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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아름다운 장례식 두 장면

장면 1. 방콕에서의 출장 일정 마지막 날 저녁,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할 때 CNN에서는 존 맥케인의 장례식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었다. ‘옆눈으로’ TV를 보며 짐을 싸던 나는 장례식에서 아일랜드의 민요 “Danny Boy”가 흘러나오자 짐을 밀쳐두고 그 때부터 장례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1년여 동안 피아노 선생님에게 배워 어설프게라도 칠 줄 아는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여성이 너무도 아름답게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래는 장례식에서 나온 종교인이나 정치인의 연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 곡의 래로 많은 사람들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존 맥케인은 오래된 아일랜드 노래인 대니 보이를 아리조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종종 들었다고 한다. 하루는 자신의 친구이자 선거를 담당했던 릭 데이비스와 집에 있던 자리에서 맥케인은 자신의 장례식 때 이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데이비스가 미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을 추천했고, 맥케인도 동의했다. 데이비스는 몇 주 전 플레밍에게 정식으로 요청을 했다. 플레밍은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Carousel”에 출연중이었고, 장례식장에 와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공연을 한 회 빼먹어야 했지만, 프로듀서의 허락을 받아 오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노벨상 시상식에서부터 케네디 센터와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벤트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그녀이지만, 오늘 그녀의 노래는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장면 2. 지난 달 미국 메인 주의 목공학교에서 만난 수업 동료의 이야기이다. 수업 중에 자신의 작품이나 영감을 준 대상에 대해 사진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이라는 한 여성 수강생이 자신이 만든 상자를 보여주면서 “땅에 묻었다”는 이야기만 언뜻 듣게 되었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쉬는 시간에 그녀에게 물었다. 왜 땅에 묻었느냐고. 10여분간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눈에는 몇 차례 눈물이 고여 말을 잘 잇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외할아버지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단다. 두 분 모두 화장을 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그릇에 유골을 담아 떠나보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간 시간을 내 직접 티크 목재로 할아버지 유골과 친척이 보관하고 있는 할머니 유골의 일부를 담아 땅에 묻을 상자를 만들게 된다.


상자를 만드는 과정이 어땠냐고 묻자 그는 상자를 만들면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이 만든 상자에 담아 묻으면서 비로서 마음 편히 보내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까다롭던 외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한번도 까다롭게 군 적이 없었고, 심플한 분이었다면서 그래서 상자도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만든 상자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유골을 담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상자를 한 번씩 안으면서 두 분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 평소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늘 “be a good girl”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소망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장례식을 아름답게 치르는 것이다. 몇년 전 아내와 헬싱키를 여행하면서 둘이 우리 두 사람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Her-report에 이렇게 적었었다: “이번 헬싱키 여행에서는 잠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은 사람이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떠난 사람의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샴페인을 마시며 추억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하자구요.”


이번 출장에서 접한 동료의 이야기와 맥케인 장례식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화장하면 내 유골을 담을 작고 담백한 상자를 미리 만들고 싶다는 것과, 내가 떠난 뒤 샴페인을 마시며 추억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왔으면 하는 음악의 플레이 리스트를 정해두었으면 하는 것이다. 두 곡은 정했다. 하나는 엘튼존의 Your Song, 그리고 또 하나는 Danny Boy가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ygJD8dxi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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