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행(15) - 교회(3)

by 전영웅

길가에 차를 세운 다음 오르막을 걸어 올랐다. 선미마을이라고 했다. 2차선 좁은 도로 옆으로 값싼 섀시에 유리가 넓었다. 그 안으로, 하늘하늘한 천조각이 반쯤 뜯어진 채로 매달려 있었고, 자잘한 살림집기들이 뒹굴고 있었다. 사람은, 유리섀시 안에서 오가지 않고 바깥 보도블럭 위로 몸을 움츠린채 간간히 지나갔다.


진북동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동부교회야 두말할 것 있을까.. 내가 기억하던 모습에서 더욱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고, 주변의 집들이 사라지고 너른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너무 차가워서 더욱 청명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교회는 도드라지게 웅장했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내 가슴은 같이 서늘해졌다. 몸을 돌려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갔다. 교회에 가기 싫어 들어갔다가 예배시간을 온전하게 때운, 그러다 걸려서 어머니한테 두 시간 내내 혼이 났던 오락실은 더 이상 없었다. 좀 더 내려가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질렀고, 바로 보이는 골목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선미마을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였을까? 성경책을 든 내가 호기심에 지나던 골목동네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내가 몰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뛰놀던 우리집 골목이 이제는 양 어깨가 닿을 만큼 좁아졌듯, 이 골목도 내 어깨가 맞닿을 만큼 좁아져 있었다. 그리고, 무너져가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사람은 살지 않았다는 듯, 기울어지고 땟자국 가득한 담벼락 주변으로 겨울바람에 말라버린 잡초덤불들이 가득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린 바닥은 살얼음낀 웅덩이로 변해 있었다. 어떤 구간에는 무성하게 말라버린 덤불을 발로 잘 밟아내지 않으면 지나가기도 어려웠다. 여기가 내가 호기심에 지나던 그 골목이 맞나 싶었다. 인간의 흔적은 곳곳에 보이는 낙서와 깨진 작은 유리창들 뿐이었다. 이름을 모르겠을 무성한 덤불들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다 겨울바람을 만나 별 수 없이 사그러든 것 같은 풍경이었다.


좁은 골목을 그렇게 탐험하듯 통과했다. 저렴하고 너저분한 욕망과 그 맞은편의 절망이 뒤섞여 진창을 만들었을까? 인간이 아닌 것들은 그것을 양분삼아 공간을 잠식했고, 그 안에 그나마의 희망을 심어보겠다고 모퉁이 벽에는 가슴에 와 닿을 것 같지 않은 희망담은 낙서가 휘갈겨 있었다. 처마를 흐르다 길게 얼어버린 고드름 하나를 조심해서 돌아나오니 넓은 골목공간으로 이어졌다.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새건물이 보였고 그 앞으로 물결서사라는 책방이 나타났다. 다른 차원의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정은 시 청사 바로 뒤에 이런 사창가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홍등가를 애써 지우고, 이런 문화시설을 유치하고 유도했을 것이다. 노력은 좋다. 그러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물결서사 책방을 구경하고 책을 사들고 나와 차에 두고 다시 걸었다. 어릴적 모습과는 다르게 이제는 무수한 차들이 오가는 기린로를 조심스레 건넌 뒤, 시청 건물 옆 민원실 앞을 거쳐 작은 오거리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중학생 때 주말이면 다니던 수학학원이 있던 건물을 지나, 반가운 오거리 버드나무 둥치에 손을 한 번 스치고, 내가 살던 동네를 두동강 낸 신작로를 건넜다. 이제는 전통문화전당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이 된 건물의 담벼락을 지나, 어릴적 이사하기 전의 동부교회 자리를 향해 걸었다.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전일갑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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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가 끝나면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주던 슈퍼.. 대각선으로 마주보던 두 슈퍼가 아이들이 어디로 몰려가는가에 따라 웃거나 인상을 구겼었다. 그 중 하나는 사라졌고, 남은 하나가 전일슈퍼, 그러니까 가맥집으로 유명한 전일갑오였다.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내 어릴적 가끔 드나들던 슈퍼가 어떻게 변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낙서가득한 너른 공간에 테이블이 가득했고, 이전 슈퍼로 활용되던 공간은 물품과 주방시설로 비좁았다. 그 앞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가스불에 먹태를 계속 굽고 있었다. 내가 테이블에 앉자, 뭘 먹을지 물어보러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병맥을 꺼내고 안주를 주문하고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이 슈퍼 옛날부터 운영하셨나요? 여기 앞 건물이 이전에 동부교회였쟎아요?”


“맞아, 그 당시부터 있었지.”


“대각선 맞은편으로도 작은 슈퍼 하나 있지 않았나요? 그 집은 없어졌네요. 저 어릴적 이 동네 살았거든요.”


“그 집이 원래 우리가 하던 슈퍼였는데, 전일슈퍼를 우리가 인수했지.”


“아, 그러시구나.. 반갑네요. 저 동부교회 다닐때 그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자주 사 먹었는데요.”


주인 할머니는 더 이상 말없이 귀찮다는 듯 뒷목을 문지르더니 먹태 굽던 가스불 앞으로 가버리셨다. 손님에 하도 많이 치여 이제는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 더 말을 걸지 않고, 맥주병을 따서 잔에 따르고는 나온 안주와 과자 하나를 앞에 두고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전일슈퍼는 더 이상 진열된 물건들에 뒤덮일 듯 좁디좁은 슈퍼가 아니었다. 벽을 부수어 공간을 넓히고, 다시 안으로 벽을 부수어 공간을 넓혀 테이블과 의자로 빼곡히 채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뒤섞이며 웅성이는 널직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주인할머니의 귀찮음같이, 나도 더 이상 옛 기억을 음미하기 어려웠다. 크라운 맥주와 오비맥주가 대세이던 시절의 맥주맛을, 지금 마시는 맥스 맥주에서 떠올리기 매우 힘들듯 말이다.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두 병 정도를 마시고, 적당히 채워진 느낌의 배를 느끼며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는 진작에 저물어 길은 어두웠다. 간판 불빛이 길바닥의 빙판에 차갑게 반사되었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하얀 입김의 서늘함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영화의 거리에 있는 숙소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넉넉했다. 어둠이 내린 평생교육원 담벼락을 따라 다시 걸었다. 학원이 있던 자리는 가맥집과 한옥마을에 놀러온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로 변해 있었다. 맞은편으로 파편처럼 남은 내 살던 골목은 더욱 어두웠고, 반토막난 집터에 지은 아버지의 예전 건물에도 불빛이 흘러나오지 않으니 존재감은 더욱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어서일까?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살던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내 살던 골목동네도, 선미마을도..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숨을 쉬어가고 있을까.. 어둔 밤 내 고향동네에서, 막연하게 사람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