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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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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May 12.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0512

  멀칭 작업을 완료했다.  통로구간은 부직포 매트로, 틀 안의 경작 공간은 비닐 잡초매트로 덮었다.  어떻게 얼마나 덮을지 고민이 많았고, 넓은 공간은 혼자서 덮느라 시간과 몸을 쓸 일이 많았던 작업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마음 속에서 뿌듯함이 저절로 솟을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틀 안의 멀칭에 구멍을 냈다.  재배 구상에 따라 간격을 각각 30cm, 50cm으로 정하고 둥근 철 뚜껑을 토치로 달구어 찍는 방식으로 심을 자리에 구멍을 냈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모종을 구입했다.  때마침 토요일과 오일장날이 겹치는 날이어서 퇴근 후 바로 오일장으로 갔다.  차들과 사람들로 복잡한 오일장에서 기대한 건, 다른 모종가게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종들이었다.  예를 들어 세이지나 루꼴라, 이탈리안 파슬리, 아스파라거스 같은 잘 팔지 않는 모종들 말이다.  다른 흔한 모종들은 집 근처 모종가게에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굳이 복잡한 공간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살 것만 골라서 들고 나와 집 근처 모종가게로 갔는데, 그 모종가게에도 내가 원하는 것들이 거의 있는데다 심지어 더 저렴하기까지 했다.  오일장은 역시 비쌈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틀밭을 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당연했다.  이랑과 고랑만으로 운영하던 텃밭을 틀로 간격을 만드는 작업은 재배면적의 감소는 감안해야 하는 일이었다.  멀칭작업 역시 무엇을 어디에 얼마나 심을까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동반되어야 했다.  거기에 과거의 재배경험에서 얻은 것들, 즉 무엇이 잘 자라고 무엇이 안되고 무엇이 아쉬웠나 하는 전반적 사항이 고려되어야 했다.  모종을 구입하는 일은 그래서 수량과 종류면에서 좀 더 구체적이었다.  아삭이 고추와 고급 가지를 주로 심고, 매운 고추는 조금만 심기로 했다.  멀칭 구멍 갯수에 맞추어 모종을 구입했다.  오이는 구석에 틀과 망을 씌우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재배해보기로 했다.  가시오이와 백오이를 반반 구입했다.  늙은 호박은 번거롭고 단호박은 잘 되지 않으니, 애호박을 중점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토마토는 여전히 올해에도 기대하지 않는 작물이다.  그러나, 심지 않는 것도 텃밭에는 좀 어색하다.  귤나무 뒤편 좁은 자리에 지주대를 세우고 대추방울 토마토로 심었다.  애호박 심은 자리에 모종마다의 간격을 두고 중간에 깨를 심었다.  텃밭 마당 경계 가까운 자리에는 쌈채소를 심었다.  아삭이상추, 당귀, 적치마, 루꼴라 2종이 자리했다.  그늘진 자리에 만든 틀 안으로는 허브와 쌈채소를 심었다.  바질과, 이탈리안 파슬리, 샐러리, 고수, 루꼴라 등등을 심었다.  딸기를 적극적으로 심어보고 싶었는데, 올해 딸기모종 가격이 작년의 2배 이상 올랐다.  계획한 모종 갯수를 반으로 줄여 심었다.  남은 자리에는 참외와 피망을 심었다.  틀밭 두 개는 남겨두었다.  한 달 후 고구마를 심을 예정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작은 틀 하나를 따로 구석에 만들어 심었다.  처음 시도하는 작물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녀석들이니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오이를 심고 바로 오이망 설치작업을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해마다 오이망은 내겐 어려운 작업이었다.  바람에 하늘거리지 않고 팽팽하게 망을 고정하는 일은 항상 힘들었다.  이번에는 나무틀이 있으니, 땅에 박은 지주대와 나무틀에 피스를 박고 망을 고정해서 작업이 쉽긴 했지만, 여전히 망은 하늘거렸다.  심은 모종들 중 지주대가 필요한 것들에 하나하나 지주대를 박고 끈으로 묶어주었다.  바람은 언제 터질지 모르고, 바람에 모종이 꺾이는 일은 비일비재한 곳이 제주다. 


