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텃밭일기 : 0315

by 전영웅

산간지역 폭설이라는 예보에 걱정했지만, 바닷가엔 비가 종일 내렸다. 연신 비를 치워내는 렌터카 와이퍼의 뿍뿍 소리가 거슬렸지만, 눈이 아니니 다행이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문제였다. 갑자기 불어닥친 섬의 바람은, 육지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나를 장장 5시간 동안 공항에 머무르게 했다. 2월 말 3월 초의 짧은 여행.. 이 시기엔 눈보다 비였고 바람은 갑작스러웠다.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인지, 콧대 높은 봄의 변덕인지는 알 수 없다. 날은 따뜻해질 듯 하면서도 여전히 쌀쌀했다. 그럼에도 따뜻해지기는 하겠지만, 해무와 안개의 나날이 다가올 것이다. 이 섬의 날씨는 닥쳐봐야 안다는 말도 있지만, 이 섬을 연계로 무얼 하든 항상 날씨를 살피고 걱정해야 한다.


축축한 비와 쌀쌀한 바람이 지나고, 살짝 건조한 공기가 흘렀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의 체감만으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보이는 풍경들이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운동하러 가는 밤길 매화나무에 매화가 연분홍 하얀 빛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마당의 모과나무에서 먼저 새순을 틔우기 시작했다. 머위가 아기 손바닥만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반려견과의 밤 산책길 비를 머금은 낙엽들 옆에 도롱뇽이 가만히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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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도 봄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첫 신호는 루꼴라의 꽃대였다. 무성하던 루꼴라는 어느 순간 꽃대를 올리더니 하얀색의 꽃을 피웠다. 겨우내 추위를 잘 버티던 녀석을 언제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바삐 지냈는데, 어느새 꽃대가 올라온 것이다. 맛있게 먹기는 글렀고, 마무리를 잘 해주어야 겠다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는 아스파라거스였다. 늦가을에 쳐 낸 메마른 밑둥 사이로 아스파라거스 새 줄기가 올라왔다. 이제 한동안은 아스파라거스를 맛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도 같이 올라왔다. 겨우내 이파리가 아래로 쳐져 있던 무도 이제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는지 이파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 조금만 늦으면 월동무의 맛도 즐길 수 없겠구나 싶었다.


올해 첫 검질이었다. 장화를 신고 골갱이를 잡았다. 겨울을 견딘 완두 주변의 검질을 매었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살짝 어지러웠다. 검질을 맬 때엔 허리가 살짝 불편했다. 나도 시간따라 몸이 달라지는구나.. 계절은 반복하지만 나는 흐르고 있었다. 무를 뽑았다. 루꼴라도 모두 걷어냈다. 무의 이파리를 쥐어뜯고, 루꼴라의 먹을만한 잎들을 골라냈다. 아스파라거스는 뿌리를 캐서 나누어 옆의 텃밭에 이식했다. 작년에 조금만 해 보자 싶었던 아스파라거스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을 몰랐다. 아스파라거스를 좀 더 퍼뜨려 넓게 키워보자 싶었다. 이식이 성공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당의 큼직한 잡초들을 캐내고 뽑아내었다. 아주 오랜만에 마당에서 긴 시간 일을 하고 있으니, 반려견 녀석이 신이 나서 자꾸 만져달라 추근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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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는 아내가 주 중에 뽑겠다고 한다. 양파는 올해도 신통치가 않다. 서서히 알이 굵어져야 하는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소식이 없다. 봄 거름을 주고 기다려봐야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다. 겨울을 난 나무들을 돌며 봄 거름을 주었다. 거둔 무와 루꼴라를 잘 씻어 집 안 주방으로 들였다. 나오면서 작은 화분에 뿌리가 한가득인 고무나무를 데리고 나와 분갈이를 해 주었다. 현관 앞은 집 안 대청소를 한 아내의 버릴 것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잘 모으고 분리해서 클린하우스에 버려야 한다. 쪽파와 무.. 아내는 아마 한 주 안에 이것들로 반찬을 만들 것이다. 텃밭의 큰 기쁨 중 하나가 먹거리 아니겠는가.. 바로 먹는 재미도 있지만, 김치나 반찬으로 만들어 두고 먹는 재미도 상당하다.


뒷마당에서 나무들을 태우려 했지만, 오후 바람이 터지기 시작했다. 날씨를 걱정해야 하는 일이 이렇다. 바람이 터지면 연기나 불씨관리가 힘들어져 나무태우기가 힘들다. 덕분에 뒷마당에는 태워야 할 나무가 많이 쌓여버렸다. 살갈퀴들이 곳곳에서 올라오는 걸 보니 봄은 맞았다. 봄기운에 표고들도 하나 둘 올라왔다. 나는 이제 계절의 이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한다. 매우 분주하겠지만, 시간은 그렇게 여유를 두지 않을 것이다. 반나절 열심히 몸을 부렸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은 눈에 밟힌다. 하지만, 해는 저물고 몸은 피곤하다. 오늘은 올해의 그런 날들의 첫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