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티타임

by HER Report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2006년 3월, 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였다. 컨설팅을 하다보면 종종 대기업의 ‘사장단 회의’라는 곳에 가서 강연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 날은 LG그룹 계열사 사장이 모두 모이고, 故 구본무 회장(1945-2018)도 맨 앞자리에서 내 강연을 듣고 있었다. 1시간 정도의 강연이 끝나자 구본무 회장이 무대 쪽으로 걸어나와 내게 자신의 방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의 오너를 일과 관련하여 만난 적이 몇 번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더군다나 나는 당시 30대의 대행사 사장이었고, 소위 갑이 아닌 을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 나에게 그는 밤섬을 보여주며 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주말에 식당에 간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새에 대한 책 한 권을 그 자리에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차 한 잔 마시며 20여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떤 권위 의식도 없었고, 소탈하게 강연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면서 편하고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마다 기업에 대한 경험이 다르겠지만, 그 경험만으로도 구본무 회장은 물론 LG에 대한 나의 인상은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그 분이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조문을 요란스럽게 받지 않고, 화장하여 장례식도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끝까지 그 분에 대한 나의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 분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기도한다. 나에게 평생 남을 티타임의 기억을 남겨준 그분이 편안하게 잠드시길. 2018.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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