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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메이커의 뚝딱뚝딱 목공 도구>번역의 비하인드 스토리

올해 두 권의 책 번역을 마쳤다. 목공도구 사용법을 소개한 <메이커의 뚝딱뚝딱 목공 도구>가 이번 주 서점에 나왔고, 나머지 한 권은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번역서로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책이지만 혼자 번역한 책으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이다. 사실 전문 번역가 (번역을 본업으로 하여 많은 양의 번역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아니면 특정 분야에서 번역의 우수성을 인정 받은 사람들)가 아니라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데 이에 비해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인 보상이 덜한 번역은 권할 것이 못된다. 그럼에도 번역을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책(외국서적)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올해 내내 번역을 하는 시간은 솔직히 힘들었다. 본업이 아니다보니 새벽에 일어나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때가 많았고, 출장이나 휴가 때에도 종일 숙소에 틀어박혀 속도를 내야 할 때도 있었다. 출판된 책을 받아들고는 번역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해봤다.

  

1. 번역은 공부다: 내가 번역을 시작한 데에는 아내의 영향도 컸다.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려 20권 가까운 책을 번역했는데, 돈도 안되는 것을 왜 계속 하는지 물었을 때 아내는 “좋은 책을 번역하면서 그 주제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으며 자연스럽게 지식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꼽았다.
학부 시절 부전공이었던 철학 시간에 하이데거를 전공한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독일에서는 철학 원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으로 학위를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원전을 제대로 이해하여 모국어로 옮기는 일의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사회심리학 책을 번역하면서 책을 번역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공부인지를 깨달았다. 곧 출판할 <The Person and the Situation>은 매우 훌륭한 사회심리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서너 문장이 길게 이어져서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하느라 애를 먹었다. 편집자는 내게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 꼼꼼히 주석 달아주길 원했다. 주석 중 상당부분은 사회심리학자에 대한 것이었는데, 세상을 떠난 학자의 경우 심리학 인명사전과 부고 기사를 참고했다. 주석은 간단하게 달면 되지만, 사전과 부고 기사를 읽다보면 또 다른 자료를 살피게 되고, 그러다가 주석을 다는 데는 필요하지 않지만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면 번역을 뒤로하고 그 사람의 인생과 업적에 빠져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심리학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던 사람이 자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지는 때도 많았다.
목공책에서는 작업실에서 흔히 사용하던 공구의 기원과 정확한 쓰임새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사회심리학책을 번역하면서는 사회심리학의 역사와 의미 있는 발견, 훌륭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2. “약한 연대의 힘”: 사회학자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가 1973년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The Strengths of Weak Ties>, 즉 ‘약한 연대의 힘’이다. 강한 연대란 자주 보는 사람들이며, 약한 연대는 1년에 몇 차례 볼까 말까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라노베터는 직장(취업기회)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경로가 약한 연대인지 강한 연대인지를 살폈고, 결국 강한 연대보다는 중간이나 약한 연대로부터 소중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늘 항상 함께 지내는 사람(대표적으로 직장 동료)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나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생각해본 새로운 아이디어가 내게는 익숙한 아이디어일 경우가 많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정보를 접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날 보는 동료들끼리만 앉아서 브레인 스토밍을 해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것은 과학적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직장이나 업계가 다르고, 어쩌다 만난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나 아이디어는 내게는 새롭고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이번에 목공 책을 번역하게 된 것 역시 ‘약한 연대’ 덕분이었다. 알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1년에 한 번 보기 힘든 지인이 있는데 그 아내분을 딱 한 번 행사에서 만나 인사했다. 책을 여러 권 번역한 그 아내분은 우연히 출판사로부터 ‘목공책을 번역할 역자를 찾고 있는데, 번역을 할 수 있으면서 목공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그때 남편분이 나를 떠올린 것이다. 목공책을 번역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않았던 나는 그동안 배워온 것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란 생각에 첫 단독 번역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5년째 라디오(SBS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에서 격주로 책소개를 하고 있는 것도, 4년 동안 한겨레에 칼럼(김호의 궁지)을 쓰고, 3년째 동아일보에 칼럼(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을 연재하고 있는 것도, 올해 초 TV(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가게 된 것도 어느 것 하나 내가 직접 나서서 만든 기회가 아니었다. 모두가 누군가의 추천과 연결에 의한 것이었다.
이 책의 번역이 앞으로 내게 어떤 의미나 기회로 연결될지 모르지만, 우리 삶에서 많은 기회는 자주 만나는 가까운 사람보다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기도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두 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소개와 추천이 삶에 어떤 새로운 기회와 운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나 운을 전하고 싶다.


번역을 언제 또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의미있는 작업이었으면서도 올 한해 번역으로 인한 ‘고통’도 상당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번역으로부터 좀 휴식을 하고 싶다:) 다행이 올 연말에는 번역에 쫒기지 않고 한 해를 마음 편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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