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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95세의 현역 예술가 애쉴리 브라이언 전

메인통신 #23

메인주에서 꼬박 31일째 되는 날이자 이곳에서 마지막날. 포틀랜드 공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Portland Museum of Art에 다시 갔다. 신문에소개된 ‘Painter and Poet: The Art of Ashley Bryan’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1923년생으로 현재 95세라는 것도 놀랍지만, 현역 작가라는 것은 더욱 놀랍다. 그는 6세에 책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책을 위한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흑인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왜 작품에 흑인이 나오지 않는지, 흑인이 만든 작품은 없는지 의문을 품고, 그 빈 공간을 자신이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아프리카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흑인의 이야기를 모으고, 이를 그림책과 인형으로 표현해왔다. 미술관에 있는 인터뷰 비디오를 보면 아프리카에서는 여러가지 색깔의 새를 놓고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검정색 새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흑인인 자신도 검정색에 대해 아름답다는 생각을 못해봤었다고, 그래서 그의 작품이나 그의 웹사이트(ashleybryancenter.org)에 들어가면 검정색 새가 등장한다.  


대공황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40년(17세)에 당시 흑인으로서는 쉽지 않게 Cooper Union School of Art and Engineering에 들어갔으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Normandy invasion)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후 Cooper Union에서 교육을 마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장학금을 받아 독일로 유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14년을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가르쳤다. 1946년 여름 미국 메인주에 있는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에 갔다가 크랜베리 아일즈(Cranberry Isles)라는 곳을 보게 되고, 곧 여기로 이사하여 60년 넘게 이 곳에서 살면서 작업해오고 있다.


전시관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인상적인 두 장면. 이민자였던 그의 부모는 아들이 창의적인 작업을 하도록 항상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부모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책상을 사주었고 인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다양한 종이 조각들을 집에 가져와서 브라이언이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항상 격려(encouragement)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한 가지는 흑인이 심한 차별을 받던 시절, 왜 흑인이 문학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지 의문을 갖고 그 빈 공간을 자신이 채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이 작업을 95세가 되는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다는 점이다. 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나는 세상의 어떤 틈을 채워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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