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행(18)-전주천(2)

by 전영웅

기억은 신리에서 시작돼. 전주천 상류, 남원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개천이 따라 흘렀지. 너는 그 개천에 몸을 담근 채, 아빠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무릎이 잠기지 않았는데, 너는 두 다리가 거의 잠길만한 깊이였지. 덤불 사이로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며 때로는 물에 빠져가며, 매끄러운 물 속 돌 무더기 위를 열심히 걸어다녔지. 아버지는 둥글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꺼내셨어. 어항이라고 설명해주시면서.. 통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었고, 양쪽으로 가운데 넉넉한 구멍이 나 있었어. 그 안에 떡밥을 뭉쳐 벽에 단단히 붙인뒤 흐르는 물 속에 완전히 잠기게 하고는 떠내려가지 않게 돌로 고정했지. 아버지는 ‘이제 곧 고기가 저 안으로 들어갈거야.’라고 설명해주셨어. 꼬맹이의 작은 몸뚱이에 붙은 팔다리가 휘적거리는 것처럼, 마음 속 조바심도 방향없이 휘적였지. 고기들이 어서 들어갔으면.. 지금쯤 들어가지 않았을까.. 멀찍이 떨어져 기다려야 한다는 아버지의 설명은 조바심에 파묻혀 효력을 잃었지. 나는 자꾸 어항이 있는 자리로 가서 물고기가 들어갔나 확인하려고 했어.


조바심으로 철퍽이는 걸음에 물고기들이 마음놓고 어항으로 들어갈 리 없었지. 그래도 아버지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 생각했을 때 즈음에, 어항을 들어올리셨어. 옆에서 꼬마가 그렇게 철퍽였는데도 떡밥냄새에 정신이 팔린 작은 물고기들 몇 마리가 어항에 갇혀 있었어. 작은 피라미, 납자루들이 바닥에 몰린 채로 어찌할 줄 모르고 퍼덕이고 있었지. 너는 그것들을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아 물을 넣어주고 마치 네 것인 양 소중히 다루었어. 결국 집에 갈 때엔 모두 놓아줘야 했지만 말이지.


경원동 골목 끝에서 10리터짜리 들통을 하나 들고 호기롭게 출발했어. 풍남국민학교로 가는 골목들을 지나 산을 깎고 터를 한창 다지는 중인 기린로 길고 넓은 공터를 따라 한벽루 방향으로 걸었어. 동이 튼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새벽길, 전날 엄마아빠에게 아침일찍 약수를 떠오겠다고 선언을 했었거든. 빈 들통이 무거울 리 없으니 발걸음은 가벼웠어. 동부시장 옆과 영생교회 앞을 지나고, 오목대 아래를 지나 기찻굴 옆 작은 다리를 건너 좁은목 약수터에 도착했어. 작은 들통이나 물병 여러개를 들고 이른 아침부터 약수를 받는 어른들이 많았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그 약수는 인기가 많았지. 너의 호기로움은 아직 여전한 상태였어. 어른들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네가 물을 담을 차례가 된 거야. 일단 들통 입구를 열고 쏟아지는 물줄기에 대고는 물을 받았어. 옆에 있는 바가지로 물줄기에 잠시 물을 담아 한 모금 마시기도 하고 말이야.


물이 다 채워지자 너는 뚜껑을 닫고 통을 들어 옆으로 비켜났지. 그런데, 생각보다 물을 담은 통 무게가 엄청 무거운거야. 그걸 들고 다시 걸어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니 까마득해진 거지. 그래도 어떡해.. 약수를 떠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가져가야지. 두 손으로 통 손잡이를 잡고 낑낑대며 걷기 시작했어. 지금 그 거리를 대략 재 보니 2.5킬로 정도 되는 거리더군. 10리터 들통이면 대략 10킬로 남짓인데 살도 없이 깡마른 꼬마가 그걸 들고 그 거리를 걷는다니,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장담한 대로 어떻게든 물을 가지고 갈 것이냐의 고민이 시작된 거지. 타협은 걸음과 동시에 시작됐어. 어떻게든 걷다가 무거우면 물을 조금씩 버린거지. 한벽루까지는 어찌어찌해서 가져갔는데, 도저히 안될 거 같아서 물을 조금 버렸어. 통은 그래도 무거웠지. 조금 지나 오목교를 못 가서 버리다보니 통 속의 물은 반 정도 남았어. 무리가 되었는지 물을 버린 통을 들어도 팔은 똑같이 아팠어. 오목대를 지나 영생교회 입구 못미쳐서는 물이 4분의 일로 줄었어. 그제서야 좀 걸을만 했나봐. 너는 통을 왼쪽 오른쪽 팔에 번갈아 들어가며 열심히 걸었어. 그래도 좀 힘들어했지. 집에 도착했을 때엔 통 속 바닥에 물이 조금 찰랑거릴 정도만 남았어.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건넸더니, 아침을 준비하시던 어머니는 피식 웃으시며 말없이 통을 받으셨지. 그날 아침 약수는 가족 모두가 목만 조금씩 축이는 걸로 만족해야 했어.


