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제프 벡에 대한 생각

by HER Report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제프 벡 공연에 다녀왔다. 괜히 3대 기타리스트,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란 별명이 있는 게 아니다 싶었다.


그의 약력을 인터넷에서 읽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years active”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4년에 태어난 제프 벡은 스무 살이 되던 1964년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가끔 TV를 보다 보면 수십년 전 데뷔했다고 자랑스러운듯 겸연쩍게 말하는 가수나 배우를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하루키가 “누구나 소설(작품이나 일의 결과물)을 한번은 쓸 수 있지만 계속 쓰는것은 극소수”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실제 제프 벡은 스튜디오 앨범만 놓고 보아도 60년대 <Truth>(1968)를 시작으로 앨범 두 장, 70년대 네 장, 80년대 세 장, 90년대 두 장, 2000년대 두 장, 2010년도에 이미 두 장(가장 최근이 작년에 낸 <Loud Hailer>)으로 계속 무대에 서고 작품을 냈다. 서울 공연 마치고 보름이 안되는 기간 동안 일본에서만 10회 가까운 공연일정이 있다. 70이 넘어서도 현란한 연주를 보여주는 그를 보며 내 일의 무대는 어디고 작품은 무엇을 뜻할까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른 관심: 그는 6살 때 (한국전쟁났을 무렵:) 라디오에서 Les Paul의 연주를 듣고 어머니에게 저게 뭐냐고 묻고 처음 전자기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제프 벡은 전자기타가 어쿠스틱 기타와 뭐가 다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악기에 빠져들었다고한다.


소개: 누나인 아네타는 제프 백과 동갑인 지미 페이지에게 동생을 소개하게 된다. 야드버즈의 1대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와의 만남은 제프백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야드버즈의 2대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이 야드버즈를 떠나게 되었을 때 3대 기타리스트로 그를 추천한 것도 지미 페이지였다. 나이가 먹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경이롭게 보게 되는 것이 ‘소개’의 힘이다. 누군가를 소개하고, 누군가에게 소개받는 과정은 우리 삶에서 놀라운 기회로 연결되기도 한다.


1960: 제프 벡은 1960년대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Everyone thinks of the 1960s as something they really weren’t. It was the frustration period of my life. The electronic equipment just wasn’t up to the sounds I had in my head.”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제프 벡 머리 속 생각을 구현해낼 기타가 당시에는 없었나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자신의 일에 있어 세상에 없는 것을 구현할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칠순이 넘은 천재의 공연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며 의미있는 ‘작품’을 어떻게 삶에서 만들어 가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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