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땅이 좀 질어도 괜찮겠어?” 닉과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한 말입니다.
닉웹. 작년 1월 영국의 Devon에 있는 목공학교에서 한주간 보내면서 우연히 알게 된 아티스트입니다. 스푼메이커(spoon maker)로 유명한 사람으로 나무를 이용해 주로 수저를 만듭니다. 왠만한 수저 하나당 가격이 100파운드(17만원)가 넘으니까, 아티스트 맞습니다:) 5년전쯤 서울에서 전시를 했었고, 올해도 참여할 예정이랍니다. 몇 달전 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유럽에 출장갈일이 생겼는데, 하루만이라도 같이 보내면서 1:1로 수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흔쾌히 허락하더군요. 물론 수업료는 있습니다:) …
아침 8시 45분부터 수업을 하겠다길래,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옆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바로 기차를 타고 이스트본에 와서 다시 하룻밤 자고, 아침일찍 그의 스튜디오로 갔습니다. 말이 스튜디오지, 밖에서보면 허름한 창고 같습니다. 거의 100년은 된 건물이더군요. 주변에 가구를 만드는 사람, 도자기 만드는 사람, 그리고 숟갈을 만드는 닉이 각자 자기의 스튜디오에서 외롭게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저만드는 법을 배우러 왔는데, 그는 나무부터 베러 가자고 하더군요. 농담하는 줄 알았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넓은 들이 펼쳐지고, 비가 내려 질퍽한 땅을 밟으며 단풍나무를 보더니, 가지를 톱으로 쓱싹쓱싹 하나 잘랐습니다. 나무를 다시 토막내고 나무의 생김새로부터 나무가 겪었을 역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더군요. 작년에 갔었던 목공학교에서는 목수로부터 배웠다면, 이번에는 아티스트로부터 배운다는 차이가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우선 그는 기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끼와 칼, 끌을 주로 사용하여 만듭니다. 목수는 정확하게 도면을 그려내고 거기에 맞추어 나무를 잘라내고 조립한다면, 닉은 도면을 그리지 않더군요. 도끼로 수저를 만든다는 것이 처음엔 잘 상상이 안 되었습니다. 오전 한 시간 동안은 나무를 쪼개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디자인한 것에 맞추어 나무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우리를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쪽이었습니다. 왜 그의 수저가 자연스러운 맛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무와 대화를 한다고 할까요? 나무가 쪼개지는 방향에 맞추어 즉흥연주를 하듯 수저를 만들어 갔습니다. 왜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는지 묻자, 나무는 자기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동양철학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원래는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을 하다가 10여년 전 쯤부터 우연히 수저를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녁 5시 그와의 하루 일정을 마치고 기차와 전철을 두 번씩 네 번 갈아타고, 히드로에 도착하여 공항옆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에 다음 일정지를 향해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