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며, 오늘 오후 비행기로 먼저 돌아가는 동생네가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이쪽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아침 겸 저녁은 우리 숙소 바로 앞의 팀호완이라는,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딤섬집에서 하기로 했다. 오픈 직전 내가 먼저 가서 줄을 섰고, 나머지 식구들이 짐을 정리하고 와서 함께 식사했다. 팀호완 음식들은 캐주얼한 듯하면서도 잘 정돈된 맛을 연출했다.
식사 후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2.28 화평공원에 들렀다. 사실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제주의 4.3을 공부하고 기억한 입장에서 대만의 2.28을 외면하기 힘들다. 둘은 닮아 있었다. 육지에서 들어온 공권력에 의해 양민이 학살당한 점, 수십 년간 권력에 의해 함구당했다는 점, 학살당한 양민의 수가 둘 다 3만이라는 점까지.. 대만은 국공내전에 패한 장제스가 대만으로 들어오며 함께한 수십만의 군인이 섬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면서, 본래 섬에 살던 중국인에 차별을 두기 시작했다. 어제 버스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일인과 중국인과의 차별보다 장제스 정권 시기의 차별이 더 심해서 대만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 심각한 차별 하에 본토에서 들어온 공권력이 선주민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것을 촉발로 봉기가 일어났다. 공권력은 처음에는 선주민들을 회유하였으나, 본토에 아직 주둔 중이던 국민당 군대가 입도하면서 회유는 탄압으로 바뀌었고, 주동자들을 비롯한 3만의 양민을 학살했다. 장제스 이후로 본토 출신의 군부가 권력을 잡으며 사건을 함구시켰고, 70여 년이 지나 선주민 출신이 총통이 되면서 2.28 사건의 사과가 이루어졌다. 그와 동시에 타이베이 시내 중심부에 2.28 화평공원이 생긴 것이다.
공원은 대만 특유의 식생과 잔디밭, 그리고 중앙의 첨탑이 잘 어우러진 보통의 공원이었다. 한쪽에 조그맣게 자리한 2.28 기념관은 휴관이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바로 앞의 기념공간을 잠시 돌아보았다. 공원 안에 자리한 대만 국립박물관도 관람했는데, 원주민의 사회사부터 대만의 근대사까지 전시되어 있었고, 대만의 자연사와 현재 대만의 자연생태계까지 압축적으로 잘 정리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대만에서는 장제스 이후의 현대사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중정기념당 같은 곳을 가보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만의 역사를 설명함에 있어 이상하게도 일제강점기 이후는 어디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여행을 하기 전 읽은 책에도 그랬다. 대만의 역사를 서술한 책인데, 원주민들의 생활사회사부터 중국인들의 입도 등등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일제강점기 이후 장제스부터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대만을 쭉 읽어오다가 해방이 된 이후 갑자기 훌쩍 뛰어넘어 현재에 착지한 기분이었다. 어째서일까.. 이 나라에서는 꽤 너른 공백이 느껴지는 것일까?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 머릿속에 생긴 의문이었다.
동생네를 보냈다. 조카는 대만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둘째 조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서로에의 관심은 대만에의 동반 여행으로까지 이어졌고,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문제 없이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먼저 와서 맞이하고 먼저 보내는 입장의 애틋함.. 우리는 다시 함께, 각자의 삶 바깥에서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기대가 생기고 있었다. 타이뻬이 메인 역에서 헤어져, 우리는 베이터우 역으로 향했다. 인파에 묻혀버려 모든게 피로했던 단수이에 다시 가서 제대로 구경하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베이터우의 온천을 선택했다. 베이터우는 차분한 도시 변두리 느낌이었다. 역에서 걸어나와 약 1킬로 정도를 걸으며 친환경 건물 인증을 받은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베이터우 도서관에 들러 안을 구경하고 나왔다. 고동색 톤의 목조건물 도서관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 않아 자유로우면서도 차분함과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고 글작업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근의 동네 분위기도 어딘가 친숙하고 마음에 들어 한동안 머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황성분이 함유된 온천물이 흐르는 계곡이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춥지도 아직 덥지도 않은 시기의 이 동네가 매력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길을 걸어 지열곡을 구경했다. 솟구치는 온천수에서 증기가 오르면서 주변을 뒤덮었다. 약간의 비릿한 유황냄새 같은 것도 느껴졌고, 도심 가까이에서 이런 온천수가 솟는 계곡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이 동네에 왔으니 온천을 경험해야지 해서 미리 예약한 호텔 한시간 반짜리 가족 온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조그만 탕에 온천수를 채우고 몸을 담갔는데, 옆으로 보이는 바깥은 우리나라의 5월 풍경같았다. 나른해지는 몸을 느끼며 나는 그간의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사람에 치여 돌아다녔던 여행이라고 해도 좋았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럽게 돌아다녔다. 동생네를 만난 건, 우리 가족만 다니면 자칫 지루했을 여행일정에 통상적인 재미를 더하며 나름 알찬 일정을 꾸몄던 계기였다. 대만은, 살짝 녹슬고 거친듯 지저분한 건물들과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시간의 풍경을 연출했다. 그 안에서 흐르는 공기와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서 익숙함과 친숙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그대로 한국사회의 어떤 면들을 연상케 했다. 그만큼 대만은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에게도 낯설음이 덜한 나라였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반가움으로, 또다른 면에서는 시시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은 이 곳에서의 마지막 오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오후까지 새로운 곳으로 다니며 우리는 여전히 처음을 마주했지만, 인상이나 느낌은 이미 조금은 알고 있는 듯한 익숙함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온천욕으로 나른해진 몸으로 바라보는 바깥풍경이 우리나라의 5월 같아서, 그 기분 안에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와, 바로 앞의 케타갈란 원주민 문화관에 들러 대만섬의 원주민 생활사를 둘러보았다. 대만은 중국본토와 가깝고 오랜 원시시대에 육지로 이어진 적도 있었지만, 원주민들은 중국 본토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해양문화권에 속한다. 말하자면 해양문화권의 북방 한계점이라 볼 수도 있는데, 언어학적으로 이들을 연구한 결과, 이들의 언어는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지역과 사모아 그리고 핏케언 제도, 이스터 섬까지 이어지는 태평양 해양언어권과,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이어지는 태평양 인도양 해양언어권으로 이어진다. 원주민 사회사 역시 중국과는 거리가 먼 해양문화권의 사회사와 유사하다. 따라서 원주민의 역사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점령과 한족과 만주족의 유입 등에 의한 생활권의 침식이었고, 이들과의 교류였다. 그러나, 원주민들과 점령자나 입도종족들간의 격렬한 대립은 보이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나름의 생활권을 보장받았고, 유입된 사람들 또한 거친 자연환경 때문인지 점령지나 거주지의 확장에 대한 적극성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격렬한 대립은 중국인과 원주민이 합세하여 강제점령한 일본과에서 나타난다. 내가 이제껏 여행한 타이뻬이와 북동부 산악지대는 주로 한족과 만주족의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들이다. 따라서, 이 곳에서는 체제와 결이 다른 중국인들의 삶을 본 것이지 원주민들에 가까운 삶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다시 대만을 찾는다면, 타이뻬이보다는 타이중이나 가오슝, 그리고 동부 해안지역을 다녀보고 싶어졌다.