  모종을 심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졌지만, 그렇다고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조금씩 텃밭에만 몰두하며 작업을 이어나가는 동안, 마당은 점점 밀림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당 구석의 텃밭 진입로를 정비하고 부직포 매트로 길을 만들었다.  점점 구석을 채워가는 머위의 잎과 레몬밤 줄기들을 쳐냈다.  마당과 집 앞 진입로에서 점점 줄기와 뿌리를 키워가는 잡초들을 손으로 뽑아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예초기를 꺼내 마당과 진입로를 정비했다.  죽은 로즈마리 줄기와 뿌리들을 캐냈고, 수국과 모과나무 사이사이에서 몰래 자라던 망초들을 뽑아냈다.  남쪽 경계의 로즈마리 덤불이 자라 통로를 좁히고 있었다.  전정가위를 들고, 줄기를 잘라 통로를 확보했다.  뒤뜰의 수많은 잡초들과 제멋대로 자라는 라일락과 은목서 줄기들을 쳐냈다.  그 예쁘던 유채꽃들이 지고 씨방을 맺었는데, 검초록의 기름진 모습들이 덤불을 이루니 풍경이 기괴해지고 있었다.  낫을 들고 쳐내었다.  

  라이의 집도 사실 고민이었다.  집 바닥에 대 준 나무 파레트가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틀밭으로 사용한 파레트 중 상태가 좋은 두 개를 미리 빼두었다.  라이의 집을 마당 맞은편으로 옮기고 새 파레트를 바닥에 대 주었다.  옆으로는 다른 파레트를 깔고 낡은 타프를 집부터 감싸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만들고 나니 보기엔 무척 좋았다.  문제는 집을 옮긴 자리가 이전부터 라이가 화장실로 사용하는 자리 바로 옆자리고, 라이 녀석 자체는 좀처럼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민이 좀 있었지만, 그 고민을 해결할 녀석은 라이 자체였다.  알아서 적응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말 이제 한 숨 돌려도 좋을까?  두 달이 조금 넘는 동안 텃밭과 마당에 주말의 시간들을 모두 쏟아넣었다.  그리고 이제 모종을 심고 마당정리가 끝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좀 다른 즐길거리를 만들어야지 싶어, 주말 이틀간의 도일주 라이딩을 다녀왔다.  날씨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더니, 다음날은 비까지 들이치는 날들이었다.  라이딩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생각해보니 올해 봄은 그렇게 바람이 부는 날들이 없었다.  예년과는 매우 다른 얌전한 날씨였다.  심지어 조금 덥기까지 해서 모종도 조금 일찍 심지 않았나..  올해는 텃밭이 좀 수월하려나.. 싶었지만 역시 제주는 알 수없는 섬이다.  이틀간 집을 비운 날의 바람은 태풍급 바람이었다.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제주의 봄바람, 집에 오니 티트리 가지 하나가 부러져 마당에 널부러져 있었고, 의자들이 바람에 날아가 있었다.  고민이 많았던 오이망은 아주 쉽게 무너져 있었고, 수박 모종 두개가 접붙인 자리에서 꺾여 날아가고 없었다.  지주대를 일찍 세우고 묶어주는 일은 이래서 필수다.  작업을 해 준 고추 가지 모종들은 모두 무사했다.  무너진 오이망을 다시 세우고, 추가로 단단하게 고정하는 작업을 했다.     

  어느날 아침 아내가 올해 처음으로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이 상에 올라왔다.  와일드 루꼴라와 아삭이 상추, 적치마였다.  기쁜 마음으로 먹고 입 안이 충만해졌다.  이제 시작이다.  더위에 쌈채소들의 꽃대가 불쑥 오르면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겠지..  기후변화의 걱정은 자그마한 텃밭에도 분명하게 내려앉았지만, 일개 텃밭주인인 미천한 인간 한 둘에게는 미각의 즐거움이 조금 빨라지는 소소한 기대 역시 분명하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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