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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구내식당 로망

구내식당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번도 구내식당이 있는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 고객사를 방문해서 식사를 할 때 구내식당에서 먹게 되는 경우가 어쩌다 있는데, 외부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내게는 훨씬 재미있는 경험이다.


구내식당을 비교적 꾸준히 이용해본 경험은 군대와 학교 다닐 때이다. 군대에서의 구내 식당 경험은 두 가지로 나뉜다. 훈련받는 기간(무려 5개월이나 훈련소에서 지내야 했다)과 훈련이 끝나고 부대로 갔을 때의 식당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훈련소 식당에서는 내게 선택권이 없다. 취사병이 쥐어주는대로 받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른 반찬이나 생선 등은 비교적 일정 분량을 받을 수 있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고깃국일 경우이다. 취사병이 국을 어떻게 퍼내는지에 따라 내 트레이에 담기는 국물에 고기가 얼마나 들어갈지가 결정된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당시에는 고기의 양이 내 마음은 물론 하루의 기분을 바꿔놓기도 했었다.

  

학교에서의 구내식당 경험도 한국과 미국 학교 두 가지로 나뉜다. 미국 학교 구내 식당이 메뉴나 음식의 질은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물론 값도 더 비쌌다), 내게 구내식당은 한국의 대학이 더 ‘매력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내식당의 개념에는 가격 싸고, 양 많은 것외 한 가지가 더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음식을 담는 ‘트레이’다. 밥과 국을 담고, 반찬 3-4가지를 담을 수 있는 네모난 플라스틱 혹은 스테인레스 식판말이다. 이 식판의 구조는 어린시절이나 지금이나 바뀌질 않았다. 여기에 밥을 담을 때면 흰쌀밥을 먹을지 잡곡밥을 담을지, 주걱으로 한 번만 밥을 담을지 아니면 두 번 담을지…… 반찬을 담을 때면, 어디에 고기를 담고, 어디에 김치를 담아야 할지, 소시지가 몇개 남지 않았을 때, 뒤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몇 개나 집어야 할지, 생선은 큰 토막을 집을지 중간 크기를 집을지, 마지막에 국을 담을 때는 얼마나 담아야 할지, 국물과 건더기의 비율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배식대를 지나가며 머릿속에서는 나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친다.

이번 가을 고려대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학부 강의를 하고 있는데, 1시 수업을 앞두고 12시 즈음 도착해 학생식당에서 5천원짜리 뷔페를 먹는다. 물론 트레이에 음식을 담는다. 한쪽에는 프라이팬과 가스버너가 놓여 있어서 1인당 계란 한 개를 ‘후라이’로 해먹을 수도 있다. 구내식당에서 후라이를 직접 해먹는 것은 내겐 새로운 경험이다:) 구내식당은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용하는 곳이기에 그런지 특별히 맛있을 것도 없지만, 최소 맛이 ‘평균’은 한다. 맛이 없었다가는 집단으로 불만을 받을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일까? 어린 시절 마음껏 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소시지 반찬이나 돼지불고기, 오뎅조림, 심지어 계란말이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언제 예쁜 식판을 보게 되면 하나 사고 싶다. 가끔 집에서 ‘구내 식당’ 분위기를 내는 데에는 식판이 꼭 있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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