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명절’에 대한 생각

by HER Report

‘가족간 커뮤니케이션’.
며칠 전 라디오로부터 생방송 전화 연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보통 이런 인터뷰는 하루나 이틀 전 연락이 와서 작가와 짧게 상의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명절에 가족(여기에서 가족이란 주로 ‘부모’ ‘시가’와 ‘자녀/며느리’로 이루어진 만남을 뜻하는 것이다)들이 어떻게 소통해야 서로 싸우거나 기분 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나부터 부모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이렇게 이야기하면 찡그리시거나 걱정 섞인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단 내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의 첫 마디는 “가족이 특히 명절에 꼭 모여야 할까요?”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어졌고, 작가는 “오히려 그런 시각이 청취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어쨌든 새벽 6시에 일어나 전화로 인터뷰는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든 생각 몇 가지.


1. 진행자의 첫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명절이라고 가족이 한데 모여도 기분 상해서 오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모처럼 모였는데…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기분 상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생방송으로 전달한 나의 대답은 “꼭 모여야 할까?” “가족 중에 서로 정말 보고 싶어서 명절에 온 사람이 있을까?” “꼭 만들어 먹어야 명절인가?” “왜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만나야 할까?” “연휴에는 각자 쉬고 다른 때 만나면 안될까?”와 같은 것이었다. 6-7분의 짧은 인터뷰라 이 질문에서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질문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질문을 들으며 내 머리에 떠오른 상황은 이런 것이다.


“연휴에 쉬고 있는데 상사가 직장으로 일하라고 직원을 불러낸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상사와 직원이 기분 상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런 내 생각에 대해 어떻게 (시)부모와 상사가 같은가?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겠다. 그건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며느리/사위가 시가/처가에 (정서적 의미에서) 가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며느리는 내 딸이야”라는 종류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는 점만 밝힌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가족이다”라는 말도 똑같이 믿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말한 솔루션이란 어떻게든 “줄이라”는 것이다. 한 끼만 먹고 헤어진다든지, 이번에는 오지 말라고 한다든지, 긴 연휴인 구정에는 쉬고, 신정에 서로 본다든지, 음식을 하지 않고 외식을 한다든지. 격년으로 만난다든지.


소위 명절 스트레스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 때문에 그렇다. 여자는 노동(그것도 편히 쉬어야 할 연휴에)의 양에서, 그리고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아가는 빈도나 순서에서 항상 뒤로 밀린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 ‘말’을 잘해서 서로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출발점이 잘못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2. “어른들한테 그렇게 말씀을 드리면,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거 같은데요?” 위와 같이 말하면 이런 질문이 들어온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이는 자녀의 입장에서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분위기가 안 좋더라도 문제점을 끄집어 내어 갈등을 드러내든지 아니면 속으로(그리고 표정으로) 문제점을 묵히며 계속 지내든지. 각자에게 선택이 갖는 이득과 피해가 다 다를 것이고 그래서 각자가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함께 문제를 제기해야 할 부분이 있고, 이번에 <한겨레 21 (No. 1200, 2018. 2. 19-2.26)>에 나온 “시월드를 퇴사하다. 며느리 사표”와 같은 움직임은 우리 사회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회문제나 부모와의 문제도 ‘싸우지 않고(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되기는 힘들다.


갈등의 해결은 갈등을 묻어두는 데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갈등의 조정이란 갈등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실제 갈등조정 워크샵을 가면 서로 갈등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아쉬웠던 것은 이 문제를 명절에 만나서 어떻게 대화해야 서로 사이가 나빠지지 않고 좋아질수 있느냐는 ‘기술적’ 문제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는 소통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임 자체가 갖고 있는 불편함과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문제인데도 말이다.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1947~ )는 “가족은 남들이 보지만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웃는다. 2010년 미국의 전통깊은 코미디 극단인 세컨시티에서 교육받을 때 들은 말이 생각났다. 풍자를 듣고 사람들이 웃는 이유는 그 말에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연휴에는 아래 기사에 나오는 김영주 씨의 책 <며느리 사표>를 함 읽어봐야겠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9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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