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이름과 디자인의 사과라니
지난 연말 일본 나라에서 호리우치 과실원의 멋진 매장과 제품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과수원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몰랐을 뿐, 이미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리빙디자인페어에서 만난 ‘애플카인드’가 바로 그 주인공.
사과밭을 연상시키는 부스 디자인에 이끌려 들어갔다가 꽃과 나비, 잎사귀, 빨간 사과 위에 올라탄 소녀를 그려 넣은 사과 박스에 마음을 빼앗겼다. 박스를 열면 한 손에 사과를 쥔 농부가 행복하게 웃고 있다. 친절한 스탭들이 나눠준 시음용 작은 잔에 담긴 주스를 마셨더니, 이 상큼하고 개운한 맛은 뭐지?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분지(亥安盆地)는 맑은 공기와 비옥한 땅이 탄생시킨 사과가 자랑거리다. 대구, 청송 사과만 익숙했는데 다디단 강원도 사과 역시 감동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5년 전 강원도 인제군으로 귀촌한 부부가 지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농사를 해보자 생각해 모임에서 만난 농사 전문가와 의기투합해 2016년 애플카인드를 설립했다. 퇴비를 주고 정성으로 보살폈는데, 첫 수확을 앞둔 작년 6월 우박이 내려 사과가 많이 상하는 바람에 주스로 만들어보았는데 전화위복, 물이나 인공감미료 없이 상큼하고 맛있는 주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멋진 이름과 디자인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영국 가드닝 투어를 함께 하는 멤버인 정원디자이너의 도움으로 농산물 브랜딩 잘하는 영국 디자인 회사 ‘빅피쉬’와 연결이 되었단다. 부스에서 만난 김철호 회장은 그때 일을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일을 부탁하면 바로 맡아서 진행해주는데, 말도 마세요. 세 달 내내 회의만 했어요. 어떤 사과를 키우는지, 왜 농사를 짓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지 계속 묻더니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어요.” ‘애플카인드’라고 해서 ‘친절한 사과’인가 했는데 ‘사과 종족, 사과에 몰두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홍옥, 국광, 부사, 스타킹 등을 품종에 따라먹었는데 요즘은 슈퍼에 가보면 그냥 ‘사과’라고 되어있다. 이곳에서는 여름철 제일 먼저 수확하는 극조생종인 쓰가루(아오리)로 시작해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홍로, 9월 말부터 10월 중순에는 감홍과 시나노 스위트, 10월 말 만생종인 후지를 순서대로 수확해 각 품종의 맛을 볼 수 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 진한 초록색 잎 사이 작은 열매가 생겨나는 여름, 붉은 보석 같은 사과알을 주렁주렁 매다는 가을, 눈 속에 온통 파묻히는 겨울.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여행지 역할을 할 ‘경관농업’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된다. 사과가 전해주는 행복감 덕에 복잡한 페어를 구경하느라 무거웠던 발이 다시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