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입구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입구 한쪽은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고, 한 쪽은 마른 덤불 가득한 작은 공터였다. 골목 안으로는, 어릴 적 기억의 그 집들이 그대로 나란히 서 있었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작게 갈라지는 모서리집은 기억에 부동산 집이었다. 그리고, 슬레이트 낮은 지붕의 집들이 세멘트를 거칠게 뿌린 담벼락을 맞대고 나란히 있었다. 공터가 되어버린 한쪽 골목 입구는, 그 모습을 도로에서도 훤하게 볼 수 있게 했다. 골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낮은 담을 따라 2월의 싸늘한 냉기가 얼굴로 흘러왔다. 오래된 담벼락과 블럭 바닥은 새카맣게 때를 탔다. 그리고, 골목으로 난 작은 창문들은 죄다 유리가 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발로 살짝 대기만 해도 떨어질 것 같은 녹슨 철제 대문에는 ‘출입금지’라고 나무팻말이 걸려 있었다. 모두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골목은 좁았다. 어깨가 넓지도 않은데, 내가 골목에 들어서니 양쪽으로 어깨가 닿을락 했다. 그리고, 골목은 서너 집을 지나자마자 다른 신작로로 끝이 났다.
거미줄 같던 골목은 파편처럼 잘려있었다. 골목을 중심으로 한 동네 정중앙을 2차선 신작로가 훤하게 뚫어놓고 있었다. 신작로는 동네 끝까지 달려, 반대편의 이전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도로 하나가 지나갔지만, 도로로 잘려진 골목은 네다섯 개의 파편으로 부서져 있었다. 나는 신작로로 나와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얀 2층 건물이 아무도 살지 않는 모습으로 모서리에 있었다. 한 면은 온전히 개방된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섀시로 개방된 난간을 가리고 있었다. 그 집은 딸 여섯에 아들 둘이었던 어느 가족의 집이었다. 그 많던 식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양쪽의 2층 짜리 붉은 벽돌집이 허공에서 맞닿을 것 같이 기운채, 기억 속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은 더욱 좁아져서 정말 내 어깨가 닿을 것 같았지만, 기억속 이 골목은 내 어릴적 자유롭게 뛰어놀던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집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한쪽 벽돌집에는 나무에 물감으로 네 글자의 예쁜 집 이름을 적어 걸어두었지만, 오래된 것으로 보아 의미를 잃어버린채 겨울볕을 받고 있었다. 그 집..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고, 우리보다 나이가 좀 많은 아이의 오빠는 일찍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아이를 안은 여자를 데리고 와서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골목 안으로는 다시 작은 골목이 있었고, 골목의 옆면들과 골목 안쪽으로는 기억 속의 흔적이 그대로 있는 대문들이 부서지거나 출입금지 팻말을 매단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팻말조차도 없는 부서진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마루에 플라스틱 섀시를 대어 방한을 했지만, 그 집 역시 내 기억 속 형태 그대로였다. 내부 집기들은 모두 부셔져서 방바닥에는 나무와 유리조각들이 발걸음마다 퍼석 소리를 냈다. 저 모퉁이.. 숨바꼭질을 하면 아이들 중 꼭 하나가 숨던 자리였다. 기억은 폐허가 만드는 스산함과 한겨울 싸늘한 냉기만큼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다시 대문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 우측으로 돌았다. 그리고, 골목은 끝나고, 붉은벽돌의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신작로가 보였다. 사람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골목 끝.. 우리집은 골목 끝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까지 뻗어있던 골목은 사라졌다. 내가 대문앞 가로등 불빛 아래 주저앉아 집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그 자리는 새로 지은 건물이 들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신작로는 골목 가장 깊은 우리 집까지 침범을 한 뒤, 집 공간의 정확히 반을 밀어버리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남은 땅에 2층 건물을 지었고, 1층은 상업공간으로 2층은 두 분이 거주하는 집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위치상 상업공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고, 주거용 건물이 아니라서 집은 추웠다. 결국 건물을 팔고 작은 아파트를 구해 이사하셨다. 그러니까, 골목 끝을 자리하고 앉은 건물은 과거의 내가 살던 공간이고, 지금은 남의 건물이자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애매한 위치로 건물은 상업적 활용도가 매우 낮아보였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나는 단지, 내 기억의 반을 밀고 지나간 신작로과, 기억의 반을 깔고 자리잡은 건물에의 아쉬움을 음미할 뿐이다.
