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명이나물 캐기

by 달 산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가끔 4월 초에도 눈이 내리기도 해서 아직 패딩 코트나 겨우내 덮었던 이불은 세탁하지 않았지만,

흐리고 스산하기만 하던 하늘이 자주 노란 햇살을 보여주니

작은 데이지 꽃들이 하얀 별처럼 마당에 박혀있다.

아침마다 고놈들 활짝 핀 얼굴 보는 맛이 쏠쏠하다.


​첫해 이사 와서 비엔나에 명이나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비엔나의 3월과 4월 사이, 숲과 마트에는 알싸한 마늘 향을 풍기는 초록빛 잎사귀들이 등장한다.

작년에 심은 명이가 마당 힌켠에 올라왔다

현지인들이 '베를라우흐(Bärlauch)'라 부르는 이 식물이 바로 우리가 아는 '명이나물'이다.


비엔나에서 명이나물을 가장 쉽게 구하는 방법은 일반 마트의 채소 코너이다.

이 시기에는 팩에 든 신선한 명이나물을 흔히 볼 수 있으며, 가격은 100그램에 2유로 정도다.


조금 더 싱싱한 나물을 원한다면 나슈마르크트 같은 재래시장을 방문해 다발로 묶인 명이나물을 더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누구인가? '나물 캐러 가자'는 노래도 있는 한민족이 아니던가.


현지에 사는 한국분들은 대다수 봄이면 명이나물을 직접 캐서 먹거나 다른 분들이 캔 것을 나누어 먹는다.


한국에 11월이면 김장을 준비하듯,

이곳에서는 3월이면 명이나물 캐기를 기다리고 준비한다.


비엔나 숲이나 다뉴브 섬 근처의 숲 속을 걷다 보면 발밑에 지천으로 널린 명이나물을 만날 수 있는데, 언뜻 보면 매끈한 화초처럼 예쁘게 생겼다.

명이꽃이 활짝 핀 비엔나 숲


​여기서 초보자분들은 주의해야 한다. 독초인 은방울꽃 잎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잎을 뜯어서 손에 문질렀을 때 진하고 알싸한 마늘 향이 나면 명이나물이고, 아무 향이 나지 않는다면 독성이 있는 은방울꽃이니 절대 캐서 먹으면 안 된다.


국립공원 같은 곳은 채취가 금지되어 있고, 가능한 숲이라도 1인당 먹을 만큼 적당히 캐 오는 것이 상도덕이다.


그래서 한 번에 욕심내지 않고 검정 봉다리 한두 개 정도만 기분 좋게 채워 온다.


​이렇게 구한 명이나물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주로 잘게 다진 잎에 잣, 올리브유, 파마산 치즈를 섞어 페스토를 만들어 파스타나 빵에 곁들여 먹는다.


우리는 어떻게 먹느냐?


​1차: 어린잎을 따서 부침가루와 물을 조금 넣어 명이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 울릉도 명이나물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보드랍고 여린 잎이 너무 맛나다.


2차: 고춧가루와 액젓에 살짝 버무려 명이 겉절이를 해서 먹고,


3차: 명이나물을 삶아 물기를 꼭 짜고 두부와 당면을 쫑쫑 썰어 명이만두를 쪄 먹는다.

비엔나 장금이님의 명이만두


4차: 좀 자라서 크고 질겨진 잎을 간장 설탕 식초를 넣고 명이 장아찌를 담가 먹는다.


5차: 삶아서 꼭 짠 명이나물을 한 덩이씩 냉동해 두고 명이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자랑인데 얼마 전 이탈리아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는데, 명이 장아찌를 사 먹고 싶은 맛이라 해서 한 통 싸줬다. 요리에 큰 자신감 없는데 그분 덕에 어깨가 으쓱해진 기억도 있다.


이번 주에도 명이나물을 캐러 간다.

커피랑 컵라면 같은 간식도 가져가서 어울렁더울렁 지인들과 정을 나누는 그 시간이 나는 정말 좋고 기다려진다.


​물론 캐온 명이를 매번 집에서 하루 종일 다듬고 씻는 것은, 주의력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고행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긴 하다.

하지만 1년간 맛있게 먹고 든든할 것을 생각하면 그 수고로움은 금세 잊힌다.


올해 비엔나의 봄도 이 정직한 향기 덕분에 참 풍성하고 따뜻할 것 같다.


참 5월에 들깨 심는거 까먹지 말아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깻잎 쌈 먹으려면...

명이나물을 꽂은 케이크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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