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의 비엔나는 올해 유독 짙은 안개가 자주 낀다. 숨을 들이마시면 안개 알갱이가 함께 들어오는 것 같아, 도시 전체에 가습기를 최고로 틀어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라벤 거리에 걸린 루미나리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릴 만큼 더 아름답다.
남편은 슈베덴플라츠에서 슈테판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설치된 붉고 둥근 조명들을 좋아한다. 색이 쨍해서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유다. 나는 그라벤 거리에 걸린, 궁전의 샹들리에처럼 우아한 조명을 더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라트하우스(시청) 앞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 계절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뜨거운 와인인 글뤼바인과 마늘 오일을 바른 도우빵 랑고스의 냄새가 밤공기에 섞여 오래 남는다.
며칠 전, 남편과 당일치기로 프라하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틀 전에 결정해 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즉흥적인 성향의 우리 부부에게는 꽤나 계획적인 일이었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새벽 6시 30분 기차를 타고 네 시간을 달려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공기는 비엔나보다 더 차가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목적은 단순했다. 프라하에 한국식 중국집이 있다는 소문, 오랫동안 그리던 짜장면을 먹으러 온 것이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조금만 걸으니 한국 음식점이 나왔다. 타국에서 익숙한 맛을 마주한 남편의 눈 아래에 눈물인지 땀인지 송글 맺히는 모습에 먼 거리까지 와서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프라하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카를교에서는 사람들에게 밀려 다리를 건넜고,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옆의 작은 다리를 택했다. 속도를 늦추자, 도시가 조금 다른 얼굴로 보였다.
구시가지를 2만 보 넘게 걷고 난 뒤, 오후 4시 20분 기차를 타고 다시 비엔나로 향했다. 4시면 해가 져서 창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남편은 폰을 보다 졸다 하였다.
프라하까지 와서 짜장면을 먹고, 다시 비엔나로 돌아가는 이 하루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채워주고 있었다. 먼 미래를 위해 쌓아둔 계획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온전히 쓰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십몇년전 이곳에 처음 여행 왔을 때만큼의 설렘은 없어도 가끔 이런 일이 나와 남편에게
또 한동안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내게 불안만 가중시키던 100세 노후를 대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제 끝나도 덜 후회할 하루’를 생각했다. 노후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겨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지금 이 계절, 지금 이 몸으로, 남편과 함께 소소하게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미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옆자리에서 졸다가 깨서 오늘 찍은 영상을 보는 남편의 웃음 머금은 표정에서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