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런던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레스터 광장(Leicester Square)역에 내려 길을 헤메다가 우연히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하고 있는 하워드 호킨(Howard Hodgkin)의 전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들어가 보았는데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 몰랐다. 작년 헬싱키에서 초상화 작가로 유명한 앨리스 닐 전시를 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이번 런던에서 하워드 호킨을 알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932년생인 그는 올해 영국에서 두 개의 전시를 준비중이었다.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초상화만 모아 3월 23일부터 첫 전시를 시작했고, 또 하나는 요크셔에 있는 Hepworth Wakefield에서 열리는 Painting India전이다. 호킨은 1964년 처음 인도를 방문한 뒤로 2012년까지 거의 50년 동안 매년 인도를 방문했다. 심지어 2014년 그는 인디아가 없이는 자신은 미술작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전시회를 앞둔 3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호킨이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것은 <파이낸셜타임즈>였다 (“Howard Hodgkin’s last interview by Harriet Fitch Little”, 2017. 3. 17). 테이트 모던에서 1988년부터 30년 가까이 관장으로 일하다 올해 떠나는 닉 세로타(Nick Serota)는 “호킨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 그의 작품은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이유를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호킨은 스케치를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다. 스케치를 하지 않는 대신 붓을 들고 칠을 시작하기까지 길게는 몇 년 동안 생각하고 곱씹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파이내셜 타임즈> 기자가 혹시 캔버스에 바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느냐고 묻자 호킨은 “네버(never)”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의 초상화는 추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처음 접한 나로서도 추상적인 초상화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느낄 수 있고, 제목과도 연관되어 스토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National Portrait Gallery 전시의 제목은 ‘Absent Friends’ 즉 친구의 부재다. 이런 제목의 전시를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니 부재라는 말이 더 다가오고, 그림을 통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도 된다. 전시를 보고 호텔방에 돌아와 그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다 호킨처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했고, 평생 그림을 그렸고, 80세가 넘어서 큰 전시를 준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수잔 데이비드(Susan David)는 2016년 9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호킨도 살면서 어려운 일이 물론 있었겠지만 80년 넘는 삶 거의 대부분을 좋아하는 일 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그만큼 행복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영혼이 편히 쉬기를.