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처음으로 아주 좋아하던 걸 줄여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한다...”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매일 내가 먹는 즐겨 먹는 걸 살펴보니 흰쌀밥, 온갖 빵, 각종 국수, 모든 종류의 떡과 굽고 튀긴 감자였다. 피곤하거나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습관처럼 과자와 케이크를 먹으니 먹는 음식의 80퍼센트 가까이가 가공 탄수화물인 것이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메인코스도 건너뛰고 죽자고 빵을 리필해 먹는 내 모습을 본 옆 자리 의사 선생님이 늘 많이 먹는 탄수화물 위주 식품을 줄이고 자주 안 먹는 단백질이나 채소를 신경 써서 더 먹어보라 조언해주었다. 완전히 끊으라는 것도 아니고 ‘황제 다이어트’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던 것을 줄이고 덜 먹던 것을 좀 늘여보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에 귀얇은 나는 금세 감동.
3월호 마감 시작하며 탄수화물 대폭 줄이기를 시작했다. 행사나 이런저런 식사 약속이 그나마 덜한 마감 기간이 식사 습관을 바꾸기에 적합해보였다. 우선 아침에 먹던 토스트나 머핀, 캉파뉴 등의 빵을 끊고 바나나, 사과, 토마토, 블루베리와 딸기, 토마토와 견과류를 우유와 섞어 갈아마시는 것으로 대체. 보통 마감 때 점심은 깁밥이나 샌드위치, 떡이나 분식 등으로 자주 먹는데 이번 마감은 샐러드로 대신. 하지만 점심 미팅 때는 까다롭게 굴기 싫어 적당히 밥이나 파스타를 먹기도 했다. 저녁은 역시 샐러드. 일주일 가까이 점심과 저녁을 주로 샐러드로 먹다 보니 회사 근처 뚜레XX, 파리XXX 등의 모든 샐러드 메뉴 클리어. 그런데 어쩌면 샐러드 구성이 이렇게 다 비슷하고 제한적인지 지겨워 죽을 뻔했다.
마감 전후로 집에서 밥을 먹게 될 경우는 일단 고기로. 어쩌다 보니 금요일 저녁에 닭안심 구이, 토요일 저녁으로 삼겹살, 일요일 점심에 스테이크를 먹게 되었는데 정말 못할 일이었다. 이날 이후 고기가 꼴도 보기 싫어지는 커다란 부작용. 떡볶이와 김밥, 순대가 상상 속에 등장하고 짜장면과 라면 생각이 매끼니 간절, 초컬릿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면 행복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성격, 점점 더 ‘난폭’해진다”고 H가 옆에서 지적하는데 사람이 미친 듯 좋아하던 걸 (완전히 끊는 것도 아니고) 잠시 동안 줄여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가정과 직장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2주일 동안 아이스크림 한 번, 도너츠 한 번, 밤조림 몇 번의 일탈은 나를 위한 ‘선물’...
스키야키에 채소 튀김에 계란프라이와 삶은 계란, 솜땀과 닭튀김 등 태국 음식까지 동원해 버틴 2주일. 변화가 있었을까? 비포&애프터로 병원에서 전문적인 검사를 한 것도 아니니 정확하진 않지만, 일단 체중 변화는 하나도 없다 ㅠㅠ. 아침이면 붓곤 했는데 그게 좀 줄어든 느낌적인 느낌? 맨날 고기에 채소 튀김을 먹어댔으니 탄수화물 음식 줄이려다 고지혈증 걸릴 뻔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중독에 가까운 빵과 국수 집착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삼시세끼, 달고 느끼한 간식과 디저트를 먹는 일이 훨씬 적어졌다. 길게는 못할 일이지만, 평생 처음으로 아주 좋아하던 걸 줄여보았으니 뭔가 자신감과 자제력이 생긴 기분이다. 인생에서 이제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