베이터우를 떠나 시내로 들어오며 다시 스린야시장에 들렀다. 취두부는 먹어보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사람이 조금 빠진 스린 야시장은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한 켠에 새우낚시터도 보였고, 아케이드 건물 지하의 전문 먹거리 식당가도 찾아냈다. 그것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취두부를 튀겨 파는 집을 찾았고, 취두부 한 접시를 주문해 먹어보았다. 제대로 만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취두부는 생각보다 거부감이 덜하면서 맛있었고, 매운 소스를 뿌린 취두부를 아들녀석도 잘 먹었다. 이쯤에서 나의 입맛도 한 번 돌아 볼 만 하다. 좋아하는 것들은 어째 냄새나고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일까? 두리안, 홍어, 취두부.. 또 보편적이지 않은 무엇이 있을지 기대까지 되는 것이었다.
동문 역으로 갔다. 우리의 마지막 식사는 딘타이펑 본점으로 정해두었던 것이다. 대기표를 뽑고 미리 주문을 한 뒤에 우리는 주변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 곳은 첫 이틀의 숙소가 있던 자리라 이미 익숙한 동네였다. 아내는 딘타이펑의 대기표 실시간 확인 앱까지 설치해서 우리의 번호를 확인하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창먼이라는 대만 수제맥주집을 발견해서 식사 전 한 잔을 주문해 마셨다. 어딜 가든 수제맥주는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문은 항상 IPA를 주문했다. 창먼의 IPA맥주는 과일향이 좋긴 했지만, 너무 달달하고 비쌌다. 단 한잔으로 대만의 수제맥주를 경험했다는 자기만족감을 느끼며 대기순번이 얼마 남지 않은 딘타이펑으로 향했다. 딘타이펑의 딤섬은 매우 교과서적인 맛이었다. 그 중에서도 송로버섯 딤섬은 그 풍부함과 깊은 맛에 있어 감동이었다. 가히 인생딤섬이라고 할 만한 맛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늦은 밤의 동문 역 부근과 타이뻬이 메인역 부근의 백화점에서 선물거리를 구입했다. 우리는 여행객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은 무심히 자신의 할 일과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었다. 반려견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소문답게 반려견 전용 개가방, 개 유모차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리드줄에 묶어 산책을 하는 반려견들도 어렵지 않게 보였다. 이 곳에서 보는 반려견들은 입마개도 딱히 다른 조치도 없었다.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이거나 경계어린 눈빛도 없었다.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레 사람들과 어우러져 개와 주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을 물거나 반려견 문화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행자라는 보이지 않는 차이를 안고 거리를 걸었고 전철을 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여행은 타인의 삶 속에 비집고 들어가 함께 있어보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내가 기대했거나 아쉬워하거나 했던 이 공간은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하거나 또는 무취무미의 일상공간일 뿐이다. 나는 그런 공간에 비집고 들어와, 내 입장에서의 새로움과 즐거움과 여유를 갈망하고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여행은 이제 마무리되고 있지만, 끝까지 조심스럽다. 대책없이 비어져나오는 흥분과 근거없는 기대나 아쉬움이, 타인의 평범한 공간 안에서 무례함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이란,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독여야 하는 자기수련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내가 제주라는 또다른 관광지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면모인지 모른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옆의 터미널에서 공항행 버스를 탔다. 그 새벽에도, 공항 가는 버스는 완벽하게 만석이 되었다. 그리고, 공항은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유란 없었다. 인파에 밀려 수속을 하고 다시 인파에 밀려 검색과 여권을 확인받고, 대만의 유명한 위스키라는 카발란을 얼른 한 병 사든 뒤에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는 여전했고, 5일 동안 주인을 보지 못했던 우리 강아지 라이는 허리가 접히고 뒤로 뒤집어질 정도로 뛰쳐올라 우리를 반겼다. 도착하자마자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해결해야 했고, 그렇게 바쁘게 휴가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여행을 다녀왔지만 여행의 여운은 별로 없었다. 대만은 그만큼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에게도 익숙함의 여유를 선사하는 섬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