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었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늦잠을 자도 되는 한 주의 유일한 날. 그리고, 교회에 가기 전, 우리가 텔레비전을 마음껏 볼 수 있었던 날. 너의 시절에는 일요일 아침에 재밌는 만화영화들을 많이 했었어.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아. 아마 톰과 제리였을 수도 있고, 캔디였던 것 같기도 한데,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 다만, 그 시간에 너와 동생은 단칸방 윗목 아직 이불을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에 집중했어. 국민학교 저학년 또래의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이라고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잘 리도 없었지. 아랫목 따뜻한 자리에는 아버지가 한 쪽으로 등을 돌리고 주무시고 계셨고, 어머니는 눈을 뜬 채로 옆에서 자고 있는 막내동생을 끼고 누워계셨어.
만화영화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옆에서 전화벨이 울렸어. 일요일 아침에는 보통 전화벨이 울리는 일이 드문데, 그날은 울리는 시간도 참 묘했지. 너는 보던 만화에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몸을 움직여 무심결에 수화기를 들었어.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나야, 엄마야..”
순간 몸이 굳어버렸어. 텔레비전 화면 들러붙어 있던 시선이 갑자기 뚝 끊어지면서 무심결에 아랫목의 엄마를 바라보았지.
“전화 받기 어렵니? 아니면 목소리 좀 들려줘.”
“..네..”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가 궁금해하던 아랫목의 엄마는 너의 굳은 시선과 마지못해 대답하는 목소리에 이내 눈치를 채셨지. 그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했어.
“끊어!”
순간 너는 겁에 질린 채 수화기를 얼른 내려놓았어. 텔레비전에서는 만화영화가 계속해서 방영되고 있었고, 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동생도 순간 몸이 굳어 움츠러들고 있었지. 시선은 더 이상 텔레비전에도, 몸이 굳어있는 동생에게도 닿지 못했어. 쿵광대기 시작하는 가슴을 느끼며 너는 몸이 굳은 채로 반쯤 무릎을 꿇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지. 방 안은 서늘하게 긴장이 흐르는데, 텔레비전은 눈치없이 계속 시끄러웠지. 엄마는 예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시 명령했어.
“ 텔레비전 어서 꺼!”
너는 팔을 뻗어 얼른 텔레비전을 껐어. 그리고 너는 다시 굳어버린 몸이 되었지. 시선은 굳게 고정되었고 턱은 달라붙은 입술을 따라 붙어버린듯 움직이지 못했어. 아랫목 구석에서 모로 누워 주무시던 아버지는 고개와 어깨가 더 구석으로 움츠린 듯 보였어.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랬던 것 같아. 너는 쿵쾅거리는 가슴과 어정쩡한 자세로 바짝 굳어버린 몸으로 한 시간을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아. 턱 역시 위아래가 붙어버린 것 같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 옆의 동생은 움츠린 몸을 살짝 떨면서 훌쩍였던 것 같아. 그 자세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엄마의 잔소리를 온 몸으로 듣고 있었어. 화난 엄마의 목소리에 잠을 깬 막내는 엄마의 품에 안겼고, 엄마는 막내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감정을 너와 동생에게 쏟아내셨지. 오랜 시간을 굳어있던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부들거리기 시작했어. 빨리 이 방을 벗어나고 싶었지. 쿵쾅거리는 가슴, 부들거리는 몸, 뻣뻣해진 목 주변으로 느껴지는 서늘함이 점점 감정으로 튀어오를 즈음에, 너는 교회에 갈 시간이 되었지. 그 시간을 엄마도 알고 있었기에, 너는 순순히 그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 예배시간이 다른 동생은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둔 채 말이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문을 나와 교회로 향했어. 초등부 예배를 마치고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지. 너의 가슴은 다시 쿵쾅거렸어. 대문에 들어서고 부엌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서는데 다리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어. 부엌에 들어서니 엄마의 화가 섞인 잔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어. 조용히 그리고 힘없는 팔로 미닫이문을 살살 열고 들어섰어. 아랫목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동생은 여전히 훌쩍이면서 엄마의 그 잔소리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어. 순간 너는 쿵쾅거리는 가슴 사이로 튀어오르는 화를 느꼈지. 그 말은 너도 모르게 순식간에 터져나왔을 거야.
“내 동생 그만 좀 혼내요!”
순간 엄마는 입을 닫은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았어. 그 때의 너의 감정은 후회같은 게 아니었지. 쏟아내버린 말에 아차 싶은 것도 아니었어. 가까이 다가가서 동생의 손을 잡고 집을 뛰쳐나갈 수 없었던 용기없음의 아쉬움, 좀 더 말을 이어 반박하지 못했던 머리속 먹먹함에의 답답함, 그리고 네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의 분노 같은 것이었지. 어이없던 표정의 엄마가 다시 너에게 어떤 말들을 쏟아내었는지는 역시 분명한 기억이 없어. 흐릿하게 남은 것은, ‘내 동생’이라는 말에 ‘피는 어쩌고..’ 하던 어떤 구분의 단어들이 이어졌고, 기가 차 했던 모습들이야. 그 말들 앞에서 넌 역시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없이 다시 몸과 턱이 굳어버렸지.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 조금만 더 크면 되도록 빨리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쏟아지는 말들 아래에서 우산같이 펼쳐졌어.
그날은 지금 생각해도 내 어릴적, 그러니까 너의 몇 안되는 최악의 날들 중 하루였지.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온데간데 없고, 어머니의 분노와 기가 찬 목소리만 가득해. 경원동의 그 집은, 대문안과 단칸방의 공간은 너에겐 불안하고 무거운 곳이었어. 마치 그 안에서는 대문 밖보다 중력이 2.5배 쯤은 더 작용하는 것 같은, 힘든 공간이었지. 어쩌면 너를 기억하는 내가 너를 우울하고 불안하게만 보아서 생긴 편견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경원동을 우연히 탈출하듯 떠난 이후의 다소 편안해졌던 마음을 기억해. 너는 그 이전의 존재이니, 깊은 그림자같은 우울함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어. 너의 모습은 나의 정체성이고, 감정선의 바닥을 규정하는 실체이지. 내가 그 우울을 애써 끄집어내어 너를 만들어 버린건, 나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서야. 그 중심에는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