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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공항 옆 호텔 속 풍경과 생각

메인 통신 #24

로비에 있는 긴 나무 테이블은 높은 천장의 환한 조명을 받아 원래 색보다 더 환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노년의 부부 두 쌍이 카드를 펼쳐놓고 게임을 하며 웃고 있었다. 그 옆에 키가 높은 소파에는 한 남성이 거의 눕는 자세로 다리를 힘껏 빼내고는 전화기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저녁이라 찬바람이 불어 나무를 때는 난로를 피워놓고 있었다. 호텔은 수영장과 스파가 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유난히 일층 수영장만 환하게 밝혀놓았지만, 정작 수영하거나 스파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텔 앞쪽으로는 공항 활주로가 보이고 비행기 몇 대가 도착한 것인지 떠나려는 것인지 서있었다.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뭐라도 먹어야 내일 새벽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갈 때까지 견딜 것 같아 바에 앉아 위스키를 한 잔 시켰다. 안주로 새우 칵테일을 시켰지만, 같은 메인주임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서 먹던 싱싱하고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웠던 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야채 스틱과 버팔로 윙과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볶은밥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31일 동안의 메인주에서의 목공수업을 마치고 월요일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루 전 공항 바로 옆에 있는,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시내 미술관에 잠시 다녀온 뒤로는 한 달 동안 정들었던 렌트카도 반납하고는 호텔 안에서 지냈다. 오후 1시쯤 체크인했다가 다음날 새벽 4시에 나왔으니 15시간 정도를 보낸 것이다. 선호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공항 옆 호텔에 묶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루를 넘는 경우는 없다. 누가 공항옆 호텔에서 이틀을 묶고 싶을까? 활주로만 보이는 허허벌판에서 말이다. 여행을 마치고 렌트카도 반납하고 호텔 안에 발이 묶이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저녁에는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마실 것이고, 호텔 방에서 TV를 보거나(이번 한 달 동안 내가 묵은 방은 물론 집 전체에 TV가 없었다), 초안만 잡아 놓은 Her-report를 한 꺼번에 써내려가거나 한다.


여행 끝에는 노트에 그간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호텔방에 앉아 영어로 떠드는 TV도 잠시 꺼두고 지난 한 달을 돌아보았다. 많은 것들은 이미 허리포트에 그 동안 올려 놓았다. 처음에 도착하여 록포트로 들어가자 전화와 문자가 먹통이 되어 주인집 전화기를 빌려 한국의 통신사와 오랫동안 통화하다가 실망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났다. 그 후로 몇 번이고, 이번 여행에 전화가 먹통이 된 것은 어쩌면 내가 진짜로 목공에 전념하도록 한 배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난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내 전화기가 울리거나 메시지가 뜬 적은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옆 도시로 나올 때 몇 개의 밀려있던 문자가 머리를 들이민 적은 있었다. 공항 옆 호텔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새벽 4시에 나서려면 3시에는 일어나야 해서 긴장하며 누웠는데, 그 때부터 전화가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로 알람을 맞추어 놓아 전화를 완전 끄지도 못하고 있을 때, 계속 같은 번호에서 전화가 오길래 혹시나 급한 일인가 싶어 불을 켜고 전화를 받았다. 텔레 마케팅 전화였다. 서울에 돌아가면 또 이렇게 살겠구나 싶어하면서 짧게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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