신작로를 건넜다. 그 곳엔 다른 파편으로 남은 골목이 있었다. 도로 위에는 먼 친척뻘인 고모할머님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완벽하게 사라져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나 시작되는 골목의 파편이었다. 그 골목이 가톨릭회관 앞으로 나가면서 두 세 개의 작은 가지처럼 안쪽으로 골목을 뻗었다. 작은 골목의 집들도 전부 또는 일부가 도로에 밀려서 작은 창고처럼 금속 판때기로 덕지덕지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들이었다. 그 골목을 걸어 어느 온전한 대문집을 들여다 보았다. 한겨울 햇볕을 담벼락 위에서 쬐고 있던 고양이가 나를 보고 놀라 달아났다. 대문을 밀어보니 안으로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당은 세멘트로 덮여 수돗가와 장독대가 놓였던 자리가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슬레이트 처마와 나무로 만든 작은 마루가 있었다. 기억이 났다. 이 집은 한 동네 또래 친구의 집이었다. 할머니가 친구와 살고 있었고, 우리는 한여름 처마 아래 나무마루에 엎드려 누워, 최무선이 화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마루밑 묵은 먼지에서 찾았다는 위인전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집이었다. 누군가 집을 단정히 치워놓았지만, 고양이가 아무런 경계없이 드나들고, 집은 한쪽 모서리부터 부서지고 있었다. 내 기억의 쓸쓸함을 달래는 것은 마당으로 쏟아지는 한겨울 쨍한 햇볕의 아름다움이었다. 마당 구석은 오래도록 거두지 않아 무성해진 채로 메말라버린 덤불로 수북했다.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부서지고 먼지만 쌓인 지붕낮은 공간들만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작로가 뚫렸지만, 사람이 다니라고 만든 그 길에 사람은 없었다. 내 기억과 추억도 한 가운데를 직선으로 밀어 두동강을 낸 채 공허해졌다. 신작로변은 작은 유료주차장이나,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작은 식당과 자동차 공업사가 문을 연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고요했다. 그 뒤로 한옥마을 구역의 구석진 자리인 한국전통문화 전당이 거대한 건물 끄트머리로 해를 가리고 있었다. 추억은, 그리고 기억은 이렇게 항상 아쉽고 허전한 것일까. 어릴적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골목골목을, 이제는 몇 걸음 안 가 끝나는 작은 골목으로 여러번 걸으며 서성였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은 마음인데, 무엇을 바라는지 대략으로도 구체적으로도 잘 모른 채 그저 서성이기만 했다. 2월의 어느날 오전 내내 그렇게 작은 골목과 주변 길가를 천천히 걸었다.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기억을 존중해주는 그 무엇은 거의 없었다. 단 하나, 오거리 한 켠에 서 있던 버드나무가 앙상한 줄기들을 늘어뜨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반가웠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그 나무 옆에 잠시 있어주지도, 손 한번 대 주지도 않은 채 지나쳐왔다. 두터운 점퍼 주머니에 손을 꼭 끼어넣은 채로.. 왜 그랬을까.. 나는 어째서 어릴적 살던 동네에 반가움도 애틋함도 느끼지 못한 채 서성이기만 했을까? 내 어린시절을 오롯이 보아왔던 그 버드나무에 반가운 시선 하나 주지 않고 돌아왔을까? 내 마음은 대체 거기서 무얼 바라고, 무얼 느끼고자 했던 것일까? 바랬던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까? 세멘트를 뿌려 굳힌 골목 담벼락에 손을 스치니 차가운 공기에 튼 손에 하얗게 생채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