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

제주에서 마주한 새로운, 그러나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

by 전영웅

눈을 뜨니 아침 6시였다. 출근은 9시까지라서 좀 더 눈을 붙일 수 있는데도 그게 쉽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그것도 답답해서 거실로 나왔다. 당장에 할 일이 없어 그냥 거실을 서성였다. 동이 트는 아침의 한라산과 바다풍경을 바라보다, 거실의 책장을 훑어보다, 베이스를 꺼내 조용히 퉁겨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색했다. 서울에서의 아침 6시는, 이미 출근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시간이었다. 몸에 배인 시간의 습관은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를 살짝 괴롭히고 있었다.

출근은 걸어서 10분이었다. 그것도 골목을 걸어 왕복 2차선 도로 건널목을 한 번 건너면 끝인 여정이었다. 아파트를 나와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건물사이 틈새로 길게 넓은 바다가 보였다. 그러고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언덕을 잠깐 오르면 시간이 진득하게 배어있는 풍경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낮은 지붕과 작은 창의 돌담집들이 있었고,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발라 단정함을 과시하는 이발사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용원이 있었다. 조금 더 걸으면 좌측으로 꺾이는 코너골목에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바람을 몸에 두른 퐁낭 두 그루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계속 걸음을 이으면, 돌담 안으로 매화와 대나무와 벚나무가 담장바깥까지 가지를 늘인 집을 지났다. 그 집을 지날 때면, 나는 계절을 느낀다. 때마침 그 때엔 매화 꽃망울이 두터워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양의 매화소식보다 조금 이르게 만개한 매화를 감상하며 출근했다. 다시 우측으로 꺾어지는 골목을 걸으면 낮은 지붕과 넓지 않은 마당 안으로 무화과나무가 내 시선높이로 눈길을 끌었고, 작은 골목 안쪽으로는 마을포제가 곧 열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가까워지며 낡은 간판의 국수집이 있었고, 맞은편 작은 대문 앞에는 노인복지시설 차량이 문을 연 채로 어느 할머니를 모시고 가려고 대기 중에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 100여미터 걷다보면, 우측으로 아침조회 중인 초등학교가 보였다. 운동장을 울리는 스피커 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뒤섞여 아침의 활기를 북돋고 있었다.

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에서는 굳이 운동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러 이동하는데 어쩔 수 없이 걷고 뛰며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제주에 오니 그런 움직임이 사라졌다. 일부러 걸어다니지 않으면 대부분의 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여유와 부동은 급격한 몸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입도 한 두달 사이에 체중이 4-5킬로 이상 증가한 것이다. 당장에 발목이 붓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일부러라도 운동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생겨 병원과 집 사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평소 염두에 두었던 검도를 할 수 있는 도장을 발견하고는 바로 도장에 등록했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한 시간씩 도장에 나가 검도수련을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가끔 급격하게 살이 불어 고민이라며 하소연하는 환자들을 만난다. 이런저런 병원에서 살이 빠진다는 약도 처방받아보고, 나름의 운동도 해 보지만 이상하게 살이 오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환자들에게, 나는 먼저 선주민인지 이주민인지 물어본다. 십중 팔구는 입도한 지 1년 미만의 이주민이었다. 다시, 나는 일단 이렇게 묻는다. 육지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러 몸을 움직이다가 제주에 내려오니 그럴 일 없이 집에 가만히 있다가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주에 오니 회든 돼지고기든 맛있어서 뭔가를 자꾸 먹게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려오니 제주에 산다고 친구들이 연락해서, 술과 음식들을 거하게 먹게 될 때가 많아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대부분, 별다른 오차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처방한다. 이 섬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움직임이 많지 않고 놀러오는 사람들에 치일 일이 많으니, 확실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조금은 힘든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에 어떻게든 검도와 헬스와 자전거 타는 일을 끼워넣어 살고 있는 내 제주의 삶을 이야기해준다. 이 섬에서의 삶은 그런 것들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목적지까지 한 시간이면 어디든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출근만 하더라도 버스와 지하철 탑승과 환승, 그리고 걷는 시간 합쳐 꼬박 한 시간을 소모했다. 그런 시간에 제주에서는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너무 멀지도, 차가 밀리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의 공간에서 보고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만큼의 공간 안에 갇힌 느낌으로 답답함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적당한 넓이의 공간이었다. 갑작스런 활동공간의 축소는 생각외로 나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는 삶의 조건으로 환원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오름과 한라산을 올랐고, 사람을 만났으며,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문득,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활동영역은 어느정도 인가에 대한 작은 고민이 생겨났다. 생태적으로 로컬푸드로 일컬을 수 있는 생산과 유통의 영역은 어느 정도인가를 고민하던 어떤 학자의 글도 떠올랐다. 축소된 영역에 적응하여 무리없이 삶을 꾸리기 시작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저마다의 활동영역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하는 소소한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에 입도하며 겪은 많은 변화들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고,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것은 그대로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고,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은 열심히 운동하여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되었고, 적당한 공간의 행복감은 덤덤한 현실이 되어 빛바래버리는 시시함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하는 나의 삶이 되었다. 그렇게 나름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 온 시간이 7년을 넘겼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서 그런지, 나의 몸은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나의 삶은 때마다의 호기심을 유지하고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삶을 살고 있다. 공간은 여전히 나에게 딱 맞는 옷과 같은 느낌이어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의 아쉬움이 유일한 걸림돌이 되고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이 공간에서 잘 살고 있다. 인간의 삶과 현실의 무게는 제주섬에서도 같은 무게로 나를 누르고 있지만, 때마다 잠깐씩 내려놓고 환기시키며 긴 호흡으로 행복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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