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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Apr 25. 2018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혹은 생계와 하고 싶은 일

"직장을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까?" 

뭐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일 그만두고 목수/작가로 살아갈까(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내 아내의 표현이다) 생각이 이런 것에 해당한다.


최근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마즐라 마틴 엮음, 정미화 옮김, 북라이프)를 읽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쓴 록산 게이를 포함한 33인의 작가들이 온라인 문학잡지 <스크래치>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글쓰기와 돈에 대한 글을 쓰거나 인터뷰한 것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유명 저자보다 <스크래치>를 창간하고 이 책을 엮은 마즐라 마틴에게 먼저 관심이 갔다. 그는 ‘Who pays writers?’라는 사이트를 2012년 만들었다. 글을 쓰고 돈받는 사람들이 어느 매체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의 돈을 언제까지 어떤 기준으로 주더라를 자발적으로 공유하도록 만든 사이트이다. 이 책은 고상하게 말하면 예술과 생계, 상업성 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글을 모은 것이고, 까놓고 이야기하면 도대체 (미국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면서 먹고 사는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 제목과 달리,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비법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비법이 담겨있다면 책 값이 훨씬 비쌌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적어 놓은 몇 가지.



1. 작가도 돈을 벌어야 한다(=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소설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55년 선급금의 입금이 지연되자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글은 재미로 쓰지만, 출간은 돈을 벌기 위한 거요."
<뉴요커>의 전속 기자인 수전 올린은 "작가로 사는 것은 사업을 운영하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고 썼다. 결국 좋아하는 일(예술)을 한다고 돈을 받는 것(상업)에 대해서 너무 쑥쓰러워하거나 멀리하려는 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원고(강연, 기획, 디자인, 컨설팅 모두 마찬가지이다) 요청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1) 분량/원고료가 얼마인가?
2) 원고의 데드라인이 있다면 원고료를 지급하는 데드라인은 언제인가? (3달 있다가 주는 것과 3주 안에 주는 것은 다르다)


"알아서 주세요"와 같이 말하지 말고 "이런 것에 대해 저는 얼마를 청구합니다"라고 말하는것이 서로에게 좋다.



2.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싫어하는) 생업을 포기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라


오스카 와일드는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최고의 문학작품은 생계를 글쓰기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서 나온다." 만즐라 마틴은 "글쓰는 인생이 하나의 공상이라면 본업을 그만두는 것은 또 다른 공상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돈이 많이 안되는(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안되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생업을 포기했다가는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말한다. 물론 이 책에는 글을 쓰겠다고 교수직을 포기했다가 힘든 생활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때로는 생업을 포기하고 글을 쓰다가 등단하여 유명해지고 수입도 넉넉해진 사람의 성공스토리도 접한다. 어느 시점(생업 vs. 좋아하는 일로 벌어들이는 돈의 균형이 어느 정도인 시점)에 생업을 그만두는지는 당사자가 정할 몫이다. 다만, 생업을 그만두게 되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만큼이나 공상이 될 수 있다는 마틴의 조언을 기억할만하다.



3. 일하는 삶이 글쓰는 삶만큼 중요하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 넬 보셴스타인은 대학시절 폴란드의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너무 사랑했다. 주간지 편집부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마침 자가예프스키가 자신이 있던 지역의 한 대학교에 낭독회를 온다는 것을 알고 취재를 자청한다. 한 시간에 걸친 낭독회가 끝난 후 관객들과의 질의 응답시간에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글만 쓰는 작가는 되지 마세요. 소방관이 되거나 경찰이 되거나 선생님이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화학자가 되거나 전기공이 되세요. 글만 쓰는 작가는 되지 마세요"

시인은 작가들끼리만 어울리는 것보다는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일상의 상황에 접하는 것이 작가에게 더 좋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이 부분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생업이나 일상에서 무엇인가 연관성이나 아이디어,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은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에서 자기만의 어떤 연결을 찾을 때 나오니 말이다.

4. 작가도 마케팅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상업적 조언일 수도 있는데,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보여줘라 아티스트처럼>의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마케팅과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클레온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물을 때 사실 진짜 묻는 것은 어떻게 해야 '유명하고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요즘처럼 누구나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누구나 '작가'는 될 수 있다. 클레온은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홍보나 마케팅에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최소한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최근 김윤관 목수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올려 놓은 글이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기술 없어서 망한 공방은 없다는 것이다. 기술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전문 목수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함께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클레온은 젊은 작가들에게 읽은 책 중에서 일부 내용을 골라 올리거나 흥미로운 생각을 옮기는 ‘온라인 독서일지’를 쓰라고 권한다.


이 책은 이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저 작가는 저런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과 생계를 꾸려가는구나에 대한 33가지의 케이스 스터디를 담은 책이다. 33가지의 방식 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책의 결론은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의 균형’이란 답이 없으며, 둘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라는 다소 답없는 답인 듯하다. 


하지만 둘 사이 균형을 잡으면서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라 말한 부분에 눈이 갔다. 예술성이냐 상업성이냐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균형을 잡으면서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라는 뜻이리라.


(돈안되지만)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지 않지만) 돈되는 일 사이에서 자기 상황에 맞게 균형을 잡아가고, 그 균형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나가고 성장(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해나갈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재미있게 산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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