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되어야 한다”가 인생의 언어가 된 순간

by 꽉형 헤어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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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삶을 설명할 때 감정보다 문장을 먼저 꺼내 들기 시작했습니다. “좋다”, 혹은 “하고 싶다”보다 “그래야 한다”라는 말이 더 익숙해진 순간들. 그 문장은 처음에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언어처럼 보였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증거 같았고, 사회 속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언어는 언제부터 우리 삶의 주어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의 욕망이 아니라, 요구되는 역할로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는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되어야 한다”는 말은 강요가 아니라 학습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행동해야 하며, 부모는 부모답게, 가장은 가장답게 버텨야 한다는 것. 이 ‘답게’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기대와 기준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명시적으로 가르쳐지기보다 분위기와 시선, 평가와 보상 속에서 스며듭니다. 잘 해냈을 때 돌아오는 인정, 무난하게 해냈을 때 유지되는 안전. 우리는 그렇게 배웁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칸트는 인간을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인간의 존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의무는 어느 순간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로 바뀝니다. “이 정도는 해야지.” “이 역할을 맡았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내 목소리로 번역하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삶의 언어는 서서히 바뀝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지?”라는 질문은 줄어들고,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라는 질문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이 전환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강하게 명령하지 않았고,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언어는 억압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임감, 성실함, 성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칭찬받아 왔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니체는 이런 도덕의 내면화를 경계하며 말합니다. “사람은 도덕을 따르면서도, 그 도덕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언어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문장이 정말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오래된 기대가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인지를 좀처럼 점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언어가 삶의 중심이 되면, 욕망은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욕망은 시끄럽고 불확실하며, 때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역할은 명확합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평가 기준이 있으며, 결과가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망을 위험한 것으로, 역할을 안전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삶, 무대 위에서는 박수받는 역할. 그러나 막이 내려간 뒤 남는 것은,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했는지 알 수 없게 된 공허함입니다.


이 공허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되어야 하는 나’를 충실히 연기해 왔고, 그 연기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더 쉽게 멈추지 못합니다. 성과도 있었고, 관계도 유지되었고, 사회적 좌표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은 묘하게 무거워집니다. 특별히 큰 불행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쁨이 얇아지고, 선택이 피로해집니다. 왜냐하면 선택의 기준이 더 이상 ‘내가 원하는가’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적절한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루는 고통 역시 사건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입니다.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삶의 기본값이 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 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충분한지, 적절한지, 모자라지 않은지. 그 과정에서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관리되는 삶에서는 욕망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집니다.


이번 장에서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되어야 한다”는 언어는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흐리게 만드는 안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언어를 당장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멈춰 서서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장은 지금도 나를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익숙해서 반복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5장의 출발점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할 뒤에 밀려난 욕망을 다시 불러보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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