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텃밭일기 : 0207

by 전영웅

어느 술자리에서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이 나에게 물었다.


“이제 주택생활은 충분히 해 보지 않았어? 집 관리하기 힘들텐데 말이야..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


나는 웃으며 ’그렇습니다’ 라고 답했다. 답을 하고 나니, 이 즈음에 정리한 살림들과 봄이 되면 정리할 살림 그리고 손 보아야 할 집 구조들이 떠올랐다. 집 안과 마당에서 무언가를 계속 해 왔는데, 당분간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 될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집은 상대적으로 커지기만 하고 관리는 힘드니, 아담하고 따뜻한 아파트가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당은 반려견이 있으니 필수이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제는 잔디가 거의 사라지고 나직한 잡풀들이 잠식해버렸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주택은 정말 일이 많고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많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육지로 나갈 예정이다. 집에는 나와 아내 둘이 남는다. 주택은 제주살이의 로망이기도 하지만, 보통 아이가 어릴때 편하게 뛰어놀 수 있게 넉넉하게 짓는다. 그렇게 10여 년을 살아왔다. 이제 몸은 점점 힘들어지고, 아이는 집을 나가며, 우리에게 익숙한 주택공간은 상대적으로 넓어져 버겁다.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 정리를 하고 나면 조금은 작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주택은 좋은 집을 고르기도 어렵고 사고팔기도 쉽지 않다는 단점 역시 있다. 우리 가족에 맞게 설계된 집을 다른 이들이 좋아할 지는 알 수 없고, 이사가는 집이 우리에게 잘 어울릴 것인가 하는 점 역시 알 수 없다.


어쨋든, 둘만 남아야 하는 집의 살림을 정리해야만 다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취미실로 쓰던 단독 컨테이너 공간을 정리했다. 프라모델 작업을 하던 도구들을 모두 치우고, 책장과 진열장들을 모두 정리해 버렸다. 버리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가장 큰 종량제 봉투를 가득 채워 세 더미가 나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말끔히 치워지지 않았다. 천장은 삭아서 비가 새니, 인테리어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임시라도 수리를 부탁했다. 일층 창고도 정리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자잘한 장비들과 도구들을 정리해 버렸다. 언젠간 쓰겠지 하며 모아둔 것들은 언제가 되어도 쓰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계단의 책장에도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않는 책들을 모두 정리했다. 일차로 진중권과 유시민을 정리하고 80년대의 향수들을 모두 정리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 넘길까 하다가, 책은 사서 보는게 맞다는 생각에 모두 버렸다. 큰 가방에 담아 어깨에 메고 클린하우스까지 다섯 번을 오갔다. 이제 뒤뜰과 구석 공간의 나무들과 화분들과 잡기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쉬는 날 폭설이 내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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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나무들도 과감하게 가지를 쳐 주었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너무 과감하게 쳤는지, 옆집과의 담 높이로 나무들이 나직해졌고, 잘라낸 가지들은 뒤뜰에 산처럼 쌓였다. 죽은 나무들도 있어 뽑아냈는데, 더 이상 무언가를 심으려 하지 않는 나를 깨닫고 있었다. 더는 일을 벌이지 않겠다는 본능적 다짐같은 것이 마음에 단단히 생겨 있었다. 잘라낸 나무들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 태워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쉬는 날 폭설이 내리는 중이다.


봄이 되면 일층과 2층 테라스의 데크를 모두 교체해야 한다. 부식되어 곳곳이 무너지고 삭고 있었다. 취미실로 쓰던 컨테이너를 걷어낼 계획이고, 집을 둘러 철골을 세우고 전반적으로 손을 보아야 한다. 설령 이사를 계획하더라도, 해야만 하는 작업들이다. 마당의 잡풀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그리고 올해의 텃밭을 시작해야 한다. 완두꽃이 눈을 맞고 바람을 기어이 견디는 중이다. 일은 넘치고 반복되며, 나는 그것들을 묵묵히 해 나가야 한다.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힘이 들어도 해 나가야 하는 일들 때문에 내가 버티고 생각해 나갈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 바람부는 시원한 필로티 그늘 아래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즐거움과 여유도 있지만, 모자와 긴 팔 옷을 두르고 땡볕으로 들어가 마당과 텃밭을 오가며 해야 하는 일들 때문에, 나는 깨어있을 수 있었다. 나이브할 수 없음이 주택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것에 익숙해져 나는 이제까지 내 집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계속해서 즐길 생각이다. 힘들면 규모를 줄여 마당과 텃밭이 있는 주택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다. 아파트 생각은 종종 날 것이다. 그 생각을 실천하면 나는 매우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좀 더 나이들고 몸이 많이 힘들어지면, 그 때나 생각해 볼 일로 남겨둔다. 마당견인 라이녀석도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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