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할까?
2007년 6월. 전 직장을 떠나 독립회사인 ‘더랩에이치’ 설립을 해 놓고 내가 처음 한 일은 쉬는 것이었다. ‘하프타임(half-time)’이라는 나름의 이유를 달고서. 캐나다의 할리팩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티벳불교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리더십과 명상 캠프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여행을 했다. 원래 1년 쉬려고 했지만:) 7개월 정도 쉬었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대전으로 집을 옮겨 사업보다는 학교 수업을 우선순위로 하였으니, 하프타임은 짧게 보면 7개월, 길게 보면 3년 정도 되었다.
당시에는 ‘퍽유머니’에 대한 개념(아래 칼럼에 나온다)도 없었고, 직장 다니며 모아 놓은 돈을 까먹으며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프타임을 가질지 말지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언젠가 하프타임이 절실히 필요할 때, 이렇게 기본 생활을 영위할 ‘퍽유머니’가 없으면 실행하기 힘들다. 아내의 구호처럼 이런 경우 ‘캐쉬 이즈 킹(cash is king)’이 된다:). 하프타임을 갖든 갖지 않든, ‘퍽유머니’ 통장은 누구에게나 필요해보인다. 하프타임을 갖지 않더라도 그 돈은 그냥 남고, 다른 곳에 쓰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주 신문(동아일보)에 쓴 칼럼은 이에 대한 것이다. (사진은 2007년 할리팩스 여행하는 동안 어설프게 DSLR 갖고 다니며 찍은 몇 장)
=============================
“만약 1년 동안 연봉을 그대로 받으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나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농담이 아니라 정말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은 차를 몰고 국내 혹은 유럽이나 미국 동서횡단 등 여행을 하겠다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는 단기 연수나 요리, 목공과 같은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나 시골에 가서 책을 실컷 읽겠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재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만화를 그려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과연 차 한 잔에 케이크 먹으면서 잠깐 동안만 생각하는 팔자 좋은 소리에 그치는 것일까?
영어 표현 중에 퍽유머니(f*ck you money)란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그 범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 단어를 정의하는 데에는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맘에 안 드는 상사나 직장에 욕을 하고 그만둘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진 상태와 관련이 있다.
둘째, 넓은 정의로 쓸 때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평생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금액을 말하고, 이를 계산하는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마음만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그 보다 좁으면서 다소 현실 적인 정의를 <불행 피하기 기술>의 저자 롤프 도벨리로부터 읽게 되었는데, 이는 회사를 그만 두고 한 해 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일년 치 연봉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삼 천 만원이든, 사 천 만원이든.
자 이제 퍽유머니가 얼마인지 계산하려 하지 말고,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을 1년 동안 받으면서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1년을 쉬는 것은 좋은데, 그 다음에 돌아와서 직장은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퍽유머니는 단순히 농담으로 지나칠 수 있겠지만, 자신만의 커리어 여정과 발전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째, 축구에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고, 그 사이 하프타임이 있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내 삶에도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고, 하프타임이 있을 수 있다. 대략 25세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고 50세에 직장을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직장인이 실질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나이의 평균은 50세 정도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25년의 중간 지점을 잡아보면 37-38세 정도가 된다. 하프타임이란 전반전에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 되돌아보고, 그리고 잠시 쉬면서 후반전에서 역전을 하거나, 전략을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쉬고 나서 다시 뛸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하프타임이 아닌 것이다. 퍽유머니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은 젊은 시절 엄청난 돈을 벌어서 빨리 은퇴하여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을 의미하지만, 이는 대다수 직장인과는 상관이 없는 시나리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퍽유머니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30대 말에서 40대 초에 자발적으로 하프타임을 가질 수 있는데 필요한 돈, 즉 1년 정도의 연봉을 뜻한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하프타임을 갖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1년 정도 연봉을 갖고 쉬었다가 다시 나를 고용해줄지에 대한 불안감이 실제 너무 크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하프타임이 필요할까? 물론 이는 철저히 개인의 결정이다. 최근에 만난 한 직장인은 30대에 배우자 출산휴가를 1년 동안 가지면서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하프타임을 가졌다. 40대 중반에 가까운 또 한 사람의 직장인은 상사를 설득하여 휴직을 하고 1년간 뉴질랜드로 떠났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만 이메일로 일하고, 나머지는 뉴질랜드의 해변에서 자기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10년전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넘게 여행도 다니고 쉬면서 사업에 대한 구상을 정리했다. 통장잔고는 줄어들어 불안했지만, 30대에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것은 모두 현실적으로 자기 나름의 퍽유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 직장생활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퍽유머니를 위한 통장을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530/903115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