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엄마 왔어.”
너의 기억이 맞다면, 엄마는 너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을 거야. 대문 앞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약간은 살이 붙은 예쁘장한 여자가 다가왔었지. 동네에서 처음보는 사람이라 ‘누구지?’ 하는 의문이 들 때, 그 여자의 눈은 너를 깊게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렇게 말을 건넸어. 너의 표정을 기억해.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린 듯 멍해졌고, 마음이 혼란스러운 듯 몸은 똑바로 선 채로 굳어버렸지. 그리고 그 다음.. 그래.. 너는 잘 몰랐던 무언가가 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던 것 같아. 엄마는 지금 대문 안 처마 밑 마루에 옆집 할머니랑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생판 모르는 여자가 와서 ‘엄마 왔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멍했던 표정은 그 다음 수순으로 넘어갔지. 너는 표정이 일그러졌어. 그것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재난이나 참사를 맞닥뜨린 인간의 구겨진 얼굴같다고나 할까? 너는 한순간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었어. 불안과 두려움도 공포의 감정 옆에 묵직하게 자리했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몸도 떨고 있었고. 너는 곧장 몸을 돌려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갔어. 그러고는 네 키만한 녹슨 철근 하나를 들고 나와 엄마라고 한 여자에게 들이댔지.
“가! 어서 가버리라고!”
공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집 구석에 쓰다 남은 철근이 몇 개 세워져 있었는데, 너는 그걸 기억해내고 바로 집어든 것이었어. 마루에서 옆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는 울면서 뛰어들어오는 너를 의아하게 바라보더니, 대문 밖을 흘깃 보고는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지.
철근을 든 너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어. 너는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었을 거야. 앞의 엄마는 공포스러웠고, 뒤의 엄마는 두렵고 불안했거든. 물리적 위치로도 둘 사이에 끼인 그 상황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지. 골목의 엄마는 철근을 들이댄 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어. 하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이러지 말아라.’ 나직하게 너에게 이야기했어. 무서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철근을 휘두르는 대여섯살 남짓의 꼬마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땠을지,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엄마라는 사람 앞에서 철근을 휘두르며 어서 가 버리길 종용하는 꼬마의 시선은, 공포였을거야. 너의 심장은 머리 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고 빠르게 뛰고 있었거든.
기이한 일이야. 엄마라는 단어에 공포를 느껴야 하고 두려움과 불안을 느껴야 하는 일은.. 대개는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반갑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그게 본능일 거야. 그런데, 너는 엄마라는 단어에 잠시도 그런 본능없이, 순식간에 부정적인 감정들로 휩싸였어. 생모라지만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너의 앞에 나타나 엄마라고 했을 때의 공포, 너를 기르고 있는 엄마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싶은 불안,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 오늘 저녁에는 또 엄마의 화가 집안을 가득 채우겠구나 하는 두려움.. 그 때의 너어게는 혈육이나 양육이 너에게 선사하는 포근한 긍정의 감정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 기대고 싶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사람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어. 단지, 너는 경원동 그 집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어떤 생존본능 같은것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인지 몰라. 철근의 녹이 꽉 쥐고 있는 너의 손바닥에 붉게 물들어가고, 가느다란 팔이 덜덜 떨어서 철근도 같이 떨렸어. 떨림은, 아마도 너의 생존본능,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대치 상태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어. 당황했지만 침착함만은 잃지 않은 골목의 엄마는 조금은 슬프고 깊은 눈빛으로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어.
“엄마 또 올거야. 잘 지내고 있어. 다음에는 이러지 말고.”
그러고는 등을 돌려 좁은 골목을 또각또각 걸어나갔지. 너는 엄마를 겨누던 철근을 그제서야 세우고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리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시 서서 울었어. 손등으로 눈물을 슥슥 닦았어. 뭔가 혼란스러운데, 두렵고 불안한 상황은 이제 지나갔다는 안도의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 하지만 불안은 도마뱀 꼬리처럼 뚝 하고 잘리는 것이 아니었어. 눈물을 닦으며 대문으로 들어가 원래 있던 자리에 철근을 두려 마당을 지나는데, 대문 안의 엄마는 태연하게 옆집 할머니와 나란이 앉아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너의 모습과 행동들을 흘끗하고 바라보았지. 너도, 마루에 앉은 엄마의 앞을 지나는데, 잠시 안정되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지. 너에게 한마디 건네지 않고 바라만 보던 엄마는, 철근을 자리에 두고 다시 나가려는 너에게 명령하듯 말을 건넸어.
“씻고 방에 들어가 있어!”
너는 엄마가 시킨대로 했어. 그리고, 낮이지만 어두웠던 단칸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세운 무릎 위에 턱을 괸 채로 가만히 있었어. 불안은 여전했고, 아까의 감정들이 채 가시지 않아 가끔 훌쩍이면서 말이지. 그렇게, 어둡고 고요한 방 한쪽에서 여전히 잘 모르겠는 혼란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던 거야. 안도했던 것은, 네가 다시 방 안에 들어와 앉아있다는 사실이었어. 별 일 없이 말이지, 아직까지는..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이 안도는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간직한 채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