿았던 그 숲에 몸이 직접 닿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너는 기분이 궁금한 것 보다도, 그 때가 되면 해가 저물어 어둡고 추워지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 어쨌든, 네가 바라던 상상은 지금부터야. 너는 여기까지 왔던 것처럼, 길 없는 수풀을 헤치며 능선을 올라가는거야. 길은 없지만, 그저 네가 가고싶은 방향만 잡고 무조건 걷는 거지. 힘이 들고 숨이 찰 거란 생각은 없었던 듯 해. 너는 그렇게 무조건 초록의 수풀 깊은 곳을 향하여 하염없이 걸어들어가는 스스로를 생각했어. 그러면서, 너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를 기대했지. 마치 눈이 녹듯, 또는 바람에 풀씨가 날려 앙상한 꽃대만 남듯,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 불어오는 바람에 녹아 날리듯 사라지는 너의 몸을 상상하기 시작했어. 네가 사라지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네가 완전히 사라질 그 순간까지, 너는 하염없이 그 숲을 걸어 들어가는거야. 몸이 녹아 날리는 일은 아프지 않을 거란 막연한 기대도 있었고, 해가 있는 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외롭지는 않을거란 생각도 하면서 말이지. 그렇게, 너는 네가 걸어들어 온 숲 속 공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리고 말 거야. 늦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너를 수소문해 네가 사라진 그 숲에 가까스로 부모님이 도착했을 때엔, 이미 너는 사라지고 없을 거란 작은 뿌듯함 같은 것도 있었어. 사라지지 못한다면, 한없이 걸어들어 온 그 숲 속에서,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그 숲 속에서, 지쳐 쓰러져 있다가 두려움이 생겨 목놓아 울어도, 들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너는 그렇게 죽어갈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도 했었어.


해는 더욱 기울고, 정상의 바람은 좀 더 세지고 서늘해졌지. 너는 너의 시선이 화살꽂히듯 박힌 저 먼 숲 속에서 너만의 상상을 가만히 펼치고 있었어. 상상이든 실천이든 그럴 수 있으면 좋겠건만, 너는 이제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집에 늦어 엄마에게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지. 두려움은 바라던 상상을 순식간에 압도했고, 너는 올라왔던 산길로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어. 경사진 능선을 길게 덮은 돌계단과 잠시 평평한 흙길 능선이 반복되는 산길을 타고 내려가면, 나무들이 듬성한 산길 입구가 나왔지. 너는 입구를 지나 동네길로 들어서 물때가 처녀귀신 머리카락 휘날리듯 흐느적이는 하수도를 왼쪽에 끼고 학교쪽으로 걸었어. 아직 문이 열린 학교 후문으로 들어가 가방을 둔 교실 복도 한 쪽에서 네 가방을 집어들어 어깨에 매고 정문을 통해 나왔어. 학교 운동장에는 늦은 오후 그 시간까지 축구를 하며 노는 친구들이 있었어. 눈길을 주어도, 그 친구들은 자기들이 차고 있는 공에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가방멘 네 모습따위는 시선조차 닿지도 않았지. 너는 그길로 학교를 나와 정문앞 차도를 건너 집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터덜터덜 걸었어.


골목은 시내 어느곳보다 빨리 어두워졌어. 네가 집과 이어지는 마지막 골목길에 들어설 즈음에는 골목 입구의 가로등 불이 이미 켜진 상태였어. 혼나겠구나.. 옷 어디 지저분해진 데는 없나.. 너는 네 옷가지와 가방을 대충 훑어보았어. 걸음이 집과 가까워질수록 너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어. 좁은 골목으로 난 대문들을 지나면 그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는데, 그 소리나는 대문들을 하나하나 지날수록 너의 마음에는 무거운 납추가 하나씩 얹히는 기분이었지. 네가 사는 집은 골목의 맨 끝에 있어서, 골목안 모든 집들의 소리를 듣고 그 수만큼의 납추를 마음에 얹어야만 집에 들어설 수 있었어. 그것은 네가 쉽게 설명할 수 없이 본능처럼 마음에 담았던 두려움과 불안의 다른 형태였지. 결국 너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집 앞에 다다라서는 대문 앞에 주저앉고 말았어. 대문 앞이자 골목 끝 가로등의 불빛은 쪼그려 앉은 네 머리 위를 붉게 비추고 있었어. 대문 안에서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날카로운 손짓과 말소리가 간간히 들렸어. 들어설 자신없어, 다시 골목 밖으로 나가버릴까? 우유부단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런 생각일 뿐, 너의 다리는 움직여지지가 않았지. 결국 저녁 일을 나가시는 세들어 사는 옆방 아저씨에게 발견되어 너는 억지로 끌려 집으로 들어갔었다. 아저씨의 손에 끌려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는 너를 옆눈으로 보는 엄마의 눈빛은 지치고 날이 서 있었어. 너에게 건네는 말소리 역시 화를 누르는 억지와 예민이 섞여 있었지.


‘어디서 뭐하고 이제야 들어와? 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해!’


너에 대한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야. 별 일이 없었다면, 너는 그날 대충 씻고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은 다음, 숙제를 하던가 티비를 보던가 했을 거야.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착한 어린이는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짤막한 안내방송을 듣고, 9시 뉴스데스크의 오프닝송이 시작되면, 한 가족이 모두 모인 방 윗목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잠오기를 기다렸을 거야.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런데, 그보다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너는 그날 이전에나 그날 이후에나 언제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갔다는 사실이지. 사라지고 말겠다는 상상을 실천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겁먹은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떨어지지 않는 혹덩어리처럼 끈질기게 마음에 매달린 불안과 두려움을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야 하는 일이었지. 네가 이룬 실천은 오로지 그거였어. 미련하게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