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행(6)-기억 (2)

by 전영웅

경원동, 네 기억의 시작은 고모할머니 댁이었어. 아직 해가 남은 저녁,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방구석에 모아둔 이불더미에 몸을 기댄채로 잠이 들었지. 눈을 떠보니 방은 완벽하게 어두워져 있었고, 배 위에는 이불이 덮여 있었어. 아빠가 너를 깨우고 있었어. 너는 그대로 아빠에게 안긴 채로 고모할머니댁을 나와 남노송동의 달동네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갔었지. 경원동 골목 안의 중심격이나 다름없던 골목 삼거리 한 가운데에 대문을 둔 고모할머님댁은 이후로도 네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처마가 나직했지만 나름 고풍스러웠던 기와집에, 남쪽 담벼락으로 붙은 작은 화단을 기억해. 그 화단에는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무성했는데, 무화과는 열리지 않았어.


그렇게 정신없는 잠을 자고 얼마 뒤, 부모님은 경원동 골목 가장 안쪽의 그 집, 그러니까 할머니가 사시던 집으로 이사했어. 너는 아직 어려서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은 몰랐을거야. 집은 나름 새로 짓다시피 고쳐서 페인트 냄새가 진동했고, 쓰다 남은 철근이 이사해 들어가던 집 담벼락 구석으로 세워져 있었지. 너는 이사해 들어간 집에 대해 별 감흥은 없었어. 하기사, 아직 국민학교 들어가려면 두세살은 더 먹어야 할 어린 녀석이, 이사라는 고난이나 기쁨 같은 걸 알리는 없었을 거야. 달라짐을 느낀 것은 단칸방이 좁은 곳에서 좀 더 넓어졌다는 것이고, 이제부터는 할머니가 같이 사신다는 것 정도였을 거야.


‘햇볕을 쪼이면 바이러스균이 금방 죽는대요!’


몸통과 얼굴에 발진 같은 것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수두 진단을 받았었지. 열에 몸이 살짝 들뜨고 발진부위가 살짝 가려운데 너는 그것을 참고, 한낮의 햇볕이 그대로 들어오던 마루에 앉아 볕을 쬐면서 똘망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연탄보일러가 있는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지만, 마루는 단칸방에 버금갈 만큼 넓었고, 나무틀의 유리 미닫이문과 현관이 따로 달려 있었어. 현관 앞으로는 푸세식 화장실과 연탄창고가 있었고, 바로 옆으로 수돗가가 있었지. 수돗가 위로는 경사지게 세멘트 계단을 만들어서, 화장실과 창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어. 그 곳은 장독대가 놓이는 자리였고, 다시 옆으로 작은 계단을 오르면, 마루 천장 위 옥상이었지. 몇 개의 장독대가 놓이고, 그 뒤로는 안방과 딸린 방들의 지붕을 덮는 슬레이트가 시선과 나란했었어. 한여름이면 엄마는 너와 동생들을 데리고 올라가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곤 했어. 모기를 쫓으려 모기향도 피웠고, 작은 전등을 가지고 올라가서 우리 머리에 이 쫓는 약을 바른 뒤에 두피 밖으로 도망나오는 이를 잡아 손톱으로 눌러 죽였었지.


옥상은 남쪽 담벼락과 바로 붙어 있었는데, 담을 넘으면 당시 전북대학교 부속병원이었어. 집에서는 병원 테니스장과 모서리 오동나무 은행나무길이 바로 붙어 있었어.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키가 어느 정도 자랐을 적의 너는 담을 넘어 오동나무길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었어.


