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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교회, 성당...
그리고 불량신자의 고백

불량신자가 절과 성당을 찾아갈 때는?

by HER Report

이번 교토와 나라 여행 중에 식당 빼고 가장 많이 간 곳은 절이었다. 딱히 나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나는 까막눈에 가까운지라(아내는 일본어를 하고 일본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내를 따라 유명한 절들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카톨릭 세례명을 갖고 있고 작은 성당에서 결혼했지만 미사에 나가지는 않는다. 몇 년 전에 친구 따라 절에서 스님의 강의를 듣다가 ‘자담’이라는 법명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절에 다니지도 않는다. 종교의 입장에서보면 여러 모로 불량신자인 셈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 빈 성당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둘이서 절이나 성당을 가장 자주 가는 때는 여행 중이다. 유럽을 여행할 때에는 유명한 교회나 성당을 방문하고, 일본을 여행할 때는 절을 방문한다. 절에 가서는 향을 피우고 절도 하고, 성당에 가서는 초를 켜고 기도도 한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와 연결되기도 한다. 수녀원을 위한 워크샵을 해온 지 5년쯤 되었고 이번 주말에도 한 수녀원에서 수녀님들만을 위한 워크샵을 진행한다. 작년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진행했던 워크샵에 신부님과 스님이 함께 참여하기도 했고, 또 다른 워크샵에는 목사님이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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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절을 다니면서 과거 가봤던 성당, 교회 등을 떠올려 보았다. 만약 종교에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침묵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절대 침묵 속에서 바람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던 도후쿠지(동복사)가 가장 좋았다. 또 다른 대표적인 경험은 핀란드 헬싱키 시내에 있던 교회인 캄피 침묵의 예배당이었다. 그 안에서 진지하게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 혹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대 침묵이 무엇인지 감명받았다. 그 곳에는 도움이 필요하면 상담해주는 사람은 있지만, 교회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말을 걸지 않으며 그저 누구나 와서 침묵에 잠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도 없어서 모두가 절대 침묵 속에서 자기 안의 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조건은 ‘작은’ 곳이다. 대표적인 곳은 용산에 있는 문화재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1902년 완공)과 미국 밀워키에 있는 St. Joan of Arc 성당이다. 두 성당 모두 수십 명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성당이지만 그래서 더 편안하다. 언젠가 카톨릭 철학을 배우고 싶어 교수님을 찾아가 어떻게 공부하면 좋겠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교수님의 대답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책도 강의도 필요없고 '가난'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카톨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화려하고 큰 성당이나 교회나 절이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 조건은 ‘새월의 때가 묻은 곳’이다. 나라에서 어떤 절은 수리를 새로 하여 말끔하게 칠이 된 곳이 있었고, 오래된 때가 그대로 묻어 1천 년이 넘은 곳도 있었다. 역시 마음 가는 곳은 곳곳에서 때가 묻은 나무와 쪼개진 기둥을 발견하는 절이었다.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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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교는 가끔씩 찾아가는, 하지만 늘 거기에 있는 현명하고 기댈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절대 침묵 속에서 신(예수이든 부처이든)에게 마음을 직접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설프고 불량신자이긴 하지만, 그게 현재 나와 종교의 관계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번에는 춥지않은 봄이나 가을에 동복사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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