전주천까지 너는 그냥 걸어다녔어. 자전거가 있던 때엔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지만, 자전거도둑이 너무 흔해서 자물쇠를 채워놔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절이었지. 여름방학 이른 아침에, 날이 더워지기 전에 전주천까지 걸어가서, 얼른 다리밑 그늘로 들어갔어. 근처 동네에서 온 사람들로 다리 아래는 이미 사람이 가득한데, 그늘진 자갈밭 틈새로 겨우 자리를 만든 다음에 너는 곧바로 물에 뛰어들었어. 그런데 튜브나 물안경 없이 맨몸으로 놀자니 그것도 좀 아쉬운거야. 튜브에 몸을 올리고 물살을 타는 아이들이나, 물안경으로 자맥질해서 물 속을 구경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어. 물 속에 들어가서 생으로 눈을 뜨는 건 몇몇 친구들이나 할 수 있었던 대단한 능력이었지. 가장 부러운 건, 물안경을 끼고 작살을 들고 들어가 바위 아래 숨은 빠가사리나 메기를 잡아 올리는 친구네 형의 모습이었어. 그걸 집으로 가져가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매운탕을 해 먹는다고 친구는 마치 자기가 잡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지.


너도 마냥 맨 몸은 아니어서 어항과 떡밥뭉치를 조금 챙겨가곤 했어. 물이 도는 조금 얕은 자리에 디귿자로 돌담을 쌓았지. 돌이 물살 위로 충분히 올라올 만큼 높게.. 물살이 내려오는 자리를 터놓고, 물살을 정면으로 받는 아랫면 한 쪽에 어항을 설치한 후에 돌로 잘 고정해 놓는거야. 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가만히 기다려. 그러면 몸집이 좋은 피라미떼들이 돌담 안으로 들어가 물살을 즐기며 놀기 시작해. 피라미들의 긴장이 조금 풀어질 때 쯤이 적기지. 몸을 날리듯 달려들어 입구에서부터 물살을 튀기며 피라미들을 안쪽으로 모는거야. 이미 눈치와 움직임이 재빠른 녀석들은 달려오는 반대쪽으로 도망을 가고, 대열이 끊긴 안쪽 녀석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어항쪽 물이 흐르는 구멍으로 들어가는거야. 녀석들을 몰아넣은 다음 어항을 들면, 몸통에 은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덩치 좋은 피라미 몇마리들이 놀래서 퍼덕이고 있었어. 너는 그렇게 잡는 피라미들이 두세마리 될까 싶고 덩치도 작았지. 하지만, 한벽루 아래서 거의 매일 살다시피하며 피라미를 잡는 동네 형은 실력이 무척 좋았어. 덩치와 비늘색이 좋은 피라미 십 수마리를 그렇게 매번 잡아올렸거든. 그것은 그대로 그 형을 아는 동네 어른들의 낮술안주가 되었어. 민물고기 기생충에 대한 개념이 그리 많지 않던 때라서, 동네 어른들은 그렇게 잡은 피라미 내장을 따고 살을 발라서 초장에 찍어 소주와 함께 먹었어.


하루 종일 놀다가 해가 기울면 다시 집으로 걸었어. 너는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그냥 걸었어. 걷다보면 옷과 몸이 말랐거든. 철로가 아직 남은 기찻길에 들어가 소리지르고 돌을 던지고, 낙서를 하다가 기린로 긴 공터를 따라 걸어 집으로 가면 저녁 어스름이 깔렸어. 여름은 그렇게 집과 전주천을 오가며 보냈었지. 마음의 기울기도 물에 가까울수록 낮아졌던 것 같아. 집에 도착하면 왠지 모를 허전함과 알 수 없는 불안이 마음에 되살아나서, 너는 몸을 대충 씻은 다음에 생각없이 학교 교과서를 꺼내 그냥 읽으면서 가까워지는 저녁식사를 기다렸던 것 같아.


전주천은 그 뒤로 사람이 들어가 놀 수 없는 물이 되어버렸지. 녹조와 유기물들이 끼고, 거품이 떠다니기도 했어. 정비사업을 한다고 보를 만들더니 유속이 느려지고 물이 깊어졌지. 물은 더욱 오염되었고, 이전의 정겨움은 다 사라져버렸어. 하류로 갈 수록 수심은 발목이나 닿을까 싶을 정도로 낮아지고 천변은 주차장으로 변했어. 고등학교시절, 기숙사에서 몰래 나와 맥주 한 두잔 걸치고 돌아가는 취한 친구들의 새벽길, 술을 깨자고 천변으로 잠시 내려온 적이 있었지. 가관이었어. 어떤 녀석은 물을 보자마자 죽어버리겠다고 발목도 안되는 더러운 물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나, 또 어떤 녀석은 속의 분노를 어쩌지 못해서 천변에 주차된 차들의 사이드미러를 발로 부숴뜨리고 다녔어. 물도 변하고 나의 마음도 변해서, 물에서 뛰놀던 즐거움은 어째서 물가에서 발산하는 분노가 되었는지.. 이제는 모든 풍경이 변해버려서, 추억은 오로지 내 머리 속에서만 맴도는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야. 추운 겨울날에 무덥던 여름의 물가를 생각하는 버거움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