너는 기억한다. 한 번 잠이 들면 세상모르고 잠을 잤고, 그렇게 아침에 깨우기 전 까지 깊은 잠을 자던 너였지.. 그런 너도 잠을 설친 적이 몇 번은 있었어. 너의 깊고 깊은 잠을 훼방놓을 정도의 야심한 밤 가끔씩의 소동을 너는 기억한다. 너의 집은 할머니의 집이었지만, 집을 가졌다는 것이 유복하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동네가 아니었거든. 그래서, 골목 끝집으로 세를 드는 사람들은 경제적 수준을 알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단층 한 건물 다섯 개의 방 중, 세 개의 방에 스며들어 살았어. 또래 친구의 아빠였던 이는 종종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와서는 잠겨있는 대문을 발로 차며 문 열라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주변 집에 사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잠을 깨곤 했었어. 전주대에 입학해서 시골에서 올라 온 누나는 과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엄마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가서 주의를 주곤 했었지. 한 번은 구두를 만드는 아저씨가 세를 들어 온 적이 있었어. 그 아저씨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반대편,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자리에 조그맣게 자기의 작업실을 만들어서 밤 늦게까지 구두를 만들곤 하셨어. 라디오를 틀어두고 거기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얼거리며 작업을 하셨지. 가죽과 밑창을 붙이는 아교인지 본드인지 모를 화학물질 냄새에 너는 늦은 작업시간 아저씨의 옆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곤 했었지. 아저씨는 담배를 하나 물고는 더운 여름날 말잠자리를 잡는 방법 그리고 잡은 말잠자리를 구워먹는 방법을 너에게 설명해주었었어. 잠자리의 모습을 보고 종류를 가늠하던 네게, 말잠자리라는 커다란 잠자리의 존재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었을 거야. 그런 순박하고 친절한 아저씨가 가끔 술을 많이 드시고 집에 오는 날에는 우리 집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 단칸방에는 너보다 어린 남매 둘까지 네 가족이 살았었지.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는 온 가족을 앉혀놓고는 호통을 치곤 했었어. 너도 기억할 거야. 너보다 몇 살 어린 여자아이가 아빠가 취한 날에는 잠도 못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던 소리를.. 참다못한 엄마가 여전히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을 나가 현관문을 열고 돌아 들어가서는 창문을 두드리며 ‘이제 좀 그만하시라’고 다그치던 모습을..


새로 고친 건물 맞은편으로 손 대지 않은 그대로 둔 지붕낮은 기와집이 있었어. 그 집에는 비뇨기과 전공의로 수련 중인 의사 부부가 잠시 살다가, 그 뒤로 장성한 아들 둘을 데리고 머리 하얀 할머니가 세들어 살았지. 젊은 의사 아저씨가, 네가 기린봉에서 내려와 늦어서 혼날까봐 대문 앞 가로등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을때, 그 때 네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집으로 들여보냈던 그 아저씨였어. 그 집 앞으로 작은 화단이 있었고, 화단과 기와집 사이로 몇 보 걸으면 검게 칠한 철제 대문이 있었지. 엄마는 대문 위로 빨간 장미덩굴이 덮이기를 바라며 장미 묘목 두 그루를 심었었어. 화단에는 몸에 좋다는 케일과 몇몇 녹즙용 채소가 심겨졌고, 몇몇 꽃이 예쁜 나무들이 심겨졌었어. 하지만 화단의 주 용도는 버리기 귀찮아진 연탄재나, 아궁이 안에서 깨진채 쌓여서 홈통을 막아버린 연탄재 가루를 걷어다 버리는 자리로서의 용도가 주였지. 너도 여러 번 아궁이 속의 쌓인 연탄재를 국자같이 생긴 기다란 도구로 퍼서 화단에 버리곤 했었어.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인 여름날엔 엄마의 부스스한 머리칼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리는 날들이었어. 너는 네 종아리 높이까지 하수도 물이 마당을 채우던 비오는 여름날을 기억할 거야. 그런 날이면, 외부에 따로 자리한 푸세식 화장실의 오줌통이 불어난 하수에 쏟아지지 않을지, 변이 쌓이 푸세식 화장실에 물이 차서 역류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곤 했지. 골목 가장 안쪽 집은 다른 집들보다 지대가 낮은 탓에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엄마와 아빠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셨지. 너와 동생은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며 신경을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어. 산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임은 너의 때나 지금의 나 때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하지만,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넘치는 오물과 악취를 참아가며 조용히 말없이 있어야 하던 너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우리는 마음에 여유가 많이 생긴 시대를 사는 것 같아. 너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네 또래의 골목 친구들과 노는 모습일 때가 거의 전부인 것 같아. 집 안에서 머물던 시간,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어른들과 마주하던 시간 안에서 즐거움은 거의 느껴지지가 않거든. 그러니, 지금은 없어진, 네가 살던 집을 기억해 내는 작업은, 마음에 드리운 짙은 구름을 깨닫는 일인 것 같아. 없어진 자리의 반을 밀어버린 도로가, 그리고 나머지 반을 차지한 2층 건물이, 그 건물마저 팔아버리고 다른 동네로 이사하신 부모님이 그래서 고맙고 감사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흔적들이 남아있다면 마음은 더욱 어두웠을 것 같은데, 지금은 형체도 없고 소유권도 사라졌으니 말이지. 그 사라진 터에서 너의 모습만은 너무도 선명한데, 아마도 화해하지 못한 너와 나의 감정의 시간차 때문일거야. 화해하지 못한 오롯한 너의 모습 때문에, 나는 2월의 차가운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라진 터 주변에서 그렇게 서성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